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 신화의 시발은 실상 그의 결투와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1837년 1월 27일 그는 단테스와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틀 후인 29일에 숨을 거두지만,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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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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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푸슈킨 신화의 시발은 실상 그의 결투와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1837년 1월 27일 그는 단테스와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틀 후인 29일에 숨을 거두지만,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
푸슈킨 신화의 시발은 실상 그의 결투와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1837년 1월 27일 그는 단테스와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틀 후인 29일에 숨을 거두지만,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수수께끼들은 아직도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이다. 그의 결투와 죽음이라는 객관적 사실은 푸슈킨의 죽음을 해명하는 데 역부족인 것이며 거기엔 신화적 아우라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푸슈킨의 사후에 각각의 시대는 자기 시대에 맞는 ‘푸슈킨’을 발견해왔다. 20세기 초 여류시인 츠베타예바가 쓴 <나의 푸슈킨>처럼 각각의 시대는 ‘자신만의 푸슈킨’을 쓰게 되는 것이다. 푸슈킨 당대의 독자들이 “푸슈킨은 자신의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에 대해 고심했다면, 이후 각 시대의 새로운 독자들은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 혹은 “우리 시대의 언어로 그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놓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푸슈킨은 이러한 모든 가능한 함수들의 종합체이다.
어떤 시대는 그에게서 무신론자를, 아니면 그 정반대로 정교회신자를 보았는가 하면, 전제주의자와 반역자의 모습을 보던가, 도덕주의자와 여성편력자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곤 했으며, 전통의 계승자 및 파괴자로서의 모습도 읽어내었다. 그리하여, 아폴론 그리고리예프의 말대로, 러시아인들에게서 “푸슈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Пушкин - наше всё)”.
이 연구에서는 이렇듯 ‘시인의 죽음’으로부터 시발되는 푸슈킨 신화가 어떻게 ‘푸슈킨 공동체’로 매개되며, 그것이 또한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어떤 식으로 재신화화 혹은 탈신화화되는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더불어, 이 총론은 전체 연구의 윤곽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연구를 종합하는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저마다의 ‘나의 푸슈킨’이 ‘우리의 푸슈킨’으로 전화되어 가는가, 혹은 거꾸로 어떻게 ‘우리의 푸슈킨’이 다시 각자의 ‘나의 푸슈킨’으로 환원되어 가는가에 대한 고찰의 성격도 지니게 돌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검토되는 것은 푸슈킨의 신화를 가능하게 하는 문학 내적 자질과 문학 외적 계기들 간의 조우이며 그 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