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의 출현은 정주학의 해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학파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를 거쳐 오규 소라이(荻生.徠)의 고문사학(古文.學)에서 정점에 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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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의 출현은 정주학의 해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학파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를 거쳐 오규 소라이(荻生.徠)의 고문사학(古文.學)에서 정점에 달한다. ...
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의 출현은 정주학의 해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학파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를 거쳐 오규 소라이(荻生.徠)의 고문사학(古文.學)에서 정점에 달한다. 주자학의 극복과 해체의 끝에 출현한 학문이 소라이학이라고 볼 수 있다. 소라이는 주자학의 사서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육경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육경에 제시된 성인의 도를 예악으로 간주하면서 원시 유학으로의 복고를 주장했다. 소라이는 주자학적 사유 위에 출발한 도쿠가와 시대를 ‘제도 없는 시대’라 단정하면서 예법 질서위에 정치 사회 문화를 포괄한 제도의 제정을 역설했다. 본고는 소라이 당대의 사회 문화 풍속에 시선을 고정해두고 소라이가 주자학적 사유구조의 병폐를 치료하여 고대 성인이 제작한 예법 질서로 돌아가려한 이유를 분석했다. 소라이는 전 민중을 토착화시키고 그 위에 예법 질서를 구현하여 문화 풍속을 치료하려는 구상을 가졌다. 소라이는 예법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서 주자학적인 수양론을 비판하고 선왕이 제작한 예악이라는 외부적 힘에 의한 수양을 강조했다. 인성 내부에는 도덕적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고대 선왕이 제작한 성인의 도에 판단 기준을 둔 것이다. 소라 이가 구상했던 것은 집단을 어떤 환경에 노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그 해결책의 모색이었다. 소라이의 시선은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를 시야에 넣은 전체적 관점에서의 사회 문화 풍속의 교화에 있었다. 본고는 사상 문화의 집단적 치료라는 관점에서 유학의 기능을 모색해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시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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