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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 御用畵師 가노파狩野派와 朝鮮 관련 繪畫 = The Japanese Kano School and their Paintings related with the Korean Envoy sent 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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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326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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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he 17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Joseon envoy began to be dispatched to Japan. This paper shed light on the activities of the Kano school painters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this period. The Kano school was established as a representative group of court painters after Kano Danyu in the 17th century. The Kano school painters worked in various fields such as the gilded screen paintings for the Korean king as presents, the documentary painting of the procession of the Korean envoy on land and the travel of the Korean envoy on ship, the portrait painting of the envoy members, the appraisal of the Korean painting etcs..
      Since the 17th century, Kano school painterss were the most active group of Japanese painters in diplomacy with Joseon. They continued to produce paintings related to the Korean envoys with orders from the shogunate and the daimyo. In addition, after the Korean envoy arrived in Edo, they were ordered to visit the place where the Korean envoy stayed and made direct relationships with them.
      In this article, some representative catagories were set up to show the role of the Kano school painters in diplomatic exchanges with the Korean envoy. For the result, it was possible to consistently examine the role of Kano school artists in regard with the Korean envoy.
      Since the 17th century, Kano school painters were the most active group of Japanese painters 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Joseon. They continued to produce paintings related to the Korean envoy with orders from the shogunate and the daimyo. In the process, the Kano painters became a group of artists with the most information about Joseon and Joseon paintings. However, they were not very much interested in Joseon painting and culture as most Japanese officials did. Since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they sometimes imitated Korean paintings, but did not actively accept the influence of Korean paintings. This differs significantly from the private intellectual artists in Kyoto and Osaka who were active in communicating with Korean envoy members and painters, and actively accepted the style and technique of the Korean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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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the 17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Joseon envoy began to be dispatched to Japan. This paper shed light on the activities of the Kano school painters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this period. The...

      After the 17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Joseon envoy began to be dispatched to Japan. This paper shed light on the activities of the Kano school painters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this period. The Kano school was established as a representative group of court painters after Kano Danyu in the 17th century. The Kano school painters worked in various fields such as the gilded screen paintings for the Korean king as presents, the documentary painting of the procession of the Korean envoy on land and the travel of the Korean envoy on ship, the portrait painting of the envoy members, the appraisal of the Korean painting etcs..
      Since the 17th century, Kano school painterss were the most active group of Japanese painters in diplomacy with Joseon. They continued to produce paintings related to the Korean envoys with orders from the shogunate and the daimyo. In addition, after the Korean envoy arrived in Edo, they were ordered to visit the place where the Korean envoy stayed and made direct relationships with them.
      In this article, some representative catagories were set up to show the role of the Kano school painters in diplomatic exchanges with the Korean envoy. For the result, it was possible to consistently examine the role of Kano school artists in regard with the Korean envoy.
      Since the 17th century, Kano school painters were the most active group of Japanese painters 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Joseon. They continued to produce paintings related to the Korean envoy with orders from the shogunate and the daimyo. In the process, the Kano painters became a group of artists with the most information about Joseon and Joseon paintings. However, they were not very much interested in Joseon painting and culture as most Japanese officials did. Since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they sometimes imitated Korean paintings, but did not actively accept the influence of Korean paintings. This differs significantly from the private intellectual artists in Kyoto and Osaka who were active in communicating with Korean envoy members and painters, and actively accepted the style and technique of the Korean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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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7세기 이후 조선과 일본은 상호교린체제를 유지하면서 조선 통신사의 일본 파견이시작되었고, 1811년까지 12차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시기 동안조선과의 교류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한 가노파 화가들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 고찰하였다.
      가노파는 17세기 가노 단유 이후 대표적인 어용화가집단으로 정립되면서 에도가노파를 형성하였고, 막부와 조정을 위해 봉직하였다. 에도가노파 화가들은 가장 대표적인 어용화가인 오쿠에시와 그 다음 단계의 어용화가인 오모테에시로 구성되었다. 또한그 제자와 방계 화가들이 지방에서 大名를 위한 어용화가로서 활약하면서 전국적으로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에도가노파 화가들은 오쿠에시와 오모테에시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조선에 선사하는 증정용 병풍, 행렬도와 선단도 등의 기록화, 통신사 일행의 초상화, 조선회화의 감정과 축도 제작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본고에서는 에도가노파의 활약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항목을 설정하여 통신사와의 교류에서 이들이 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동안 이들이 관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작품에 대하여 산발적으로 거론되기는 하였지만, 가노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정리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여러 자료와 기록을 함께 모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조선 통신사가 파견된 동안 일본의 어용화가집단을 대표하는 가노파 화가들이 어떠한 활약을 하였는지 일관되게 고찰할 수 있었다.
      17세기 이후 가노파 화가들은 일본의 화가 집단 중 조선과의 외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幕府나 大名의 주문으로 조선 통신사와 관련된 회화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하였다. 또한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한 이후에는 통신사의 숙소를방문하여 직접적인 교류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과 조선회화에대하여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화가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의 조정에 속한 관료화된 화가들로서 조선의 회화 자체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은 높지 않았던것으로 보인다. 조선과 조선 회화에 대해서 늘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정과 수장, 작품에 대한 기록도 병행하였던 만큼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회화와 관련된 많은 기록과 감정 활동에도 기여하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회화를 모방하거나영향을 수용한 면모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회화의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이는 교토나 오사카의 민간 지식인 화가들이조선 통신사 수행원 및 화가와의 교류에 적극적이었고, 조선의 화법 등을 자발적으로수용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는 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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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이후 조선과 일본은 상호교린체제를 유지하면서 조선 통신사의 일본 파견이시작되었고, 1811년까지 12차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시기 동안조선과의 교류에서 적...

