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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濟의 瑞祥과 王權 = Auspicious things and royal authority in the period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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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三國史記』 百濟本紀에는 瑞祥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상은 왕자의 盛德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 논문은 백제의 서상을 분석하였다. 서상을 통해 백제의 정치를 구분할 수 있다. 백제에서 서상기록은 주로 漢城時代에 집중되어있다. 溫祚王代에 5회의 서상기록이 나타난다. 백제왕들 중 가장 많은 서상이 나타난 온조왕대에 서상으로 대변되는 왕권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어 古爾王代에 서상이 4회가 보인다. 고이왕대에는 백제에서 일련의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한성시대에 온조왕 • 고이왕을 제외하고는 서상기록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한성시대의 백제는 전체적으로 왕권이 강력하게 지속되지 못했다.
    백제는 蓋鹵王代에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인 한성을 잃었다. 그 후 熊津과 泗沘를 도읍으로 한 시대가 전개되었다. 이 시대에는 東城王代만 예외적으로 서상기록들이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대에 시도된 왕권강화는 동성왕의 시해로 실패했다고 보여 진다. 동성왕 이후 웅진과 사비시기의 역대 백제왕들은 일체의 서상기록이 없다.
    서상으로 보아, 백제의 왕권은 한성에 있을 때와 비교해, 웅진과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서상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정치는 한성시기와 천도한 이후인 웅진과 사비시기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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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史記』 百濟本紀에는 瑞祥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상은 왕자의 盛德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 논문은 백제의 서상을 분석하였다. 서상을 통해 백제의 정치를 구분할 수 있다. 백...

    『三國史記』 百濟本紀에는 瑞祥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상은 왕자의 盛德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 논문은 백제의 서상을 분석하였다. 서상을 통해 백제의 정치를 구분할 수 있다. 백제에서 서상기록은 주로 漢城時代에 집중되어있다. 溫祚王代에 5회의 서상기록이 나타난다. 백제왕들 중 가장 많은 서상이 나타난 온조왕대에 서상으로 대변되는 왕권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어 古爾王代에 서상이 4회가 보인다. 고이왕대에는 백제에서 일련의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한성시대에 온조왕 • 고이왕을 제외하고는 서상기록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한성시대의 백제는 전체적으로 왕권이 강력하게 지속되지 못했다.
    백제는 蓋鹵王代에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인 한성을 잃었다. 그 후 熊津과 泗沘를 도읍으로 한 시대가 전개되었다. 이 시대에는 東城王代만 예외적으로 서상기록들이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대에 시도된 왕권강화는 동성왕의 시해로 실패했다고 보여 진다. 동성왕 이후 웅진과 사비시기의 역대 백제왕들은 일체의 서상기록이 없다.
    서상으로 보아, 백제의 왕권은 한성에 있을 때와 비교해, 웅진과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서상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정치는 한성시기와 천도한 이후인 웅진과 사비시기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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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uspicious things which indicated the royal virtues of the prince were shown in the period of Baekje. In fact, auspicious phenomena were written in 『Samguksagi』and the phenomena in the period of Baekje were interrelated with the royal authority.
    It is noticed that auspicious things in Baekje were found in the time of King Onjo, King Goi intensively. During the period, auspicious things were used to reflect the establishment of sovereign power. Except King Onjo and King Goi, auspicious things were found in the time of the other kings in Hansung period intermittently.
    In the time of King Gaero, Baekje lost Hansung, the capital city of the nation by the attack of Goguryo. Then Baekje moved the national capital city from Hansung to Wungjin and Sabi. King Dongsung was only monarch who could find auspicious things in Wungjin and Sabthe period. But There were many natural calamities in the years of king Dongsung. These phenomena were connected with the lack of virtue of a ruler. These natural calamities were associated with the political confusion too.
    There were no auspicious things could be found except the time of King Dongsung in Wungjin and Sabi period. This means that the decline in the sovereign power in those days. The collapsing of the sovereign power could indicated the strengthen of the influence of nobility. Eventually those phenomena made Baekje lose her strength.
    In conclusion, auspicious things in Baekje were related to the royal authority. There were two different eras in political situation of Baekje. The first era was in Hansung period and the second era was in Wungjin and Sab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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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spicious things which indicated the royal virtues of the prince were shown in the period of Baekje. In fact, auspicious phenomena were written in 『Samguksagi』and the phenomena in the period of Baekje were interrelated with the royal authority. ...

