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uperating oneself by eating only normal food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oneself with eating food'('食治'). And treating oneself with drugs and medicine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with medicine('藥治'). From time to time, the for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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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경인교육대학교)
2008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35-178(44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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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uperating oneself by eating only normal food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oneself with eating food'('食治'). And treating oneself with drugs and medicine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with medicine('藥治'). From time to time, the former ...
Recuperating oneself by eating only normal food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oneself with eating food'('食治'). And treating oneself with drugs and medicine can be referred to as ‘treating with medicine('藥治'). From time to time, the former was more emphasized by the people than the latter. In the Choson dynasty, it was a general belief that in recuperating oneself after going through a serious illness, grain-based food(穀物) was actually more effective than medicinal material in making oneself healthy again. And people believed that if one continued to take medicine, such medicinal stuff which usually do not taste very good would eventually force that person to lose any kind of an appetite, and in the end would prevent that person from trying to eat necessary amount of food. In such cases, people were instructed to stop taking medicine for a while, then eat rice gruel or other specially prepared food, and then re-continue to take medicine, only when one's health started to return. In this article, the tradition of 'treating one's health with food' of the Choson dynasty is examined, and how such tradition was maintained among members of the royal family is surveyed with detailed examples. Examples of such customary 'treating with food' which had been unknown until now have been collected from the ≪承政院日記(the Seungjeong-weon office memorandum)≫ and other medical books, in order to recreate the everyday culture of 'treating with food' shared by the royal family members. As a result, various kinds of rice gruel(粥) and medicinal tea(藥茶) and other special dishes were found as part of the official menu prepared for the royal family.
음식을 통한 몸의 조섭이 ‘食治’다. 의약으로 치료하면 ‘藥治’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藥治보다 食治가 강조되었다. 본고는 조선시대 食治의 전통을 살펴보고 왕실에서 이러한 전통이 ...
음식을 통한 몸의 조섭이 ‘食治’다. 의약으로 치료하면 ‘藥治’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藥治보다 食治가 강조되었다. 본고는 조선시대 食治의 전통을 살펴보고 왕실에서 이러한 전통이 어떻게 유지 적용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하였다. 15세기의 食治 전통을 살펴보고, 16세기에도 식치의 중요성이 감소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성리학적 질서가 점차 강화되면서 조선사회는 이전에 비해 마음의 修養을 보다 강조하였고, 예방의 방법으로서 藥治보다 食治가 더욱 중요해졌다. 조선후기 왕실의 食治 음식들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承政院日記』의 약방 일지를 통해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왕실의 일상적인 食治 음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양한 食治 음식들, 가령 粥과 藥茶 그리고 특별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 왕실의 음식들은 내의원이나 수랏간에서 새롭게 개발되기도 했다. 특히 왕실의 조리사인 熟手들의 손에 의해 개발되거나 민간으로부터 이전되거나 혹은 외국에서 가져온 특별식들이 있었다. 駝酪粥을 필두로 수십 여 가지의 粥 음식이 개발되었고, 이는 18~19세기에 이르러 민간에 널리 확산되었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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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聞事說"
32 백승호, "?18세기 생활백과사전 『?聞事說』? 경기문화재단 실학 심포지움 발표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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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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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97 | 0.98 | 2.253 | 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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