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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의 조선인 축구 - 마을과 학교에서 민족으로 - = Soccer Games among Koreans in Gando: From Villages and Schools to Ethn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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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52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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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soccer games in Gando’s Korean society developed into a village event, a school event, and then a district event, and eventually became a national event. This indicates that the soccer game strengthened the national identity of these Koreans. Such development of the soccer events in Gando’s Korean society from the mid-1920s to the mid-1930s implies both the political situation the Koreans in Manchuria faced and the reaction they showed against it. The foothold of the development was the school sports events that began in 1910. The school athletic event was for villagers as well as for students, and gave birth to games like soccer matches. With the heat of the sports events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sports matches, those games solidified the identity of groups which were comprised of players and cheering squads. Reflecting the politics in Manzhouguo, the soccer matches in a school and a village took on a political movement, and this in turn raised the temperature of the games. As the students graduated, they formed groups such as youth associations, and these associations organized sports events, and then a group specializing in athletic games was born: an athletic association. This association then organized sports events on a larger scale, resulting in forming the identity of a district beyond schools and villages. The identity of the district was none other than the ethnic identity in Gando where most of the citizens were Koreans. Through soccer matches, Koreans in Gando could imagine ethnicity beyond their region. This is also why Korean players came to the front in Manchuria’s world of soc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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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occer games in Gando’s Korean society developed into a village event, a school event, and then a district event, and eventually became a national event. This indicates that the soccer game strengthened the national identity of these Koreans. Su...

      The soccer games in Gando’s Korean society developed into a village event, a school event, and then a district event, and eventually became a national event. This indicates that the soccer game strengthened the national identity of these Koreans. Such development of the soccer events in Gando’s Korean society from the mid-1920s to the mid-1930s implies both the political situation the Koreans in Manchuria faced and the reaction they showed against it. The foothold of the development was the school sports events that began in 1910. The school athletic event was for villagers as well as for students, and gave birth to games like soccer matches. With the heat of the sports events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sports matches, those games solidified the identity of groups which were comprised of players and cheering squads. Reflecting the politics in Manzhouguo, the soccer matches in a school and a village took on a political movement, and this in turn raised the temperature of the games. As the students graduated, they formed groups such as youth associations, and these associations organized sports events, and then a group specializing in athletic games was born: an athletic association. This association then organized sports events on a larger scale, resulting in forming the identity of a district beyond schools and villages. The identity of the district was none other than the ethnic identity in Gando where most of the citizens were Koreans. Through soccer matches, Koreans in Gando could imagine ethnicity beyond their region. This is also why Korean players came to the front in Manchuria’s world of soc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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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간도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는 마을과 학교의 행사에서 지역의 행사로, 나아가 민족의 행사를 발전하였다. 이것은 축구가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였음을 뜻한다. 간도의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1910년대 중반, 1920년대 중반, 1930년대 중반이 각각 획기를 이루었다. 간도의 조선인 축구는 1910년대에 시작된 학교 운동회-학생들을 위한 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을 위한 행사이기도 하였던-에서 인기 종목으로 시작되어 마을의 축제(체육대회)와 지역 축제에서 인기 종목으로 발전하였다. 체육대회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선수와 관중(응원단)으로 구성되는 공동체의 결속이 소문과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서 운동장 바깥으로까지 확장이 되면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축구 종목은 가장 인기있는 종목의 하나로서 곧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인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가 마을을 대표하는 반면에 도시에 소재하는 중등학교는 더 이상 마을을 대표하지 않지만 주로 용정에 소재하는 조선인 사립 중학교들은 설립 주체와 이에 따른 정치적 색채가 달랐던 탓에 자주 정치적 정체성을 대표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다시 마을에서 여러 종류의 ‘청년회’를 만들었고 이 청년회가 축구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경우 청년회도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대회 자체도 발전해서 1920년대 중반에는 ‘간도체육회’가 설립되어 간도체육대회를 주최했다. 이렇게 해서 축구의 경쟁의 범위가 확장되고, 정체성의 경쟁도 마찬가지로 확장되었다.
      만주국 수립 이후에는 특히 1930년대 중반에는 간도체육회 대신에 전국적인 규모의 체육단체가 설립되어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이 시기에 간도의 조선인 축구를 위시한 만주국의 조선인 축구-목단강성과 길림성 등-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이러한 조선인 축구의 약진은 조선 내지에서도 나타났는데, 양자의 배경에는 모두 축구로 표상되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와 민족주의라는 정체성이 있었다. 축구를 통해서 간도의 조선인들은 지역 범위를 넘어서 민족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것이 조선인 축구 선수들이 만주의 축구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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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는 마을과 학교의 행사에서 지역의 행사로, 나아가 민족의 행사를 발전하였다. 이것은 축구가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였음을 뜻한다. 간도의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