      17세기 이후 조선과 일본은 상호교린체제를 유지하면서 조선 통신사의 일본 파견이시작되었고, 1811년까지 12차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시기 동안조선과의 교류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한 가노파 화가들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 고찰하였다.
      가노파는 17세기 가노 단유 이후 대표적인 어용화가집단으로 정립되면서 에도가노파를 형성하였고, 막부와 조정을 위해 봉직하였다. 에도가노파 화가들은 가장 대표적인 어용화가인 오쿠에시와 그 다음 단계의 어용화가인 오모테에시로 구성되었다. 또한그 제자와 방계 화가들이 지방에서 大名를 위한 어용화가로서 활약하면서 전국적으로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에도가노파 화가들은 오쿠에시와 오모테에시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조선에 선사하는 증정용 병풍, 행렬도와 선단도 등의 기록화, 통신사 일행의 초상화, 조선회화의 감정과 축도 제작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본고에서는 에도가노파의 활약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항목을 설정하여 통신사와의 교류에서 이들이 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동안 이들이 관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작품에 대하여 산발적으로 거론되기는 하였지만, 가노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정리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여러 자료와 기록을 함께 모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조선 통신사가 파견된 동안 일본의 어용화가집단을 대표하는 가노파 화가들이 어떠한 활약을 하였는지 일관되게 고찰할 수 있었다.
      17세기 이후 가노파 화가들은 일본의 화가 집단 중 조선과의 외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幕府나 大名의 주문으로 조선 통신사와 관련된 회화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하였다. 또한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한 이후에는 통신사의 숙소를방문하여 직접적인 교류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과 조선회화에대하여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화가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의 조정에 속한 관료화된 화가들로서 조선의 회화 자체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은 높지 않았던것으로 보인다. 조선과 조선 회화에 대해서 늘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정과 수장, 작품에 대한 기록도 병행하였던 만큼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회화와 관련된 많은 기록과 감정 활동에도 기여하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회화를 모방하거나영향을 수용한 면모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회화의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이는 교토나 오사카의 민간 지식인 화가들이조선 통신사 수행원 및 화가와의 교류에 적극적이었고, 조선의 화법 등을 자발적으로수용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는 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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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홍선표, "조선통신사행렬"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국사편찬위원회 2005

      2 나카오 히로시,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울 2017

      3 나카오 히로시,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울 2017

      4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통신사" 국립중앙박물관 1986

      5 한태문, "조선시대 통신사 행렬"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 국사편찬위원회 2005

      6 김현문, "동사록" 혜안 2007

      7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조선의 대외교류" 국립중앙박물관 2002

      8 하지모토 신지, "關東水墨畵と朝鮮王朝の繪畫" 勉誠出版 120 : 2009

      9 仲尾宏, "通信使をよみなおす" 明石書店 2006

      10 오모토 노리코, "近世御用繪師の史的硏究" 思文閣出版 2008

      1 홍선표, "조선통신사행렬"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국사편찬위원회 2005

      2 나카오 히로시,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울 2017

      3 나카오 히로시,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울 2017

      4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통신사" 국립중앙박물관 1986

      5 한태문, "조선시대 통신사 행렬"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 국사편찬위원회 2005

