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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당서』의 王言과 신라의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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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구당서』 본기의 조서나 제서 등 당 황제의 왕언을 신라 국왕의 외교문서와 비교해 당 문예를 수용한 신라 문예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당의 왕언은 821년 이전 조서와 제서가 혼용되었던 반면, 821년 전후 조서와 제서는 칙서와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특히 805년~846년, 888년~908년에는 활발하게 작성되어 반포되었다. 왕언은 황실 권위 신장과 국가 안정 염원을 담았다.
      신라는 당과 외교 관계를 맺은 뒤 당의 제도 정비와 정책 시행을 꾸준히 주목했다. 신문왕 때 당시 전하는 시문을 모은 1천권 문관사림 중 규범에 해당하는 글을 모은 50권을 받았고, 성덕왕 때는 상문사를 통문박사로 개칭하고 서표의 임무를 전담시켰다. 또한 851년 편찬된 개벽~수나라 때까지 제왕의 美政과 詔令, 制置, 銅鹽錢穀 損益, 用兵, 僧道 등을 연대별로 수록한 300권 『통사』도 참고했다. 신라 왕실은 당과의 교류에서 당의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고 당의 문예에 민감했다.
      신라 문한관은 신라에 있거나 당의 국자감에 머물면서 여러 양식의 글이 담긴 『백씨장경집』 등 당 문인의 문집을 열람했고, 당 문인의 글이나 신라에 파견된 당 사절단, 또는 당 연회에 참석한 문무관과 교유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문장의 형식과 내용을 익혔다. 현재 전하는 당의 왕언과 신라의 표문을 비교하면, 형식의 통일성은 비슷하지만, 신라가 중화의 의관과 제도를 수용해 유풍을 품고 예악의 성행을 이룬 번국으로 조공의 임무를 다했음이 特記되었다.
      당이나 신라는 당시 동아시아 문서의 보편적 구성, 보편적 문체를 염두에 두어 3단락 구성과 변려문체로 외교문서를 작성했다. 신라 말에 이르러서 신라의 문한관은 중국의 제후국 중에 신라가 가장 유사한 나라라고 자부하는 소중화적 자존의식을 가지고 신라 고유정서를 문예에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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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구당서』 본기의 조서나 제서 등 당 황제의 왕언을 신라 국왕의 외교문서와 비교해 당 문예를 수용한 신라 문예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당의 왕언은 821년 이전 조서와 제서가 혼...

      이 글은 『구당서』 본기의 조서나 제서 등 당 황제의 왕언을 신라 국왕의 외교문서와 비교해 당 문예를 수용한 신라 문예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당의 왕언은 821년 이전 조서와 제서가 혼용되었던 반면, 821년 전후 조서와 제서는 칙서와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특히 805년~846년, 888년~908년에는 활발하게 작성되어 반포되었다. 왕언은 황실 권위 신장과 국가 안정 염원을 담았다.
      신라는 당과 외교 관계를 맺은 뒤 당의 제도 정비와 정책 시행을 꾸준히 주목했다. 신문왕 때 당시 전하는 시문을 모은 1천권 문관사림 중 규범에 해당하는 글을 모은 50권을 받았고, 성덕왕 때는 상문사를 통문박사로 개칭하고 서표의 임무를 전담시켰다. 또한 851년 편찬된 개벽~수나라 때까지 제왕의 美政과 詔令, 制置, 銅鹽錢穀 損益, 用兵, 僧道 등을 연대별로 수록한 300권 『통사』도 참고했다. 신라 왕실은 당과의 교류에서 당의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고 당의 문예에 민감했다.
      신라 문한관은 신라에 있거나 당의 국자감에 머물면서 여러 양식의 글이 담긴 『백씨장경집』 등 당 문인의 문집을 열람했고, 당 문인의 글이나 신라에 파견된 당 사절단, 또는 당 연회에 참석한 문무관과 교유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문장의 형식과 내용을 익혔다. 현재 전하는 당의 왕언과 신라의 표문을 비교하면, 형식의 통일성은 비슷하지만, 신라가 중화의 의관과 제도를 수용해 유풍을 품고 예악의 성행을 이룬 번국으로 조공의 임무를 다했음이 特記되었다.
      당이나 신라는 당시 동아시아 문서의 보편적 구성, 보편적 문체를 염두에 두어 3단락 구성과 변려문체로 외교문서를 작성했다. 신라 말에 이르러서 신라의 문한관은 중국의 제후국 중에 신라가 가장 유사한 나라라고 자부하는 소중화적 자존의식을 가지고 신라 고유정서를 문예에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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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구당서』 왕언과 신라의 당 문물 제도 수용
      • Ⅲ. 당의 왕언과 신라의 문예
      • Ⅳ. 맺음말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구당서』 왕언과 신라의 당 문물 제도 수용
      • Ⅲ. 당의 왕언과 신라의 문예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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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현화, "한국고대사 연구의 현단계" 주류성 2009

      2 장일규, "최치원의 사회사상 연구" 신서원 2008

      3 채미하, "진성왕 전후의 외교문서와 신라" 한국사연구회 (179) : 109-140, 2017

      4 장일규, "신라 문한직과 당 문한직의 관계-≪구당서≫를 중심으로-" 신라사학회 (45) : 409-441, 2019

      5 이기동, "신라 골품제 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1985

      6 권덕영, "고대한중외교사" 일조각 1997

      7 김한규, "고대 중국적 세계질서 연구" 일조각 1982

      8 中村裕一, "隋唐王言の硏究" 汲古書院 2003

      9 황위주, "渤海 外交文書의 實狀과 그 文體的 特徵"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6) : 197-248, 2007

      10 서영교,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7) : 328-354, 2014

      1 최현화, "한국고대사 연구의 현단계" 주류성 2009

      2 장일규, "최치원의 사회사상 연구" 신서원 2008

      3 채미하, "진성왕 전후의 외교문서와 신라" 한국사연구회 (179) : 109-140, 2017

      4 장일규, "신라 문한직과 당 문한직의 관계-≪구당서≫를 중심으로-" 신라사학회 (45) : 409-441, 2019

      5 이기동, "신라 골품제 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1985

      6 권덕영, "고대한중외교사" 일조각 1997

      7 김한규, "고대 중국적 세계질서 연구" 일조각 1982

      8 中村裕一, "隋唐王言の硏究" 汲古書院 2003

      9 황위주, "渤海 外交文書의 實狀과 그 文體的 特徵"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6) : 197-248, 2007

      10 서영교,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7) : 328-354, 2014

      11 中村裕一, "唐代制勅硏究" 汲古書院 1991

      12 金子修一, "唐代の國際文書形式について" 83 : 1974

      13 石見淸裕, "唐.太宗期の韓半島三國と中國との外交交涉史料" 일본연구소 (22) : 5-23, 2004

      14 주보돈, "『문관사림』에 보이는 한국고대사 관련 외교문서" 15 : 1992

      15 최희준, "Silla’s Perception of the International World Order as Seen through Diplomatic Documents" 한국사연구소 24 (24): 171-207, 2019

      16 이강래, "7세기 이후 중국사서에 나타난 韓國古代史像-통일기 신라를 중심으로" 14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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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 0.5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1 0.58 0.981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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