      간도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는 마을과 학교의 행사에서 지역의 행사로, 나아가 민족의 행사를 발전하였다. 이것은 축구가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였음을 뜻한다. 간도의 조선인 사회에서 축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1910년대 중반, 1920년대 중반, 1930년대 중반이 각각 획기를 이루었다. 간도의 조선인 축구는 1910년대에 시작된 학교 운동회-학생들을 위한 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을 위한 행사이기도 하였던-에서 인기 종목으로 시작되어 마을의 축제(체육대회)와 지역 축제에서 인기 종목으로 발전하였다. 체육대회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선수와 관중(응원단)으로 구성되는 공동체의 결속이 소문과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서 운동장 바깥으로까지 확장이 되면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축구 종목은 가장 인기있는 종목의 하나로서 곧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인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가 마을을 대표하는 반면에 도시에 소재하는 중등학교는 더 이상 마을을 대표하지 않지만 주로 용정에 소재하는 조선인 사립 중학교들은 설립 주체와 이에 따른 정치적 색채가 달랐던 탓에 자주 정치적 정체성을 대표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다시 마을에서 여러 종류의 ‘청년회’를 만들었고 이 청년회가 축구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경우 청년회도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대회 자체도 발전해서 1920년대 중반에는 ‘간도체육회’가 설립되어 간도체육대회를 주최했다. 이렇게 해서 축구의 경쟁의 범위가 확장되고, 정체성의 경쟁도 마찬가지로 확장되었다.
      만주국 수립 이후에는 특히 1930년대 중반에는 간도체육회 대신에 전국적인 규모의 체육단체가 설립되어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이 시기에 간도의 조선인 축구를 위시한 만주국의 조선인 축구-목단강성과 길림성 등-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이러한 조선인 축구의 약진은 조선 내지에서도 나타났는데, 양자의 배경에는 모두 축구로 표상되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와 민족주의라는 정체성이 있었다. 축구를 통해서 간도의 조선인들은 지역 범위를 넘어서 민족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것이 조선인 축구 선수들이 만주의 축구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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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류연산, "혈연의 강들(하)" 연변인민출판사 1999

      2 강덕상, "현대사자료 27" 1970

      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1" 1983

      4 이학래, "한국근대체육사" 지식산업사 1994

      5 손환, "한국 최초의 운동회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 48 (48): 15-23, 2009

      6 이학래, "한국 근대체육의 연구" 지식산업사 1990

      7 이동진, "표상으로서의 스포츠: ‘조만대항경기대회’를 사례로" 4 : 2006

      8 강준만, "축구는 한국이다-한국축구 124년사" 인물과사상사 2006

      9 북경대학조선문화연구소, "체육사" 민족출판사 1998

      10 리홍준, "청말 조선인이 꾸린 사립학교(6): 반일민족교육의 선봉 명동학교, In 연변문사교육사료전집 5, In 間島史新論-선구자와 ‘친일파’들과의 싸움(1869~1945)" 우리들의편지사 1993

      1 류연산, "혈연의 강들(하)" 연변인민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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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손환, "한국 최초의 운동회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 48 (48): 15-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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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동진, "표상으로서의 스포츠: ‘조만대항경기대회’를 사례로" 4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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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북경대학조선문화연구소, "체육사" 민족출판사 1998

      10 리홍준, "청말 조선인이 꾸린 사립학교(6): 반일민족교육의 선봉 명동학교, In 연변문사교육사료전집 5, In 間島史新論-선구자와 ‘친일파’들과의 싸움(1869~1945)" 우리들의편지사 1993

      11 김광희, "청말 조선인이 꾸린 사립학교(5): 창동학교의 지난날을 그리며, In 연변문사자료 5 교육사료전집, In 間島史新論-선구자와 ‘친일파’들과의싸움(1869~1945)" 우리들의편지사 1993

      12 리봉구, "청말 조선인이 꾸린 사립학교(2): 동신학교 35년, In 연변문사자료 5 교육사료전집, In 間島史新論-선구자와 ‘친일파’들과의 싸움(1869~1945)" 우리들의편지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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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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