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대산신앙에 대한 국내외의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삼국유사』의 오대산신앙 기록의 신빙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글이다. 검토의 대상은 『五臺山事蹟』과 『朝...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2071201
2015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203-232(30쪽)
1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한국 오대산신앙에 대한 국내외의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삼국유사』의 오대산신앙 기록의 신빙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글이다. 검토의 대상은 『五臺山事蹟』과 『朝...
한국 오대산신앙에 대한 국내외의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삼국유사』의 오대산신앙 기록의 신빙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글이다. 검토의 대상은 『五臺山事蹟』과 『朝鮮佛敎通史』, 신라시대의 금석문 및 최치원의 글, 고려시대의 문집들, 그리고 돈황의 〈五臺山圖〉에 나오는 신라 관련 기록들이다.
검토 결과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오대산 기록의 원본과 『오대산사적』의 원본은 모두 8세기 후반 이후에 쓰여졌고, 신라인이 당의 오대산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8세기 후반이다. 이후 신라인들 가운데 당의 오대산을 찾은 이들이 많아졌고, 늦어도 9세기 중반 무렵에는 신라 땅에 오대산이 이식되어 지금의 강원도 오대산이 오대로 불리게 되었다. 해인사 인근에 오대산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도 등장하였다. 고려전기에도 오대산신앙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흔적이 미미하다. 그러다 13세기 후반~14세기에 이르러 많은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보살주처신앙의 유행 때문이었다. 『삼국유사』에 오대산 기록이 많이 수록된 것도 보살주처신앙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돈황의 〈오대산도〉 (10세기 무렵)에, 신라왕자 및 신라 사신이 오대산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라왕자가 慈藏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오대산신앙의 형성 시기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자장이 입당한 때는 오대산 聖山化를 위한 설화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이고, 오대산 순례를 위한 인프라도 구축되기 이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서 오대산신앙을 신라에 전한 이가 慈藏이라고 한 것은 설화적 성격이 강하다. 만약 돈황에서 〈오대산도〉를 그릴 때 ‘신라왕자 자장’이 당의 오대산에 왔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이는 당의 오대산 설화를 모티브로 하여 신라에서 만들어진 오대산 관련 설화들이 당으로 전해진 결과이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이러한 설화들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Examined in this article are remaining historical references to the beliefs and mythology that involved the Mount Odae in Korea, in order to provide a critical analysis that would help define and progress the ongoing discussion concerning the validity...
Examined in this article are remaining historical references to the beliefs and mythology that involved the Mount Odae in Korea, in order to provide a critical analysis that would help define and progress the ongoing discussion concerning the validity of Mount Odae related records inside Remaining History of the Three Dynasties(三國遺事). Primarily examined are History of Mount Odae(五臺山事蹟), General History of Korean Buddhism(朝鮮佛敎通史), epigraph materials from the Shilla period and Choi Chi-weon’s own writings, personal anthologies from the Goryeo period, and Mount Wutai Illustrated(五臺山圖), excavated from the Tunhuang region.
Contents of the Mount Odae-related records in History of Mount Odae and Mount Wutai Illustrated all seem to have been written in the second half of the 8th century, when the Shilla people first became aware and conscious of the Mount Wutai of the Chinese Dang dynasty. Ever since, many Shilla people went and visit the Mount Wutai, and before at least the mid-9th century, a Korean mountain in the Gang’weon-do province is known to have been named Odae(‘五臺’) as well.
It seems that the cults involving Mount Odae continued to exist in the early half of the Goryeo dynasty period, but there are not much historical material to verify it. It is only in the 13th century’s latter half as well as the 14th century that relevant records apparently started to increase, which seems to have been triggered by the spreading of the “Affiliated Place for the Bodhisattva” belief. That seems like the main reason behind so many references to the Mount Odae being inserted in Remaining History of the Three Dynasties.
According to Mount Wutai Illustrated,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created around the 10th century, a Shilla prince and an emissary allegedly visited Mount Wutai. Some believe that this Shilla prince was in fact the renowned Buddhist priest Jajang(慈藏). But Jajang only stayed in Dang up until 643, when the so-called Mount Wutai cult was not yet formed. There is another possibility. If there had been a notion that ‘Shilla prince Jajang’ once visited the Dang Chinese Mount Wutai, around the time Mount Wutai Illustrated was created, it could have been a result of certain Shilla folklore tales, based upon other earlier tales that involved Dang Mount Wutai, being created first and then spreaded to China.
