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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TERBLICH IN DER ELEDEN PRACHT SEINER SU¨NDEN  :  Grimmelshausens "Simplicissimus" -das Meisterwerk der Barockliteratur 그림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 -바로크문학의 걸작 = 비참하고 화려한 죄악의 불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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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그림멜스하우젠 (1621/22-1676)은 루터파 제국도시인 겔른하우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7년 동안 라틴어학교를 다녔다. 12살 때 생가가 파괴당해 근처의 하나우(헤센)로 피신해야 했다. 약탈을 일...

      그림멜스하우젠 (1621/22-1676)은 루터파 제국도시인 겔른하우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7년 동안 라틴어학교를 다녔다. 12살 때 생가가 파괴당해 근처의 하나우(헤센)로 피신해야 했다. 약탈을 일삼는 낙오병들에게 납치된 그는 30년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1648년까지 15년 동안) 마부, 보병, 용기병, 필경사로 여러 군부대를 전전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직후 혼인을 하고 1650-69년 사이에 10명의 자녀가 태어나는 동안, 재산관리인, 주점업자, 사법권과 경찰권을 집행하는 하급공무원으로 일했다. 직업과 가사와 관련된 일거리들에 파묻히면서도 1666-75년 사이에 3천여 쪽에 달하는 문학작품들을 집필했다. 그는 철저, 독학자였다.
      그림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 (7백여쪽 분량임)는 스페인의 악한소설, 프랑스의 희극소설, 독일 민담책(Eulenspiegel, Fortunatus)의 영향을 받은 풍자소설이다. 일인칭 서술자는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변화무쌍하게 묘사해준다. 헤센의 Spessart 지역에서 무식한 농부아들로 자라나다가 한 은둔자의 산간초막에서 2년을 보냈던 유년시절로부터 시작해, 하나우 도시의 궁정광대로, 독일 각지를 휩쓸었던 여러 군대를 전전하던 병사로, 파리의 궁정부인들 틈에서 가수이자 총애를 받는 기간을 보낸다. 그리고 러시아 황제의 포병전문요원으로, 타타르 민족과 한국 왕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사격술을 전수해 준 덕택에 한국 왕으로부터 자유를 부여받아 풀려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 부분은 독일문학사상 한국(“Corea”)이 최초로 언급되는 의미깊은 대목이기도 하다. 짐플리치시무스 1판이 간행된 1668년은 Hendrik Hamel이 14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네델란드로 귀향했던 연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짐플리치시무스와 하멜의 한국체류와의 상관성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짐플리치시무스에 대해 계속되는 논쟁의 관점은, 과연 이 작품에 일관된 구성원리가 내재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죄를 범해 종국에는 참회에 이르게 된다는 기독교 사상, 고대비극의 구성원리, 숫자로 표시한 엄격한 대칭적 구성형식, 점성술적인 구성원리, 그리고 교양소설의 작품구성 등이 짐플리치시무스에서 확인된다.
      이 작품은 원래 베스트셀러였으나, 조악한 문체 때문에 로코코 시대에 와서 망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낭만주의 작가(특히 티크, 브렌타노, 아르님, 아이헨도르프)들은 짐플리치시무스를 재발견해 냈고, 특히 이 작품에 삽입된 노래와 동화들은 민족영혼이 표출된 정수라고 예찬했다. 19세기 후반은 이른바 “무성찰적 사실주의”의 표본으로 그림멜스하우젠이 대중화 되었던 한편, 프로이센 의회에서 청소년 유해작품으로 매도된 양극적인 시기였다. 20세기에 와서 2차 세계대전은 몇몇 주요 작가들이 짐플리치시무스를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토마스 만(펠략스 크룰, 닥터 파우스투스)과 귄터 그라스(양철북, 텔크테에서의 만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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