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 Jung-ik from Jangsung had a great effect on an academic line and political position of local noble family in Honam. He was descended from Ki Jun, a member of Kimyo-Sarim, so he succeeded to Sarim’s practical study. He became Song Si-Yeol’s p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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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아 (전북대학교)
2020
Korean
Ki Jung-ik ; Song Si-Yeol ; Park Sang-hyun ; Yun Jeung ; Noron ; Soron ; Honam ; Jangseong. ; 기정익 ; 행주기씨 ; 송시열 ; 윤증 ; 호남 노론 ; 장성 ; 박상현 ; 평해황씨 ; 황주변씨
KCI등재
학술저널
147-17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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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Jung-ik from Jangsung had a great effect on an academic line and political position of local noble family in Honam. He was descended from Ki Jun, a member of Kimyo-Sarim, so he succeeded to Sarim’s practical study. He became Song Si-Yeol’s pup...
Ki Jung-ik from Jangsung had a great effect on an academic line and political position of local noble family in Honam. He was descended from Ki Jun, a member of Kimyo-Sarim, so he succeeded to Sarim’s practical study.
He became Song Si-Yeol’s pupil in 1668. He did not study under his teacher directly, but discussed an intricate problem with his teacher by sending letter. Especially, his discussion with Park Sang-hyun, Neo-Confucianist in Gwangju, served as important momentum to trigger an academic dispute of Yulgok school.
He also had a companionship with Yun Jeung. He introduced Park to Yun, and they had it with Park Se-chae, Kim Su-hang, Shin Ik-sang, etc. But they did not last for long. For Seoin was divided into Noron, who stood by Song, and Soron, by Yun. He tried to arbitrate in their dispute, but failed to stop their split.
In the process, He chose his teacher, Noron. His choice made local noble family in Honam to head for Noron. Hwang of Pyeonghae in Heungduk, Park of Sunchun in Gwangju, and Byeon of Hwangju in Jangsung who had a companionship with him grew up into representative Noron Sajok in Honam.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의 17세기는 두 차례의 호란(胡亂)으로 민생이 피폐하고 국기(國紀)가 혼란해진 시대였다. 당시 조선의 사림은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맺은 현실을 천하의 질서가 무너...
조선의 17세기는 두 차례의 호란(胡亂)으로 민생이 피폐하고 국기(國紀)가 혼란해진 시대였다. 당시 조선의 사림은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맺은 현실을 천하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존화양이(尊華攘夷)와 숭명반청(崇明反淸)의 이념을 품고 복수설치(復讐雪恥)의 시대를 기약하였다. 무너진 기강(紀綱)과 예의(禮儀)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송(禮訟)이 일어나고,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서인 내부에서도 회니시비로 인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깊어졌고, 이러한 붕당의 분화 속에서 지방의 사림도 그 입장과 노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 붕당정치가 심화되는 시대에 호남 장성에 세거한 기정익(奇挻翼)은 호남의 사림의 학문적, 정치적 노선과 입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건(奇虔), 기준(奇遵), 기대승(奇大升), 기효간(奇孝諫)으로 이어진 호남 사림의 명맥(命脈)을 계승한 학자로, 송시열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윤증, 김수항, 박세채 등과 교유하였다. 특히 기정익이 박상현과 나눈 성리학설에 대한 논변은 ‘율곡학파의 학술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니시비가 시작되는 즈음에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재를 위해 노력하였다.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이 ‘강도의 일’과 ‘윤휴와의 절교’를 발단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정리하였다. 당시 윤휴에 대한 입장은 노론과 소론이 갈라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기정익은 송시열과 윤증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이었지만 사제관계로 맺어진 송시열을 존숭하면서 노론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기정익의 선택은 호남의 노론 학맥이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정익이 교유한 흥덕의 평해황씨와 광주의 순천박씨, 장성의 황주변씨는 호남의 대표적인 노론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호남의 노론 사족은 노론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경기와 호서 노론과 협력하며 노론의 세력 확장에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봉곤, "조선후기 호남지역 사족의 정치ㆍ사회적 동향 - 17세기 광주 순천박씨 가문의 성장과 노론으로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고문서학회 38 : 1-3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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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최영성, "18세기 노론 낙학파(洛學派)의 현실인식과 대응논리 - 『성리대전』에 대한 황윤석의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연구회 (50) : 139-16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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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의 삶과 그 역사적 평가 분석
宋代 都市民 娛樂文化의 形成과 發展 -南宋 臨安 都市民 娛樂文化의 商業化 傾向을 中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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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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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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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 | 0.4 | 0.4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5 | 0.43 | 1.181 | 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