The examination mentioned above cast some serious doubts upon the validity of the records inside Remaining History of the Three Dynasties, which said that it was Jajang who relayed the Mount Wutai cult to Shilla, while two princes Bocheon(寶川) and Hyomyeong(孝明) stayed at Mount Odae for studies, and that it was Bocheon who established certain cults that could be used everywhere. Such presentation of events seems more like a depiction of a tale, rather than a historical description of facts. The historical background that formed such tales should be the object of discussion in future studie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張文良, "靈辯的實相與虛像-以法藏的靈辯傳爲中心, 華嚴經論的再發現與靈辯傳的再構成" 2015
2 변동명, "한국중세의 지역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02
3 김영미, "한국사시민강좌 10" 일조각 1992
4 "한국금석문종합영상시스템"
5 "한국고전종합DB"
6 김복순, "한국고대불교사연구" 민족사 2002
7 김영미, "통일신라시대 아미타신앙의 역사적 성격" 50 : 1985
8 박광연, "테마한국불교 3" 동국대출판부 2015
9 신종원, "최영희선생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탐구당 1987
10 신종원, "자장의 불교사상에 대한 재검토-신라불교 초기 계율의 의의" 한국사연구회 39 : 1982
1 張文良, "靈辯的實相與虛像-以法藏的靈辯傳爲中心, 華嚴經論的再發現與靈辯傳的再構成" 2015
2 변동명, "한국중세의 지역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02
3 김영미, "한국사시민강좌 10" 일조각 1992
4 "한국금석문종합영상시스템"
5 "한국고전종합DB"
6 김복순, "한국고대불교사연구" 민족사 2002
7 김영미, "통일신라시대 아미타신앙의 역사적 성격" 50 : 1985
8 박광연, "테마한국불교 3" 동국대출판부 2015
9 신종원, "최영희선생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탐구당 1987
10 신종원, "자장의 불교사상에 대한 재검토-신라불교 초기 계율의 의의" 한국사연구회 39 : 1982
11 남동신, "자장의 불교사상과 불교치국책" 한국사연구회 76 : 1992
12 여성구, "원표의 생애와 천관보살신앙연구" 국사편찬위원회 48 : 1993
13 이창국, "원간섭기 민지의 현실인식-불교기록을 중심으로" 24 : 2001
14 김복순, "신라화엄종연구" 민족사 1990
15 김두진, "신라화엄사상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16 신종원, "신라초기불교사연구" 민족사 1992
17 김영미, "신라불교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18 박광연, "신라법화사상사연구" 혜안 2013
19 김복순, "신라 하대 화엄의 1례-오대산사적을 중심으로" 33 : 1988
20 신동하, "신라 오대산신앙의 구조" 3 : 1997
21 이유진, "당대 구법승의 숙박시설-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중심으로" 22 : 2009
22 석길암, "나말여초 오대산 불교권의 재형성 과정과 배경" 한국사상사학회 (46) : 29-55, 2014
23 김복순, "강원불교사연구" 소화 1996
24 김두진, "가산이지관스님화갑기념논총 한국불교문화사상(상)" 가산불교문화진흥원 1992
25 김수연, "高麗時代 密敎史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2
26 藤善眞澄, "隋唐時代の佛敎と社會" 白帝社 2004
27 "陽村先生文集 東文選"
28 한국역사연구회, "譯註羅末麗初金石文下" 혜안 1995
29 "祖堂集"
30 박노준, "當代 五臺山 文殊信仰과 그 東아시아的 展開에 關한 硏究" 誠信女子大學校 大學院 1997
31 "牧隱詩藁 牧隱文藁"
32 "朝鮮佛敎通史"
33 박미선, "新羅 五臺山信仰의 成立時期" 한국사상사학회 28 : 131-160, 2007
34 "新增東國輿地勝覽"
35 이신, "敦煌石窟에서 발견된 古代 韓半島 資料에 관한 硏究 -莫高窟 第61窟 ≪五臺山圖≫를 중심으로-" 동아인문학회 (20) : 23-51, 2011
36 杜斗城, "敦煌五臺山文獻校錄硏究" 山西人民出版社 1991
37 조범환, "張保皐의 海上勢力과 華嚴神衆信仰 - 天因의 「天冠山記」 분석을 중심으로 -" 신라문화연구소 32 (32): 249-270, 2008
38 "宋高僧傳"
39 "大方廣佛華嚴經 卷45, 諸菩薩住處品32"
40 "大方廣佛華嚴經 卷29, 菩薩住處品17"
41 김승호, "唐 五臺山 설화의 新羅的 수용과 변이" 어문연구학회 71 : 125-148, 2012
42 "古淸凉傳"
43 "八大菩薩曼荼羅經 卷1"
44 林韻柔, "五臺山與文殊道場-中古佛敎聖山信仰的形成與發展" 臺灣大學文學院 2009
45 崔正森, "五臺山佛敎史" 山西人民出版社 2000
46 "五臺山事蹟"
47 小野勝年, "五臺山" 座右寶刊行會 1942
48 "三國遺事"
49 김성수, "『五臺山圖』의 티벳 전파와 내륙아시아 불교세계 속에서 五臺山의 위상" 역사교육연구회 (122) : 143-176, 2012
50 김복순, "9~10세기 신라 유학승들의 중국 유학과 활동반경" 한국역사연구회 (56) : 21-49, 2005
51 이기영, "7,8세기 신라 및 일본의 불국토사상-산악숭배와 사방불" 2 : 1973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6-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
| 2003-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11 | 1.11 | 1.03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03 | 1.05 | 2.153 | 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