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부여계의 건국세력과 마한계의 피지배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중적(二重的)주민구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부여계의 건국세력은 동명묘(東明廟)를 숭배하며 부여계임을 지켰고, 마한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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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orean
백제 ; 천도 ; 부여계 ; 마한계 ; 정체성 ; BAEKJE ; Transfer of the Capital ; People of BUYEO Extraction ; People of MAHAN Extraction ; Identity
001
KCI등재
학술저널
139-169(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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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부여계의 건국세력과 마한계의 피지배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중적(二重的)주민구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부여계의 건국세력은 동명묘(東明廟)를 숭배하며 부여계임을 지켰고, 마한계 ...
백제는 부여계의 건국세력과 마한계의 피지배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중적(二重的)주민구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부여계의 건국세력은 동명묘(東明廟)를 숭배하며 부여계임을 지켰고, 마한계 피지배세력은 백제의 직접지배가 4세기 후반까지 오늘날 충남 일부 지역까지만 미쳤기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제의 정체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남천(南遷)이후 백제내에서 동명신앙이 쇠퇴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원인으로 백제의 도성이 한강지역에서 웅진으로 옮겨졌다는 점을 고려 할 수 있다. 이때 웅진은 백제의 직접지배가 된지 불과 1백여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백제 지배세력의 정체성이 전파되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한계 피지배세력은 백제의 천도 이후 백제의 중심세력으로 포함 되었다. 즉 건국집단의 부여계 정체성이 약해지고, 마한계가 중심세력으로 편입되면서 백제가 부여계의 국가가 아닌 마한계 국가가 되어갔던 것이다.
백제의 첫 번째 도성이었던 한성(漢城)은 방어와 경제력이 중시되어 선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도성인 웅진(熊津)은 좁은 지형 때문에 인적 · 물적 자원이 확보가 힘든 임시적 성격을 띤 도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4세기 후반까지 백제의 직접적 지배가 오늘날 충남 일부 지역까지였기 때문에 웅진 이남의 지역으로 천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세 번째 도성인 사비(泗?)는 금강이 방어선을 형성해주고 평야가 인접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역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사비로의 천도는 백제 중앙 지배세력의 마한계 중심지였던 익산으로의 접근이며, 마한 세력의 융합을 다분히 염두에 둔 정치적 조치와도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백제의 웅진과 사비로의 천도는 군사적, 지리적 요소 또는 지역 세력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백제의 정체성 변화와 더불어 부여계와 마한계의 융합(融合) 차원까지 고려된 천도라 볼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AEKJE was comprised of people of BUYEO extraction, namely the ruling class, and people of MAHAN extraction, i.e., subjugated class. The ruling class runs in its blood, inheriting the culture of KING DONGMYEONG. Even though they could keep from their ...
BAEKJE was comprised of people of BUYEO extraction, namely the ruling class, and people of MAHAN extraction, i.e., subjugated class. The ruling class runs in its blood, inheriting the culture of KING DONGMYEONG. Even though they could keep from their roots, the ruling class did not extend all over the country. They only extended to the southwest of the Central Korean Peninsula by the late 4th century.
After invasion of KING KWANGGAETO, BAEKJE began to decline in national power and lost their pride. The death of KING KWANGGAETO and loss of authority situations led decaying in the inherited culture of KING DONGMEONG. The sudden capital movement from the HAN River to UNGJIN was the transition point of BAEKJE. However, UNGJIN was even not ready to be under BAEKJE. UNGJIN had been only one hundreds year under the rule of BAEKJE, so the culture, political belief, custom of UNGJIN was not identical with BAEKJE.
In the meantime, MAHAN extraction began to be a part of central force of BAEKJE. The established group of people gained the country area that was made after transfer to South, and culture and characteristic of BUYEO extraction was weaken by the previous situation. Moreover, the situation led the various residents’ tradition and culture of MAHAN to be considered, and made the country impossible to manage.
The first capital, HANSEONG, was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country. It was likely to be focused on defense and economic development. The second capital, UNGJIN, was a temporary place in case of emergency. It refers to the situation, which is BAEKJE extended control area to a location south of UNGJIN by the late of 4th century. That is the reason why a new capital was replaced with UNGJIN. The third capital, SABI, was advantageous for economic development. GEUM River formed a defense line, and it was close to the plain area. Moreover, the capital’s being moved to SABI led to access to IKSAN, home to people of MAHAN extraction, which may be defined as a political ground work to integrate people of MAHAN extraction.
Consequently, BAEKJE’s transferred its capital to UNGJIN and SABI, was because of military and topographical factors, relationships with local forces. Simultaneously, changes in its identity and the integration of the two powers between BUYEO and MAHAN extraction continuously made MAHAN stronger as a country.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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