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문화영역을 주도했던 매체는 문자였다. 오늘날에도 물론 문자매체의 영역은 광범위하지만 영상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날로그 ...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문화영역을 주도했던 매체는 문자였다. 오늘날에도 물론 문자매체의 영역은 광범위하지만 영상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날로그 문화가 디지털 문화로 전환되면서 영상매체는 과학기술 발전의 소산물이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만큼 현대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도 넓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예술장르와 예술매체의 다양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만화나 연재소설 등은 요즘 인터넷이란 전자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고, 심지어 인터넷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학도 파생되었으며, 영상매체의 도움으로 만화와 영화의 중요한 특성들을 접목시켜 만든 만화영화도 등장하게 된다. 특히 주로 소설에서만 사용되어왔던 팩션 Faction 이라는 문화예술 장르가 연극과 영화, TV 드라마에까지 확대되는 추세이고,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는 소설에서 영화로의 매체 전이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연극, 오페라, 드라마, 영화간의 매체확장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작품의 주된 재료가 종이와 펜, 그리고 창작자의 상상력이었다면, 지금은 1차 텍스트와 이것의 시각화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상 매체가 이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매체들이 생겨날 뿐 아니라 기존 매체에 새로운 매체를 접목시켜 변형된 매체가 생겨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체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거 아날로그 문화를 청산하고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은 보다 쉽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자 하며, 영상세대에 걸맞게 단편적인 예술보다는 복합적인 예술을 선호하기 때문에, 창작자들의 입장에서는 수용자들의 오감을 더욱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창작자든 수용자든 눈으로 읽기만 하는 문자매체보다는 이미지들의 연쇄작용으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영상매체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되는데, 오늘날 예술분야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원작소설을 가공, 즉 영화화 Literaturverfilmung하는 작업이다. 문학 작품이 영화로 각색된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화하는 것이 순수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기술과 독창성을 요할 수 있다. 가령 소설에서는 표현하기 쉬운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매체적 특성상 그 표현이 어려울 수 있으며, 소설에서 표현하기 힘든 장면을 영화에서는 몇 개의 쇼트만을 가지고서도 쉽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텍스트를 바탕으로 새롭게 작품화한다는 것을 단순히 베끼기 작업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소설이 지닌 무한한 소재들을 차용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매체를 전환하는 작업은, 영상매체가 현대 사회의 문화계에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매체로 대표되는 소설과 영상매체로 대표되는 영화 사이의 매체적인 특성 비교는 매체간의 경계를 확실히 규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소설로 대변되는 문자매체와 영화로 대변되는 영상매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독문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축적된 연구 성과도 많지만, 소설과 영화에서 나타난 매체적 특성 비교에 대해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연구되었으며 실질적 측면에서 두 매체간에 드러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비교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화해서 널리 알려진 '양철북'과 '피아니스트'란 작품은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매체적인 비교를 연구하는데 타당하다고 사료되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또한 소설과 영화에서 보이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분석해 보고,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두 매체간의 특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었으며, 표현기법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매체가 표현한 각각의 다른 방식으로 독자 내지는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는 인식의 범위와 감동이 얼마나 상이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연구의 2장에서는 예술의 기원적 측면에서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를 조명하여 두 매체간의 매체적 특성 비교를 통한 상관관계를 언급하고자 하며,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양철북󰡕과 󰡔피아니스트󰡕라는 소설과 영화 작품을 통해 사용된 표현 기법을 밝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