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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개념의 적합성 또는 부적합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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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70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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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순차적으로 구성이 가능하다. 우선 실학이라는 어휘의 기원을 찾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확보되는 사실은 유가의 전통에서 불교와 도교에 상대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실학이라고 표명하는 장면이다. 즉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라는 의미인데 특히 주희의 사유로 진입하면 이런 경향은 대단히 명료해진다. 결국 실학개념의 연원확보를 통해 조선조 중후기 사상사가 가지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의도에 한층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실학개념의 발생은 일제강점기의 어느 시점이다. 자생적 근대를 향한 희구와 민족의식의 발견이 간취되지만 모순적 중첩 또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아사미 린타로 淺見倫太郞와 같은 사람은 이미 1922년에 『조선법제사고』를 통해 정약용을 실학자로 언명하고 있다. 이는 통설에 속하는 실학개념의 최초 언급이다. 이 경우를 상정하면 실학의 개념에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의 모순이 혼재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검토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이후로도 실학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즉 천관우와 홍이섭 다시 한우근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이어서 이우성과 이을호를 지나 윤사순과 지두환에 이르는 논변들이 연결되고 김용옥의 거들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21세기에 진입해서도 논의는 그치지 않고 한영우로 대표되는 역사학계의 논쟁이 계속된다. 실학개념과 관련한 논쟁은 주로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부분이 많고 상대적으로 사상계의 참여가 적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흐름도를 정리하는 한편 사상계의 측면을 좀 더 확보하고자 한다.
      어쨌든 실학의 개념은 조선시대에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학풍으로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융성하였으며,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기술의 존중과 국민경제 생활의 향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비록 허구적 부면이 크지만 이런 견해가 일본과 중국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방법론으로 연결되고 확산된 지점 또한 언급이 필요한 대목이 된다.
      본 연구의 범위는 현재 한국의 실학개념을 기준으로 삼는다. 나아가 북한학계의 실학인식과 더불어 일본과 중국의 실학 수용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학개념의 발생과 의도 및 파급영향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논쟁이 이루어진 모양새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방식 또한 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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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순차적으로 구성이 가능하다. 우선 실학이라는 어휘의 기원을 찾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확보되는 사실은 유가의 전통에서 불교와 도교에 상대우...

      본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순차적으로 구성이 가능하다. 우선 실학이라는 어휘의 기원을 찾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확보되는 사실은 유가의 전통에서 불교와 도교에 상대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실학이라고 표명하는 장면이다. 즉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라는 의미인데 특히 주희의 사유로 진입하면 이런 경향은 대단히 명료해진다. 결국 실학개념의 연원확보를 통해 조선조 중후기 사상사가 가지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의도에 한층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실학개념의 발생은 일제강점기의 어느 시점이다. 자생적 근대를 향한 희구와 민족의식의 발견이 간취되지만 모순적 중첩 또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아사미 린타로 淺見倫太郞와 같은 사람은 이미 1922년에 『조선법제사고』를 통해 정약용을 실학자로 언명하고 있다. 이는 통설에 속하는 실학개념의 최초 언급이다. 이 경우를 상정하면 실학의 개념에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의 모순이 혼재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검토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이후로도 실학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즉 천관우와 홍이섭 다시 한우근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이어서 이우성과 이을호를 지나 윤사순과 지두환에 이르는 논변들이 연결되고 김용옥의 거들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21세기에 진입해서도 논의는 그치지 않고 한영우로 대표되는 역사학계의 논쟁이 계속된다. 실학개념과 관련한 논쟁은 주로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부분이 많고 상대적으로 사상계의 참여가 적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흐름도를 정리하는 한편 사상계의 측면을 좀 더 확보하고자 한다.
      어쨌든 실학의 개념은 조선시대에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학풍으로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융성하였으며,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기술의 존중과 국민경제 생활의 향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비록 허구적 부면이 크지만 이런 견해가 일본과 중국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방법론으로 연결되고 확산된 지점 또한 언급이 필요한 대목이 된다.
      본 연구의 범위는 현재 한국의 실학개념을 기준으로 삼는다. 나아가 북한학계의 실학인식과 더불어 일본과 중국의 실학 수용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학개념의 발생과 의도 및 파급영향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논쟁이 이루어진 모양새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방식 또한 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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