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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의 삶과 그 역사적 평가 분석 = A Study on the life of Soda Kaichi, father of Korean orphans and the Historical Evaluation of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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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s the father of a Korean orphan, soda Kaichi who was buried in the Seoul Foreigners' Cemetery at Yanghwajin as the only Japanese took care of the orphans of persecuted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ether these known facts correspond with historical truth.
      The reason why Soda came to Korea seems to have been to find a job rather than because of the grace for Koreans who saved his life. However, his mention of gratitude for the Korean who saved his life in his life is apparent in many testimonies, which gave him a good image until he came to Korea.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by Lee Sang-jae is known by many testimonies, but Soda himself does not make any special mention of Lee Sang-jae in his interview. It may be because the interview was conducted in Japan, wher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as not good, and it may be possible that there was little effect of Lee Sang-jae.
      Meanwhile, the Motivation for the Kyungsung branch establishment of the Kamakura Nursery Center by Satake Otojiro(佐竹音次郎) came from Harris's pro-Japanese thinking, the colonial idea of ​​reconstruction of Joseon, assimilation ideas of Japan-Korea.
      However, the evaluation for a person's personality like Soda, must be made from a multifaceted perspective. It is true that Soda Kaichi and his wife Ueno Taki's(上野タキ) personal love and devotion were humanistic in time. It is also important that this spirit flows into the spirit of Youngnak Bori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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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the father of a Korean orphan, soda Kaichi who was buried in the Seoul Foreigners' Cemetery at Yanghwajin as the only Japanese took care of the orphans of persecuted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ether the...

      As the father of a Korean orphan, soda Kaichi who was buried in the Seoul Foreigners' Cemetery at Yanghwajin as the only Japanese took care of the orphans of persecuted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ether these known facts correspond with historical truth.
      The reason why Soda came to Korea seems to have been to find a job rather than because of the grace for Koreans who saved his life. However, his mention of gratitude for the Korean who saved his life in his life is apparent in many testimonies, which gave him a good image until he came to Korea.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by Lee Sang-jae is known by many testimonies, but Soda himself does not make any special mention of Lee Sang-jae in his interview. It may be because the interview was conducted in Japan, where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as not good, and it may be possible that there was little effect of Lee Sang-jae.
      Meanwhile, the Motivation for the Kyungsung branch establishment of the Kamakura Nursery Center by Satake Otojiro(佐竹音次郎) came from Harris's pro-Japanese thinking, the colonial idea of ​​reconstruction of Joseon, assimilation ideas of Japan-Korea.
      However, the evaluation for a person's personality like Soda, must be made from a multifaceted perspective. It is true that Soda Kaichi and his wife Ueno Taki's(上野タキ) personal love and devotion were humanistic in time. It is also important that this spirit flows into the spirit of Youngnak Bori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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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안장된 일본인 유일의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조선의 고아들을 희생과 봉사로 돌보았다는 사실과 한국의 편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알려진 사실들은 역사적 진실과 맞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다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자신을 살려준 한국인에 대한 은혜로 인하였다기 보다는 일자리를 찾아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생명을 구해준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한 것은 여러 증언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게 되기까지 좋은 이미지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여러 증언에 의해 월남 이상재에 의한 기독교 영향력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소다 자신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월남 이상재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가 좋지 못했던 일본에서 시행한 인터뷰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고 실제로 이상재의 영향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한편 사다케 오토지로(佐竹音次郎)의 가마쿠라 보육원 경성지부 설립의 계기는 해리스의 친일적 사고와 조선재건이라는 식민 사상, 일시동인과 동화라는 데서 왔다.
      하지만 소다라는 개인의 인물 평가는 다각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소다 가이치와 그의 부인 우에노 타키(上野タキ) 개인의 사랑과 정성은 시대를 떠나 인류애적인 것이었다는 것은 진실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신이 이후 영락보린원의 정신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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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안장된 일본인 유일의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조선의 고아들을 희생과 봉사로 돌보았다는 사실과 ...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에 안장된 일본인 유일의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핍박받는 조선의 고아들을 희생과 봉사로 돌보았다는 사실과 한국의 편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알려진 사실들은 역사적 진실과 맞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다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자신을 살려준 한국인에 대한 은혜로 인하였다기 보다는 일자리를 찾아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생명을 구해준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한 것은 여러 증언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게 되기까지 좋은 이미지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여러 증언에 의해 월남 이상재에 의한 기독교 영향력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소다 자신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월남 이상재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가 좋지 못했던 일본에서 시행한 인터뷰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고 실제로 이상재의 영향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한편 사다케 오토지로(佐竹音次郎)의 가마쿠라 보육원 경성지부 설립의 계기는 해리스의 친일적 사고와 조선재건이라는 식민 사상, 일시동인과 동화라는 데서 왔다.
      하지만 소다라는 개인의 인물 평가는 다각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소다 가이치와 그의 부인 우에노 타키(上野タキ) 개인의 사랑과 정성은 시대를 떠나 인류애적인 것이었다는 것은 진실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신이 이후 영락보린원의 정신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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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일보"

