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 중국과 일본을 사행한 오윤겸은 『조천일록』과 『동사일록』을 기록하였다. 『동사일록』은 1617년(광해 9)의 사행일기이고, 『조천일록』은 1622년(광해 14)의 사행일기이다. 이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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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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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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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17세기에 중국과 일본을 사행한 오윤겸은 『조천일록』과 『동사일록』을 기록하였다. 『동사일록』은 1617년(광해 9)의 사행일기이고, 『조천일록』은 1622년(광해 14)의 사행일기이다. 이 두 ...
17세기에 중국과 일본을 사행한 오윤겸은 『조천일록』과 『동사일록』을 기록하였다. 『동사일록』은 1617년(광해 9)의 사행일기이고, 『조천일록』은 1622년(광해 14)의 사행일기이다. 이 두 사행록을 중심으로 17세기 초 동북아 3국인 조선ㆍ명ㆍ일본의 정치ㆍ외교적 관계, 문화에 대한 오윤겸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오윤겸을 정사로 하는 회답겸쇄환사는 ‘국서전달’과 ‘피로인의 쇄환’을 목적으로 1617년 7월 7일 부산을 출발하여 후시미성[伏見城]까지 사행하고 돌아왔다. 이 사행에서 드러나는 오윤겸의 대일인식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노출시키기보다 대상을 객관화한 점, 일본을 ‘안정속의 혼란’의 모습으로 인식한 점, 일본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禮와 義’보다는 현실적 방안으로 쇄환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일정부분(321명)이나마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일본을 사행하면서 대마도 등에서 문학과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오윤겸은 명나라를 사행하면서 사적지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것은 명의 중화적 위치와 의미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행을 계기로 명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혼란속의 번성’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대명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역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당시의 안타까운 현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Oh Yoon-Gyeom, who went to China and Japan as an Envoy in the 17th century, recorded 『JOCHEON daily journal』 and 『DONGSA daily journal』. 『DONGSA daily journal』 is a diary of the Envoy in 1617 (The 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 an...
Oh Yoon-Gyeom, who went to China and Japan as an Envoy in the 17th century, recorded 『JOCHEON daily journal』 and 『DONGSA daily journal』. 『DONGSA daily journal』 is a diary of the Envoy in 1617 (The 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 and 『JOCHEON daily journal』 is a diary of the Envoy in 1622. (The 1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 Focusing on these two Envoy Records, consciousness and change features of Oh Yoon-Gyeom about political, foreign relations and culture of three countries of Joseon, Ming and Japan of the North East Asia in the 17th century were reviewed. An Envoy of returning hospitality and calling back the captured Joseon people with Oh Yoon-Gyeom as the leader left Busan on July 7, 1617 with the purpose of ‘Delivery of King``s Letter’ and ‘Calling back captured Joseon people’ and returned after visiting Husimi Castle of Japan. Oh Yoon-Gyeom``s thoughts about Japan, which were revealed in this Envoy, can be examined in several points. One point is that he tried to objectify the object instead of exposing hostile feeling about Japan, Second point is that he recognized Japan as ‘confusion within stability’ and last point is that he could achieve some success of calling back captured Joseon people (321 people) in consequence as he tried for releasing captured Joseon people as a realistic plan instead of Japan ‘courtesy and justice’ as his understanding about Japan became profound. Besides, he also confirmed the fact that literature and culture were growing in Tsushima and other regions during the Envoy to Japan. Oh Yoon-Gyeom showed interest in historic sites during his Envoy to Ming Dynasty and this became a momentum to understand central position and meaning of Ming Dynasty . Through the Envoy, he could confirm ‘Prosperity within confusion’ Ming Dynasty was confronting at that time. And he also recognized real sad reality of that time that a interpreter, who were obliged to take an important role in foreign diplomacy with Ming Dynasty, did not play the role properly.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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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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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4 | 0.4 | 0.41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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