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6세기 초반의 인물인 마애 권예의 삶과 그가 만년에 경영한 낙강정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권예는 조선선비들의 참화로 불리는 4대 사화의 하나인 기묘사화의 중심에 서서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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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79-20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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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세기 초반의 인물인 마애 권예의 삶과 그가 만년에 경영한 낙강정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권예는 조선선비들의 참화로 불리는 4대 사화의 하나인 기묘사화의 중심에 서서 공명...
이 논문은 16세기 초반의 인물인 마애 권예의 삶과 그가 만년에 경영한 낙강정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권예는 조선선비들의 참화로 불리는 4대 사화의 하나인 기묘사화의 중심에 서서 공명정대한 신념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당시 춘추관기사관으로 있던 그는 기묘사화가 일어난 다음날인 1519년 11월 16일에 거사의 발생을 듣고서 25세의 혈기로 국왕 중종을 직접 대면하여 거사의 부당함을 직언하는 등 기묘사화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과단성 있는 행동은 동방의 현인으로 추앙받는 퇴계 이황에 의해 높이 평가받았다. 또 그가 장수지소로 경영한 낙강정 또한 퇴계가 이곳을 찾음으로 인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때 읊은 퇴계의 7언 절구 마지막 구의 `판서연(判書淵)` 세 글자로 인해 낙강정은 판서연으로 거듭 태어났다. 판서연으로 거듭난 낙강정은 이후 몇 차례의 중건과 이건 과정을 겪었으며, 2011년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낙강정에는 현재 낙강정과 판서연 편액을 비롯한 중수기문, 제영시 등 모두 16점의 현판이 걸려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thesis, Maae Kwon Ye`s life, a figure in the early 16th century, and Nakgangjeong run by him in his latter days were examined. Kwon Ye was a person who was at the center of Gimyosahwa, one of 4 massacres of scholars in Joseon, and tried to ove...
In this thesis, Maae Kwon Ye`s life, a figure in the early 16th century, and Nakgangjeong run by him in his latter days were examined. Kwon Ye was a person who was at the center of Gimyosahwa, one of 4 massacres of scholars in Joseon, and tried to overcome it with impartial faith. At that time, he was working as a Chunchugwangisagwan, and when he heard about the rebellion on November 16, 1519, the next day of Gimyosahwa, and made efforts to overcome Gimyosahwa wisely by meeting King Jungjong face to face and making forthright statements about the unfairness of the uprising with the vigor of a 25-year-old youth. His decisive action was highly estimated by Toegye Lee Hwang revered as a wise man of the East. In addition, Nakgangjeong he ran as Jangsujiso also became known by Toegye`s visit to the place. With the three letters, `Panseoyeon(判書淵)`, in the last phrase of 7eon Jeolgu recited by Toegye, Nakgangjeong became born again as Panseoyeon. Nakgangjeong that had been born again as Panseoyeon went through several reconstructions and relocations later. On Nakgangjeong designated as Gyeongsangbukdo local cultural asset in 2011 hang 16 pieces of signboards in total including Nakgangjeong and Panseonyeon tablets, Jungsugimun, Jeyeongsi and etc.
참고문헌 (Reference)
1 정두희, "기묘사화와 조광조" 역사학회 146 : 1995
2 權輗, "磨厓先生文集" 경인문화사 1996
3 金義貞, "潛庵逸稿" 경인문화사 1987
4 "晉書"
5 정구복, "中宗朝 磨厓 權輗의 史草" 한국서지학회 8 : 1992
6 김경수, "中宗朝 權輗의 史草에 帶한 硏究" 한국고문서학회 9 : 1996
7 "中宗實錄"
8 權訪,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7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9 金㙆,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5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10 金若鍊,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1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1 정두희, "기묘사화와 조광조" 역사학회 146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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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金義貞, "潛庵逸稿" 경인문화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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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구복, "中宗朝 磨厓 權輗의 史草" 한국서지학회 8 : 1992
6 김경수, "中宗朝 權輗의 史草에 帶한 硏究" 한국고문서학회 9 : 1996
7 "中宗實錄"
8 權訪,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7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9 金㙆,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5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10 金若鍊,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속91집" 민족문화추진회 2010
11 權好文,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41집" 민족문화추진회 1991
12 具鳳齡,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39집" 민족문화추진회 1991
13 李滉,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29집" 민족문화추진회 1991
14 周世鵬, "(標點影印) 韓國文集叢刊 26집" 민족문화추진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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