      2 이수경,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기억" 한국학술정보 2010

      3 "한국경제"

      4 이동식, "친구가 된 일본인들" 나눔사 2017

      5 "조선일보"

      6 이승하, "이사람을 아십니까?" 쿰란출판사 2018

      7 김범수, "영락보린원(永楽保隣院)의 역사연구 : 가마쿠라(鎌倉)보육원 경성지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1 : 2001

      8 "연합기독뉴스"

      9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0 전택부, "양화진 선교사 열전" 홍성사 2005

      1 "한국일보"

      2 이수경,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기억" 한국학술정보 2010

      3 "한국경제"

      4 이동식, "친구가 된 일본인들" 나눔사 2017

      5 "조선일보"

      6 이승하, "이사람을 아십니까?" 쿰란출판사 2018

      7 김범수, "영락보린원(永楽保隣院)의 역사연구 : 가마쿠라(鎌倉)보육원 경성지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1 : 2001

      8 "연합기독뉴스"

      9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0 전택부, "양화진 선교사 열전" 홍성사 2005

      11 "시카고 중앙일보"

      12 "승대시보"

      13 "국민일보"

      14 曽田嘉伊智, "飮酒の征服" 9 : 1962

      15 朝日新聞, "韓國の慈父, 「曽田老人へあたたかい招待」"

      16 李修京, "韓國と日本の交流の記憶:日韓の未來を共に築くために" 白帝社 2006

      17 貞田袿一郞, "韓國こそ私のふるさとー‘故鄕’へはやる心"

      18 崔碩義, "韓国歴史紀行" 東洋経済日報 2007

      19 飯島盛隆, "韓国孤児の慈父曽田嘉伊智翁(鎮西学院研究叢書〈2〉" 牧羊社 1975

      20 佐竹要平, "鎌倉小兒保育院京城支部府の活動實態" 65 : 1932

      21 呉文子, "記憶の残照のなかである在日コリア女性の歩み" 総合書籍出版 社会評論社 2017

      22 曽田嘉伊智, "私と朝鮮" 103 : 1962

      23 曽田嘉伊智, "社會事業資金共同募金について" 8 : 1930

      24 "朴議長の花も"

      25 江宮隆之, "朝鮮を愛し、朝鮮に愛された日本人" 祥伝社 2013

      26 姜健榮, "望鄕の被虜人と渡來文化" 2000

      27 大和与一, "曽田老夫妻を思う" 102 : 1962

      28 朝日新聞, "曽田老, 韓国へ出發"

      29 朝日新聞, "曽田老(韓國孤兒の父), 死ぬ"

      30 "曽田翁の遺書に新たな涙"

      31 金貞淑, "曽田嘉伊智の逝去" 101 : 1962

      32 朝日新聞, "日韓親善とは別、'戰前‘ 唯一の味方として"

      33 中村敏, "日韓の架け橋となったキリスト者: 乗松雅休から澤正彦まで" いのちのことば社 2015

      34 江宮隆之, "慈雨の人 韓国の土になったもう一人の日本人" 河出書房新社 2013

      35 曽田嘉伊智, "孤貧兒養育に関する體驗談" 6 : 1928

      36 曽田嘉伊智, "京城社會事業懇談會の目的" 10 : 1932

      37 朝日新聞, "ソウルの名譽市民に"

      38 朝日新聞, "なつく孤兒に囲まれ:惠まれた余生を楽しむ"

      39 金貞淑, "お父さん!" 102 : 1962

      40 おじいさん, "おじいさん、万歳"

      41 공직자 전문성제고 저서갖기 운동본부, "100년 대한민국의 파트너, 외국인(1919~2019)" 노드미디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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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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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 0.4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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