    Auspicious things which indicated the royal virtues of the prince were shown in the period of Baekje. In fact, auspicious phenomena were written in 『Samguksagi』and the phenomena in the period of Baekje were interrelated with the royal authority.
    It is noticed that auspicious things in Baekje were found in the time of King Onjo, King Goi intensively. During the period, auspicious things were used to reflect the establishment of sovereign power. Except King Onjo and King Goi, auspicious things were found in the time of the other kings in Hansung period intermittently.
    In the time of King Gaero, Baekje lost Hansung, the capital city of the nation by the attack of Goguryo. Then Baekje moved the national capital city from Hansung to Wungjin and Sabi. King Dongsung was only monarch who could find auspicious things in Wungjin and Sabthe period. But There were many natural calamities in the years of king Dongsung. These phenomena were connected with the lack of virtue of a ruler. These natural calamities were associated with the political confusion too.
    There were no auspicious things could be found except the time of King Dongsung in Wungjin and Sabi period. This means that the decline in the sovereign power in those days. The collapsing of the sovereign power could indicated the strengthen of the influence of nobility. Eventually those phenomena made Baekje lose her strength.
    In conclusion, auspicious things in Baekje were related to the royal authority. There were two different eras in political situation of Baekje. The first era was in Hansung period and the second era was in Wungjin and Sab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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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백제의 서상과 정치적 의미
    • Ⅲ. 백제의 서상에 대한 해석
    • Ⅳ. 맺음말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백제의 서상과 정치적 의미
    • Ⅲ. 백제의 서상에 대한 해석
    • Ⅳ. 맺음말
    • 參考文獻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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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서정기,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2 金周成, "지배세력의 분열과 왕권의 약화,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3 盧重國, "익산지역 정치체의 사적전개와 백제사상의 익산세력" 15 : 2001

    4 梁起錫, "웅진천도와 중흥,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5 김현숙, "웅진시기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6 주보돈, "웅진도읍기 백제와 신라의 관계,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7 김영심, "웅진 · 사비시기 백제의 영역,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8 양종국, "연구논문 : 7세기 중엽 의자왕의 정치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 - 의자왕의 대한 재평가 (1)" 백제문화연구소 (31) : 191-221, 2002

    9 盧重國, "삼국의 통치체제, In 한국사, 3" 한길사 1994

    10 金周成, "사비천도와 지배세력의 재편,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1 서정기,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2 金周成, "지배세력의 분열과 왕권의 약화,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3 盧重國, "익산지역 정치체의 사적전개와 백제사상의 익산세력" 15 : 2001

    4 梁起錫, "웅진천도와 중흥,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5 김현숙, "웅진시기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6 주보돈, "웅진도읍기 백제와 신라의 관계,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7 김영심, "웅진 · 사비시기 백제의 영역, In 고대 동아세아와 백제" 서경 2003

    8 양종국, "연구논문 : 7세기 중엽 의자왕의 정치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 - 의자왕의 대한 재평가 (1)" 백제문화연구소 (31) : 191-221, 2002

    9 盧重國, "삼국의 통치체제, In 한국사, 3" 한길사 1994

    10 金周成, "사비천도와 지배세력의 재편,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11 문동석, "백제지배세력연구" 혜안 2007

    12 노중국,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988

    13 권오영, "백제의 성립과 발전, In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95

    14 申瀅植, "백제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2

    15 이도학, "백제고대국가연구" 일지사 1995

    16 이도학, "백제 한성 · 웅진성 시대 연구" 일지사 2010

    17 김현숙,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연구" 모시는 사람들 2005

    18 김주성, "개교 5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 특집 : 신라 가야문화권에서 본 백제문화의 이해 ; 백제 무왕의 치적" 백제문화연구소 (27) : 81-92, 1998

    19 신정훈, "高句麗의 瑞祥物이 지닌 性格" (21) : 2005

    20 李熙德, "韓國古代自然觀과 王道政治" 혜안 1999

    21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85

    22 盧重國, "百濟의 政治, In 百濟의 歷史와 文化" 학연문화사 1996

    23 李基東, "百濟史硏究" 一潮閣 1996

    24 "晋書"

    25 신정훈, "新羅 下代의 瑞祥이 가진 정치적 의미" 동양학연구원 (44) : 161-180, 2008

    26 "宋書"

    27 李丙燾, "國譯 三國史記, 下" 乙酉文化社 1983

    28 "南齊書"

    29 申瀅植, "三國史記硏究" 一潮閣 1981

    30 "三國史記"

    31 양정석, "‘백제의 서상과 왕권’에 대한 토론문" 2012

    32 최윤섭, "4世紀 末 百濟의 王位繼承과 貴族勢力" 14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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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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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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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6 0.6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9 1.7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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