      6 김현문, "동사록" 혜안 2007

      7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조선의 대외교류" 국립중앙박물관 2002

      8 하지모토 신지, "關東水墨畵と朝鮮王朝の繪畫" 勉誠出版 120 : 2009

      9 仲尾宏, "通信使をよみなおす" 明石書店 2006

      10 오모토 노리코, "近世御用繪師の史的硏究" 思文閣出版 2008

      11 사가키하라 사토루, "美の架け橋" べりかん社 2002

      12 박은순, "繪畵를 통한 疏通 : 새로운 맥락으로 보는 韓日繪畫交流(Ⅰ) − 일본 다이묘(大名)가 소장한 조선그림 −" 온지학회 (35) : 529-570, 2013

      13 박은순, "繪畵를 통한 疏通 : 가노 탄유[狩野探幽]가 기록한 조선그림" 온지학회 (47) : 241-278, 2016

      14 고바야시 노리코, "筑前御抱え繪師 硏究" 中央公論美術出版 2004

      15 다케다 쓰네오, "狩野派繪畫史" 吉川弘文館 1995

      16 고노 모토아키, "狩野派を中心とする官學派の硏究" 東京大學文學部美術史硏究室 1993

      17 야스무라 도시노부, "狩野派" 東京美術 2006

      18 尹芝惠, "浮世繪に描かれた朝鮮通信使" 島藝術學會 17 : 2004

      19 尹芝惠, "江戶繪畫に描かがれた朝鮮通信使の樂隊" 10 : 2005

      20 차미애, "江戶時代 通信使登城行列圖" 미술사연구회 (20) : 273-310, 2006

      21 나카베 요시타가, "江戶の狩野派" 大和文華館 2007

      22 호소노 마사노부, "江戶の狩野派" 至文堂 3 (3): 1988

      23 이가라시 고이치, "正德度贈朝屛風の問題" 14 : 2003

      24 정은주, "正德元年(1711) 朝鮮通信使行列繪卷 연구" 한국미술연구소 (23) : 205-240, 2006

      25 任守幹, "東槎日記"

      26 다시로 가즈이, "朝鮮通信使行列圖繪卷の硏究" 137 : 1990

      27 "朝鮮通信使展-江戶時代の善隣外交" 東京國立博物館 2004

      28 고바야시 타다시, "朝鮮通信使の記錄畵と風俗畵" 講談社 3 : 1985

      29 "朝鮮通信使の來日と文化の交流展"

      30 요시다 히로유키, "朝鮮通信使と日本人" 學生社 2000

      31 요시다 히로유키, "朝鮮通信使と日本人" 學生社 2000

      32 "朝鮮王朝の繪畵と日本: 宗達,大雅, 若冲も學んだ隣國の美" 讀賣新聞大阪本社 2008

      33 "日光東照宮の寶物" 大塚巧藝社 1993

      34 오다키 키요코, "日光 朝鮮通信使- 寬永十三年 通信使" 靑丘文庫 (1) : 1979

      35 辛基秀, "描かれた「異國」「異域」" 大阪人權博物館 2001

      36 "描かれた「異國」「異域」" 大阪人權博物館 2001

      37 구로가와 슈이치, "描かれた朝鮮通信使" 勉誠出版 120 : 2009

      38 辛基秀, "大系朝鮮通信使 4卷" 明石書店 1993

      39 仲尾宏, "大系朝鮮通信使 4卷" 明石書店 1993

      40 이원기, "大系朝鮮通信使 2卷" 明石書店 1996

      41 "大系朝鮮通信使 1卷-8卷" 明石書店 1993

      42 ロナルド·トビ, "大系朝鮮通信使 1卷" 明石書店 1996

      43 이타쿠라 마사아키, "圖像 意味, 日本美術史3" 東京國立大學校出版會 2005

      44 ロナルド·トビ, "國華 1294" 華社·朝日新聞社 2003

      45 정미연,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通信使 受贈 日本 金屛風 考察" 국립중앙박물관 (91) : 186-218, 2017

      46 이가라시 고이치, "京狩野三代き殘り物語" 吉川弘文館 2012

      47 와키사카 아쯔시, "京狩野の硏究" 中央公論社 2010

      48 鄭銀志, "久隅守景筆 「朝鮮通信使行列図屏風」にみる服飾の考察" 57 (57): 2006

      49 "こころの交流朝鮮通信使" 京都文化會館 2001

      50 박은순, "19세기「朝鮮書畵傳」을 통해 본 韓日 繪畫交流" 한국미술사학회 273 (273): 133-162, 2012

      51 홍선표, "18세기 한일 문화교류의 양상" 태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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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0-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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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5 0.45 0.5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5 0.5 0.831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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