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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713년 대구부 해동촌면 相訟과 갈등의 連鎖: 옻골 경주 최씨 백불암 고문서의 미시사적 접근 = Literati and Lawsuits: Local Literati’s Arrogation of Power to Commoners and Case of Ch oe Suhak in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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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714년 대구부의 사비 막금은 소지를 올렸다. 아들 만립이 상전이 시킨 일을 마치고 소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채담령이라는 양반에게 양반 앞에서 범마(犯馬)했다는 죄로 구타한 뒤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피소당한 채담령은 오히려 막금의 상전 최정석이 종을 풀어 행패를 부렸다고 관에 소지를 올렸다. 최정석은 만립 실종 사건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며, 채담령의 집에 종을 풀어 행패를 풀었다는 혐의로 피소된 것을 항변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운봉에서 사망한 부(父) 최수학이 김동백의 무고를 받아 유배 간 1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최수학을 무고했던 김동백이 채담령의 고공노(雇工奴)라 하며, 원수 채담령의 처벌을 촉구하였다. 최정석이 언급한 부(父) 최수학의 사건은 1713년에 있었다. 무과에 급제하고 관직을 역임한 최수학은 중년에 병이 들어 낙향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민 김동백의 아내 김조이가 소지를 올렸다. 김동백이 최수학 집 근처에 있는 양산에서 벌목을 했는데, 최수학이 김동백을 잡아와서 발가벗긴 뒤 머리를 풀고 족장 50대를 쳤다는 것이다. 더하여 기와를 구워 이익을 나눈 점, 양산(養山)의 나무와 숯을 마을 사람들에게 값을 받고 판매한 점, 제언을 축조하여 수리를 독점한 점 등도 같이 소지에 담겨 있었다. 최수학은 원정을 올려 항변하였지만 숙종은 최수학을 호강으로 판단하고 운봉으로 유배 보냈고, 최수학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평민 김동백이 양반 최수학을 고소하였지만, 대질심문도 이뤄지지 않았고 최수학은 숙종의 재가를 받아 기한이 없이 정배되었다. 향촌 신분질서에 위배되는 신속한 처벌은 조선 후기 국가 형정의 중앙집권화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이념을 실현하려는 국왕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국가권력이 향촌 깊숙하게 침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수학과 똑같은 혐의로 피소된 채담령은 처벌받지 않았다. 최수학·최정석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를 내렸던 지방관, 경상감사는 모두 노론·소론이었다. 영남 남인 내부의 분열로 야기된 향전을 이용하여 영남을 통제하려는 집권 노론·소론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사건들은 18세기 초 향촌에서 일어났던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천민, 평민,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을 지낸 양반, 잔반화되어 가던 향반 등 향촌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살며 발생한 갈등·반목이 국왕 및 집권 정치 세력이라는 중앙의 거대한 권력과 연쇄적으로 맞물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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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4년 대구부의 사비 막금은 소지를 올렸다. 아들 만립이 상전이 시킨 일을 마치고 소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채담령이라는 양반에게 양반 앞에서 범마(犯馬)했다는 죄로 구타한 뒤 실종되었...

