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은 하나의 혁명이 아니라 세 단계의 혁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계는 1789년 5월 삼신분회 소집에서부터 1792년 9월 공화국 수립까지이다. 제2단계는 공화국 수립에서부터 1794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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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Korean
혁명 ; Revolution ; Violence ; Orthodox Interpretation ; Revisionist Interpretation ; Thermidorean Reaction ; Robespierre ; Danton ; 폭력 ; 프랑스혁명 ; 정통해석 ; 수정해석 ; 공포정치 ; 열월정변 ; 로베스피에르 ; 당통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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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프랑스혁명은 하나의 혁명이 아니라 세 단계의 혁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계는 1789년 5월 삼신분회 소집에서부터 1792년 9월 공화국 수립까지이다. 제2단계는 공화국 수립에서부터 1794년 7...
프랑스혁명은 하나의 혁명이 아니라 세 단계의 혁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계는 1789년 5월 삼신분회 소집에서부터 1792년 9월 공화국 수립까지이다. 제2단계는 공화국 수립에서부터 1794년 7월 열월 정변까지이다. 제3단계는 열월 정변 이후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까지이다.
제1단계는 봉건제 파괴, 국민주권, 국민의회 수립, 헌법제정,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공화국 수립 등과 같은 위업을 달성한 위대한 정치혁명의 시기이다. 제2단계는 정치혁명을 넘어 사회혁명으로, 부르주아혁명을 넘어 민중혁명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 시기이다. 통제경제, 공포정치, 독재 등으로 제1단계의 성과를 스스로 부정한 시기이며, 폭력이 난무하던 시기이다. 제3단계는 민중혁명에서 다시 부르주아 혁명으로 복귀한 시기이며, 공포정치를 청산한 시기이다. 제1단계가 자유를 위한 혁명이었고, 제2단계가 평등을 위한 혁명이었다면 제3단계는 평화를 위한 혁명이었다.
본 연구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사건사이다. 그러나 1789년에서 1799년까지의 모든 사건을 ‘통사적으로’ 혹은 ‘개설적으로 다루지 않고 주요 사건들을 선별하여 다룰 것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이행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검토한 후, 혁명이 급진적이고 과격해지면서 대두된 반혁명의 제반 양상을 방데전쟁, 연방주의 반란, 슈앙 반혁명운동, 가톨릭교회의 수난과 저항, 공포정치, 그리고 열월 9일의 정변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제2부는 ‘전기’이다. 사회사의 유행으로 사건에 대한 연구나 개인에 대한 연구보다는 장기적인 구조나 국면변동 등에 대한 연구가 혁명사 연구의 추세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의 소장 혁명사가들을 중심으로 혁명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현재 소르본 대학의 프랑스혁명사 강좌주임교수인 피에르 세르나의 ‘귀족혁명가 앙토넬’에 대한 연구가 그러하다. 혁명가에 대한 연구는 혁명가를 둘러싸고 전개된 사건과 맥락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렵다. 혁명사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본 연구자는 혁명가들을 심도있게 다룰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혁명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에, 과다하게 평가절하 되어있는 제1단계의 혁명가들을 복권시키고 우상을 파괴하는 작업은, 시론 형태로도,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베스피에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부르주아였다는 이유로 그들의 계급적 한계가 강조되고 있고, 초기의 위대한 혁명가들이 최종적으로는 혁명을 (구체적으로는 과격한 민중혁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반혁명적이라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혁명가들을 이념적 편견에서 벗어나 그 시대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의 시에예스 신부, “두 세계의 영웅” 라파예트, 지롱드파였던 계몽주의자 콩도르세, ‘관용주의자’ 당통, ‘인민의 벗’ 마라, 혁명을 구하겠다며 마라를 암살한 샤를롯 코르데, ‘청렴거사’ 로베스피에르, 반혁명의 사도인 에드먼드 버크와 공화주의자 토마스 페인, 방데전쟁의 증인인 라로슈자클랭 후작부인 등을 ‘그 시대의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다.
제3부는 혁명사의 역사이다. 프랑스에서의 혁명사 연구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외 지역에서의 혁명사 연구도 살펴본다. 미슐레의 역사학에서부터 시작한다. 미슐레의 ‘공화주의 프랑스혁명사’에 대한 분석에서 정통해석과 수정해석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지면서 프랑스에서의 혁명사 논쟁을 심도 있게 검토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혁명사가들 – 조르주 르페브르, 알베르 소불 – 은 혁명사 연구를 주도했지만, 프랑스의 혁명사 연구는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프랑스혁명은 실패한 혁명인데도 러시아혁명가들은 프랑스혁명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며, 프랑스혁명이 아니라 미국혁명이 혁명의 모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의 프랑스혁명 연구는 프랑스혁명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본 연구자의 생각을 확인해주었으며, 프랑스 이외 지역의 혁명사가들을 주목하게 해주었다. 본 연구자는 팔머의 공포정치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공포정치의 실상을 접하였으며, 티모시 태키트의 가톨릭교회박해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 삼신분회의원들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 등에서는 실증적 역사연구의 참모습을 발견하였고, 브로니슬라프 박즈코의 연구에서는 열월정변이 단순한 ‘반동’이 아니라 공포정치의 청산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연구는 한국의 경직된 프랑스혁명사 연구를 뛰어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