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일반섭리’란 이성, 의식, 그리고 자유의지가 허용되는 우주와 인간에게서 모든 사건을 이끌어가는 신의 보편적 행위를 가리킨다. 일반섭리는 ‘자연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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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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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일반섭리’란 이성, 의식, 그리고 자유의지가 허용되는 우주와 인간에게서 모든 사건을 이끌어가는 신의 보편적 행위를 가리킨다. 일반섭리는 ‘자연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자연계시는 자연을 초월해서 계속적으로 활동하는 신에 의해 주어지고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특별섭리’란 특정한 사건에서의 신의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키며, 섭리에 대한 확신이 개인의 삶과 역사 속에서 특정한 구원의 순간을 맥락으로 해서 생겨나는 경향이 있기에 그에 대한 확신은 특별섭리의 측면에서 가장 쉽게 이해된다고 여겨진다.
계몽주의 이후, 객관적인 특별섭리의 관념은 신적인 개입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켜 온 것으로 보인다. 즉 그것은 신이 특정한 사건 속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신이 자연에 개입해서 자연법칙을 위반하거나 적어도 잠시 중단시켜야 한다는 믿음이다. 객관적인 특별섭리와 개입 사이의 연결 고리가 포착된 원인이 기계론적 물리학과 환원주의 철학의 결합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대성이론, 양자 물리학 그리고 유전학과 진화 현상 등과 같은 자연과학의 새로운 변화, 즉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 보다 크다’는 인식론적 변화로 인해 이제 우리는 특별섭리를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신의 객관적 행위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의 특별섭리는 더 이상 과학과 대립되지 않는 비개입주의적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신이 구체적인 특정 순간들 속에서 행위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일대일 대응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현대 과학의 묘사와 성경 속 창조의 풍경 간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이유는 창세기에서 세상이 6일 만에 창조되었고 변치 않은 채로 계속해서 유지된다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 현대과학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우리는 성경 속에서 신의 창조적 활동에 관한 또 다른 묘사들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세계 역사를 통하여 계속적인 창조 모델이 될 것이다. 창세기에서의 6일 창조와는 반대로 이러한 묘사는 우리에게 하늘과 땅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공하며, 우주의 역사라는 견지에서 자연의 현대적 이해에 한층 더 가깝게 된다. 오히려 그러한 계속적 창조의 견해는 오늘날의 진화 이론과 일치됨을 보여준다.
인과율 개념을 전체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할 때 우리는 ‘상향식 인과율(Bottom-up causality)’의 입장에 서게 된다. 상향식 인과율이란 전체 시스템의 특성과 행동에 미치는 각 요소들의 특성과 행동의 영향을 가리킨다. 반대로 각 구성 단위요소의 행동에 미치는 전체로서의 시스템 상태의 영향은 ‘하향식 인과율(Top-down causality)’이라 부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접근이 반대 방면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하향식 인과율이 상향식 인과율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전적 성향과 같은 하부 수준의 요인들 뿐 아니라 특히 사회적 환경에 속하는 상위 수준의 요인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적 행위는 하향식 인과율에 적합하다. 하향식 인과율은 상향식 인과율로만은 보상될 수 없는 우연이나 기적과 같은 사건인 신적 행위에 더 나은 해석을 허용한다. 이는 신적 행위의 모든 영향이 유전자나 양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는 어느 정도 부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여기서 주어진 수준 내에 있는 전체의 특성들은 그를 구성하는 부분의 특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세상 속에는 환원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한다.
상향식 접근을 원하는 이들은 신학과 과학에서 주로 귀납적인 절차를 비교‧이용하며, 그들의 임무와 접근법의 공통점및 차이점을 연구하려 한다. 상향식 접근은 더 탐구적이고, 실재에 대한 과학적이고 신학적 접근 간의 공통점 및 차이점 모두를 찾으려 한다. 하향식 접근을 원하는 이들은 신학적이며 과학적인 방향설정을 위한 공통점으로서 특정한 유신론의 형이상학을 옹호하고 최적화하려고 한다. 하향식 인과율은 자비로운 사랑으로 신의 자기 소통에 대한 능력을 지닌 의식 또는 자의식이 있는 피조물의 행위를 고려해 볼 때 도움이 된다. 만일 신이 진화적 역사 속에서 복잡성의 상위 수준에서 일한다면, 복잡성의 수준은 존재론적으로 열려 있어야만 한다. 즉 복잡성의 수준은 형이상학적 비결정주의의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는 법칙에 의해 묘사되어야만 한다. 사실 이런 주장들을 근거로 살펴볼 때, 어떤 자연법칙이나 규칙성을 깨지 않고 하향식 인과율을 가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하향식 인과율은 비개입주의와 정말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