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항상 인간의 사회 속에 함께 존재해 왔다. 인류문화는 놀이에서 발생했으며 유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본성 속에 각인된 특성으로서 놀이는 각 시대...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689935
2012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항상 인간의 사회 속에 함께 존재해 왔다. 인류문화는 놀이에서 발생했으며 유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본성 속에 각인된 특성으로서 놀이는 각 시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항상 인간의 사회 속에 함께 존재해 왔다. 인류문화는 놀이에서 발생했으며 유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본성 속에 각인된 특성으로서 놀이는 각 시대의 정신적 상황을 반영하며, 그 사회에 고유한 다양한 체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본 연구는 발생적으로 신화화, 세속화, 학문화, 문화화, 기술화, 세계화와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나는 놀이의 다양한 의미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나타난 놀이의 의미를 추적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성스러운 놀이로서의 ‘헤오르테’와 최고의 활동으로서의 ‘스콜레’에 대한 해명으로 이루어진다.
‘헤오르테’는 신적인 것과의 근원적인 교섭으로서 인간 존재의 심오한 세계 연관이 숨어 있는 인간 놀이의 한 형태이다. ‘헤오르테’에서 즐거움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성가를 부르며 춤을 추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들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신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인간은 신들의 비위를 맞추어서 한다. 인간은 저마다 어떤 놀이를 하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춤을 추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인간은 신들의 가호에 힘입어서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남녀가 가장 훌륭한 놀이를 하면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 인간은 ‘헤오르테’를 통해 근원적인 신성과 소통하며 자신의 생업, 공동체 통합 등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 ‘헤오르테’는 공동체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는 놀이이다. 이처럼 플라톤은 놀이를 인간 내적 삶의 중심으로 옮겨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레’는 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학습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여가를 잘 보내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스콜레’(scholē)와 라틴어 ‘스콜라’(schola)가 ‘여가’를 뜻하면서도 ‘학교’를 뜻하기도 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에 필요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시간을 학문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집트의 성직자들에서 여가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수학이라는 학문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은 물질적 안락과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거의 다 갖추어 졌을 때 앎을 찾아 나선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이론적인 삶이란 관조적 삶을 의미한다. 관조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러한 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레’를 심층적인 의미에서의 관조적 삶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플라톤의 놀이 개념은 유아적인 것에서 신성한 ‘헤오르테’로 변화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놀이 개념은 오락에서 학문 활동과 관조적 생활로 변화된다. 플라톤은 놀이를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인간의 삶의 중심에 두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놀이를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자유로운 활동이요 개인 삶의 완성으로 파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놀이는 단순히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놀이는 자유로운 최고의 활동으로 그것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완성이다. 놀이는 인간 삶의 본질이어서 인간은 놀이를 통해서만 행복해진다.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하는 활동이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가장 지적이면서 능동적인 활동이다.
플라톤의 ‘헤오르테’에서 아폴로적-디오니소스적인 놀이의 양의성과 공동체의 혼연일체라는 놀이의 구조가 나타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레’에서는 본질적 삶의 풍요로서 기쁨이라는 놀이의 구조가 나타난다. 놀이에 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지만 놀이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들이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삶을 놀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와 노동이 조화를 이룬 세계, 이것이 그들의 이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