    1714년 대구부의 사비 막금은 소지를 올렸다. 아들 만립이 상전이 시킨 일을 마치고 소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채담령이라는 양반에게 양반 앞에서 범마(犯馬)했다는 죄로 구타한 뒤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피소당한 채담령은 오히려 막금의 상전 최정석이 종을 풀어 행패를 부렸다고 관에 소지를 올렸다. 최정석은 만립 실종 사건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며, 채담령의 집에 종을 풀어 행패를 풀었다는 혐의로 피소된 것을 항변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운봉에서 사망한 부(父) 최수학이 김동백의 무고를 받아 유배 간 1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최수학을 무고했던 김동백이 채담령의 고공노(雇工奴)라 하며, 원수 채담령의 처벌을 촉구하였다. 최정석이 언급한 부(父) 최수학의 사건은 1713년에 있었다. 무과에 급제하고 관직을 역임한 최수학은 중년에 병이 들어 낙향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민 김동백의 아내 김조이가 소지를 올렸다. 김동백이 최수학 집 근처에 있는 양산에서 벌목을 했는데, 최수학이 김동백을 잡아와서 발가벗긴 뒤 머리를 풀고 족장 50대를 쳤다는 것이다. 더하여 기와를 구워 이익을 나눈 점, 양산(養山)의 나무와 숯을 마을 사람들에게 값을 받고 판매한 점, 제언을 축조하여 수리를 독점한 점 등도 같이 소지에 담겨 있었다. 최수학은 원정을 올려 항변하였지만 숙종은 최수학을 호강으로 판단하고 운봉으로 유배 보냈고, 최수학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평민 김동백이 양반 최수학을 고소하였지만, 대질심문도 이뤄지지 않았고 최수학은 숙종의 재가를 받아 기한이 없이 정배되었다. 향촌 신분질서에 위배되는 신속한 처벌은 조선 후기 국가 형정의 중앙집권화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이념을 실현하려는 국왕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국가권력이 향촌 깊숙하게 침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수학과 똑같은 혐의로 피소된 채담령은 처벌받지 않았다. 최수학·최정석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를 내렸던 지방관, 경상감사는 모두 노론·소론이었다. 영남 남인 내부의 분열로 야기된 향전을 이용하여 영남을 통제하려는 집권 노론·소론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사건들은 18세기 초 향촌에서 일어났던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천민, 평민,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을 지낸 양반, 잔반화되어 가던 향반 등 향촌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살며 발생한 갈등·반목이 국왕 및 집권 정치 세력이라는 중앙의 거대한 권력과 연쇄적으로 맞물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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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1714, a private slave Makgeum said that his son Manlip went missing on his way back home. Makgeum, presented petition to find his son who went missing after beaten by yangban Ch ae Tamryŏng. Ch ae Tamryŏng replied that Ch oe Chongsŏk, the master of Makgeum, had managed private slaves to ran amok. However, Ch oe Chongsŏk requested that Ch ae Tamryŏng be punished, pointing out that Chae Dam-ryeong was the enemy who sued his father Ch oe Suhak behind Kim Tongpaek. Ch oe Suhak, who served government post, fell ill in mid-age and retired to the country. But sometime in 1713, Kim Choi, a commoner and the wife of Kim Tongpaek, sued Ch oe Suhak. It included the fact that Ch oe Suhak caught Kim Tongpaek flogged him for 50 times. Though Ch oe Suhak protested, he was condemned for exile, brought to Unbong for the crime of exercising physical violence and died there. Swift punishment shows the King’s will to realize a change of national judicial system and idea of pressuring the strong and protecting the weak. Also This study examined conflicts among the members of the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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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714, a private slave Makgeum said that his son Manlip went missing on his way back home. Makgeum, presented petition to find his son who went missing after beaten by yangban Ch ae Tamryŏng. Ch ae Tamryŏng replied that Ch oe Chongsŏk...

    In 1714, a private slave Makgeum said that his son Manlip went missing on his way back home. Makgeum, presented petition to find his son who went missing after beaten by yangban Ch ae Tamryŏng. Ch ae Tamryŏng replied that Ch oe Chongsŏk, the master of Makgeum, had managed private slaves to ran amok. However, Ch oe Chongsŏk requested that Ch ae Tamryŏng be punished, pointing out that Chae Dam-ryeong was the enemy who sued his father Ch oe Suhak behind Kim Tongpaek. Ch oe Suhak, who served government post, fell ill in mid-age and retired to the country. But sometime in 1713, Kim Choi, a commoner and the wife of Kim Tongpaek, sued Ch oe Suhak. It included the fact that Ch oe Suhak caught Kim Tongpaek flogged him for 50 times. Though Ch oe Suhak protested, he was condemned for exile, brought to Unbong for the crime of exercising physical violence and died there. Swift punishment shows the King’s will to realize a change of national judicial system and idea of pressuring the strong and protecting the weak. Also This study examined conflicts among the members of the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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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서론 2. 1714년 대구부 사노 만립 실종 사건 3. 1713년 향곡무변 최수학(崔壽學)과 상한 김동백의 소송전(訴訟戰) 4. 결론 참고문헌
    • 1. 서론 2. 1714년 대구부 사노 만립 실종 사건 3. 1713년 향곡무변 최수학(崔壽學)과 상한 김동백의 소송전(訴訟戰) 4.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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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洛川先生文集"

    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3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자료의 노비기재와 그 존재 양상 - 대구 경주 최씨가 소장 호적자료의 분석 -" 한국고문서학회 25 : 103-138, 2004

    4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자료를 통해 본 사노비의 존재양태 - 대구 경주최씨가를 중심으로 -" 역사문화학회 11 (11): 183-223, 2008

    5 향촌사회사연구회, "조선후기 향약연구" 민음사 1990

    6 심재우, "조선후기 국가권력과 범죄 통제 - 『심리록』 연구" 태학사 2009

    7 심재우, "조선시대 향촌 사회조직 연구의 현황과 과제-향약․계에 관한 성과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90) : 365-396, 2019

    8 인천채씨대종회, "인천채씨족보소감공파(仁川蔡氏族譜少監公派) 1권" 三省印刷株式會社 2004

    9 김학수, "영남지역 서원의 정치사회적 성격" 한국국학진흥원 1 (1): 87-142, 2007

    10 구본욱, "연경서원의 강학과 대구지역 제3세대 유학자" 조선사연구회 28 (28): 2020

    1 "洛川先生文集"

