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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응시와 윤리의 감각: 당크바르트의 <무임승객>과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인종적 타자 재현 비교 = Strange Gazes and the Sense of Ethics: Representing the Racial Other in Danquart’s Black Rider and Park Chan-wook’s Never Ending Peace and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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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다민족·다문화 사회에 대한 담론이 첨예해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10년 ‘다문화 사회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한 지 15년이 지난 독일 사례는 중요한 비교 준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일상적 혐오를 다룬 제66회 아카데미 수상작인 당크바르트(Pepe Danquart)의 <무임승객>과 행려병자로 오인되어 시설에 강제 수용된 네팔 노동자 실화를 다룬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 대한 비교는 - 10년의 제작 간극과 서로 다른 역사·사회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 이방인의 시선에서 공통적으로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주 노동사에서 통일 직후 1990년대 초 독일이 이미 ‘인종의 계급화’가 고착화한 상태에서, 2등 시민 의식이 팽배했던 동독지역 내부에서의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극에 달했던 일명 ‘야구방망이 시절(Baseballschlägerjahre)’이었다면, 한국은 1991년 산업 기술 연수제 도입을 기점으로 선주민과의 차별이 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이주노동자의 인종화(Racialization)’가 내재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당크바르트와 박찬욱은 각각 ‘불필요한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와 실재하는 타자에 대한 무지와 격리를 재현하는 데 있어서,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응시 구조와 대항적인, 영화적 환영을 깨뜨리거나 타자를 관찰자 시점에 참여시키는 낯선 응시(Gaze)를 통해 관객이 절시증적(scopophilic) 외부 관찰의 위치에서 벗어나 사건에 관여하고, 감각하고 성찰하게 하는 일종의 윤리적 주체로서의 시선을 카메라에 부여한다. 이를 통해 당크바르트가 현대의 ‘인종 없는 인종주의’ 아래 은밀히 승인되고 재생산되는 독일의 백인우월주의와 공존 불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던 반면, 박찬욱은 한국 사회에 이미 내면화된 인종주의, 즉 피부색과 같은 외형과 경제적 계급에 따른 위계와 편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찬드라 사건을 조명하면서, 실존 얼굴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이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로부터의 윤리적 부름’에 응답하게 하고, 공존 가능성을 윤리적 책임의 관점에서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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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민족·다문화 사회에 대한 담론이 첨예해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10년 ‘다문화 사회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한 지 15년이 지난 독일 사례는 중요한 비교 준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

    다민족·다문화 사회에 대한 담론이 첨예해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10년 ‘다문화 사회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한 지 15년이 지난 독일 사례는 중요한 비교 준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일상적 혐오를 다룬 제66회 아카데미 수상작인 당크바르트(Pepe Danquart)의 <무임승객>과 행려병자로 오인되어 시설에 강제 수용된 네팔 노동자 실화를 다룬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 대한 비교는 - 10년의 제작 간극과 서로 다른 역사·사회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 이방인의 시선에서 공통적으로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주 노동사에서 통일 직후 1990년대 초 독일이 이미 ‘인종의 계급화’가 고착화한 상태에서, 2등 시민 의식이 팽배했던 동독지역 내부에서의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극에 달했던 일명 ‘야구방망이 시절(Baseballschlägerjahre)’이었다면, 한국은 1991년 산업 기술 연수제 도입을 기점으로 선주민과의 차별이 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이주노동자의 인종화(Racialization)’가 내재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당크바르트와 박찬욱은 각각 ‘불필요한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와 실재하는 타자에 대한 무지와 격리를 재현하는 데 있어서,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응시 구조와 대항적인, 영화적 환영을 깨뜨리거나 타자를 관찰자 시점에 참여시키는 낯선 응시(Gaze)를 통해 관객이 절시증적(scopophilic) 외부 관찰의 위치에서 벗어나 사건에 관여하고, 감각하고 성찰하게 하는 일종의 윤리적 주체로서의 시선을 카메라에 부여한다. 이를 통해 당크바르트가 현대의 ‘인종 없는 인종주의’ 아래 은밀히 승인되고 재생산되는 독일의 백인우월주의와 공존 불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던 반면, 박찬욱은 한국 사회에 이미 내면화된 인종주의, 즉 피부색과 같은 외형과 경제적 계급에 따른 위계와 편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찬드라 사건을 조명하면서, 실존 얼굴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이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로부터의 윤리적 부름’에 응답하게 하고, 공존 가능성을 윤리적 책임의 관점에서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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