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교의학은 기독교의 의학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중의 하나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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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orean
불교의학 ; 질병 ; 치료 ; 승의 ; 선교의료 ; 고려법사방 ; 고려변사 ; 천태 지의 ; 신라법사방 ; 신라법사비밀방 ; 신라법사비밀요술방 ; 법장 ; 마하지관. 외대비요 ; 의심방 ; 왕도 ; 민간 경험방 ; 금강명최승왕경 ; 제병품 ; 法明尼 ; 中臣鎌子 ; 露蜂房 ; 백제승 謙益 ; <十誦律木叉記> ; 圓勝 ; imaginational treatment ; medical cure at temple ; Gokuryo monk ; Packche monk ; Silla monk ; Fazang ; Jazang ; Kyumick ; Wei tai fei yao ; Isimpo ; wax of wasp ; prescription of Shilla's priest ; (Shillabyubsabang) ; life style drug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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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교의학은 기독교의 의학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중의 하나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라고 할...
종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교의학은 기독교의 의학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중의 하나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일찍부터 종교에서는 인간의 질병과 치료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역시, 그 발전 과정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질병 치유력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한국고대사에서 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불교의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승려에게 관상이나 점, 또는 간단한 질병 치료 등의 부수적인 능력이 있을 겅우, 불교를 포교하거나 托鉢을 할 때 보다 용이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탁발승을 길 가는 낯선 나그네에서 친근한 인생 상담자 또는 스승으로까지 격상시켜준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이나 각종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금광명최승왕경>의 제병품이나 각종 불교경전에 스며든 불교의학에 대한 설명에서 보듯이, 승려는 각종 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과정에서 불교경전 내에 소재한 의학 관련 문구로 인해 자연스럽게 불교의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가운데 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활약하였던 이들은 승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승의는 의료를 專業으로 하지 않았지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민이 접근하기 용이한 부류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회적 요구로 인해 이들이 의료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 전래 초기에는 승의는 상류층의 의료를 전담하였던 것처럼 묘사되었다. 의료를 전업으로 하는 醫師가 나타나자, 이들은 일반 민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의료인의 역할을 하였다.
불교 포교를 위해 宣敎 醫療를 하였던 초기 僧醫들은 고대 불교 의학을 발전시키는 한 축이 되었으며, 역으로 불교의학은 한국고대사회에서 불교가 국교로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호국불교로 성장하였던 한국고대 불교는 사찰이라는 거대 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승려는 당대 지식인의 상위층에 존재하였다. 그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하였던 승려 집단은 인간의 질병과 치료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던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찰은 질병의 요양 공간으로서, 승려는 환자에 대한 간병과 치료를 주도하는 주체였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8세기에 당나라의 왕도가 편찬한 『외대비요』에 수록된 『고려노사방』과 중국 隋대의 승려 천태 지의가 서술한 『摩訶止觀』에 인용된 고려辨師의 假想 치료법, 10세기에 편찬된 일본의학서 『醫心方』에 인용된 『新羅法師方』의 조문을 자세히 분석해 봄으로써, 승의가 행하였던 치료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현전하는 『고려노사방』과 신라법사방 3首에서 사용된 약물은 민간 경험방 수준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료의 한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각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오수유, 모과를 사용하였던 고려노사방이 중국에 전수되어 목향과 서각 등 중국의 약재가 더 첨가되어 발전되는 터전이 되었다. 속수자, 노봉방 등을 이용한 신라법사방은 모두 한두 가지 약재를 사용한 단방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한국고대 사회에서 활약한 고대 僧醫들이 향토에서 구하기 쉬운 약재 중심으로 민간의료를 발달시킨 주역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은 8세기 초 당나라 상주에 있는 풍병으로 걷지 못하는 환자가 길거리에 나와서 다리 고쳐줄 사람을 기다리다 신라승의 도움으로 치유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의료체제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인 이유로 사적 치료조차 받지 못하였을 일반 민에게 승의는 정신적인 위안뿐 아니라 실질적인 치료의 혜택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이 신라승려는 중국식 약재명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는 신라 불교 의학이 중국의학의 영향보다는 토착적인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의 설화 "金現感虎"에는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는데 경주 흥륜사의 醬을 사용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장을 외상 치료에 사용하였던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찰에서 치료약을 제공하였던 고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고대사회에 있어서 불교의학은 왕과 귀족의 질병과 건강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없어 공적 치료에서 소외되었던 하층민까지 아우를 수 있었던 유일한 의료였다. 양치질이나 손 씻기 등 승려 계율에 따른 위생 생활은 민간에서 질병 예방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국문 초록 (Abstract)
1.머리말 2.선교 의료 (1)불교의학과 승의 (2)불교전래와 선교의료 3.『고려 노사방』과『신라법사방』 (1)『고려 노사방』(2)『신라법사방』과 『신라법사비밀방』 4.맺음말
1.머리말
2.선교 의료
(1)불교의학과 승의 (2)불교전래와 선교의료
3.『고려 노사방』과『신라법사방』
(1)『고려 노사방』(2)『신라법사방』과 『신라법사비밀방』
4.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