    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3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자료의 노비기재와 그 존재 양상 - 대구 경주 최씨가 소장 호적자료의 분석 -" 한국고문서학회 25 : 103-138, 2004

    4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자료를 통해 본 사노비의 존재양태 - 대구 경주최씨가를 중심으로 -" 역사문화학회 11 (11): 183-223, 2008

    5 향촌사회사연구회, "조선후기 향약연구" 민음사 1990

    6 심재우, "조선후기 국가권력과 범죄 통제 - 『심리록』 연구" 태학사 2009

    7 심재우, "조선시대 향촌 사회조직 연구의 현황과 과제-향약․계에 관한 성과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90) : 365-396, 2019

    8 인천채씨대종회, "인천채씨족보소감공파(仁川蔡氏族譜少監公派) 1권" 三省印刷株式會社 2004

    9 김학수, "영남지역 서원의 정치사회적 성격" 한국국학진흥원 1 (1): 87-142, 2007

    10 구본욱, "연경서원의 강학과 대구지역 제3세대 유학자" 조선사연구회 28 (28): 2020

    11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호적DB"

    12 정진영, "부자들의 빈곤2 – 18세기 중반 영남 한 향촌 양반지주가의 경제생활 –" 대구사학회 129 : 269-308, 2017

    13 정진영,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학문(學問)과 향약(鄕約)"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9 : 2001

    14 설혜심, "미시사연구의 이론과 동향: 의사학의 시각" 대한의사학회 24 (24): 325-354, 2015

    15 곽차섭, "다시 미시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17

    16 안승준, "경주최씨의 龍山書院 운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국고문서학회 44 : 173-207, 2014

    17 "顯宗實錄"

    18 "順菴先生文集"

    19 "陶谷集"

    20 "西溪集"

    21 "葛庵集"

    22 "肅宗實錄"

    23 "經國大典註解"

    24 "經國大典"

    25 "百弗菴先生文集"

    26 "溪巖日錄"

    27 "止軒先生文集"

    28 김용섭, "朝鮮後期의 大邱 夫仁洞洞約과 社會問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46·47·48 : 1985

    29 김용섭, "朝鮮後期農業史硏究 I" 지식산업사 1995

    30 정진영, "朝鮮後期 鄕約의 一考察; 夫仁洞 洞約의 中心으로"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회 2·3 : 1982

    31 김인걸, "朝鮮後期 鄕校의 추이와 지배층 동향-忠淸道 木川縣 事例-"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2 : 1981

    32 "日省錄"

    33 "撝軒先生文集"

    34 "承政院日記"

    35 "宋子大全"

    36 "夫仁洞訟事記畧"

    37 "大丘府戶籍大帳"

    38 "嘉林報草"

    39 "『桐巢漫錄』v2(MF35-1026)"

    40 최주희, "[서평] 구조사와 미시사의 간극 메우기-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휴머니스트, 2013)-" 조선시대사학회 (69) : 371-384, 2014

    41 김학수, "18세기 한 鄕班 출신 功臣의 정치․사회적 존재 양상-영조대 奮武功臣 朴東亨(1695~1739)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77) : 173-230, 2016

    42 정진영, "18~19세기 대구지역 토지거래와 지가변동-경주최씨가의 전답 매매자료 분석-" 조선시대사학회 (89) : 291-326, 2019

    43 김학수, "17세기 嶺南學派의 정치적 분화 -유성룡?정경세학맥과 정구?장현광학맥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40) : 215-280, 2007

    44 정수환, "17세기 경주 국당리(菊堂里) 동계(洞契)의 전통과 호혜 원리" 한국학중앙연구원 42 (42): 39-75, 2019

    45 "1715년 최정석(崔鼎錫)·최진석(崔晉錫) 발괄(白活)"

    46 "1714년 최정석(崔鼎錫) 소송문서 등초(謄抄)"

    47 "1714년 대구부 사비(私婢) 막금(莫今) 소지"

    48 "1713년 취리동고록(就理同苦錄)"

    49 "1713년 최수학(崔壽學) 원정(原情)5"

    50 "1713년 최수학(崔壽學) 원정(原情)4"

    51 "1713년 최수학(崔壽學) 원정(原情)3"

    52 "1713년 최수학(崔壽學) 원정(原情)2"

    53 "1713년 최수학(崔壽學) 원정(原情)1"

    54 "1713년 최수학 승중문기(자 최정석)"

    55 "1713년 영오동고(囹圄同苦)"

    56 "1713년 경상감사(慶尙監司) 장계(狀啓) 초록(抄錄)"

    57 "1664년 최수학(崔壽學) 무과급제 홍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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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2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DONG BANG HAK CHI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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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3 1.23 1.1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7 2.154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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