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 중기 문인인 창강 조속의 시서화 작품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三絶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금석문 수집과 완상, 저술, 편찬 활동 등 그의 행적에 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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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중기 문인인 창강 조속의 시서화 작품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三絶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금석문 수집과 완상, 저술, 편찬 활동 등 그의 행적에 관한 기...
이 글은 조선 중기 문인인 창강 조속의 시서화 작품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三絶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금석문 수집과 완상, 저술, 편찬 활동 등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 을 통해 조선중기 문인 문화의 중심에 서서 이끈 그의 삶을 조명해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위상을 밝히려한다. 조속은 세상의 부귀,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청백리로 추증될 정도로 가난했고, 고질병에 시 달렸으나 조선중기 화단의 중심에 있었다. 관련된 문헌 내용과 학계에서 진작으로 논의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을 때, 그는 영모화, 묵매, 묵죽 등에 뛰어났다. 명산을 여행하고 그렸던 그의 산수화는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발전에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중국에서 전해진 화보를 통 해 남종화풍을 익혀, 구사했음도 알 수 있다. 그의 글씨는 옛 명필들의 서체를 익히고 자신의 성품과 식견을 담아 완성시킨 결과이다. 그의 文才 또한 뛰어났음은 지인들의 글을 통해 입증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詩文이 적은 것은 글로서 정치적 격랑에 휩쓸린 지인들과 집안의 불행을 지켜보며 살아온 조속의 절제와 修身의 한 방편이 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시서화에 뛰어나 三絶이란 세간의 평가 속에서도 조속은 글, 그림, 글씨 모든 분야에서 스스로를 단속하며 즐긴 修身의 원칙을 지켰다. 中庸과 謙讓의 자세는 집안 의 浮沈을 몸소 경험한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좌표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밖에도 조속이 서화 감상을 즐기고, 옛 글씨와 옛 문헌에 대한 관심과 비상한 기억력으로 서 책을 편찬했다. 그가 편찬한 『金石淸玩』은 역대 명필들의 금석문을 탁본하여 집성한 것으로 현존 하는 最古의 비첩서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가 문인으로서의 아취와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의식으로 당시의 문화를 이끌었던 선구적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亂世를 살았던 조속은 세속적 욕망을 접고 철저히 자신을 단속하며 붓을 잡아 삼절로서의 예술 세계를 이루고 문인 문 화를 향유하며 지식인의 역할을 실천했던 조선 중기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define its status as The Three Perfections by comprehensively reviewing the works of Cho Sok, a literary man in the mid- Joseon Dynasty. In addition, he tries to establish his status as an intellectual who led the l...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define its status as The Three Perfections by comprehensively reviewing the works of Cho Sok, a literary man in the mid- Joseon Dynasty. In addition, he tries to establish his status as an intellectual who led the literary world by collecting and appreciating an epigraph, book writing and compiling. He was poor enough to be later appointed as a clean government employee without regard to the wealth and honor, and suffered from chronic diseases, but was in the center of the art world of the Joseon mid-Dynasty. Based on the related literature and the works discussed earlier in the academic world, he excelled in paintings of birds, ink apricot flower paintings and ink bamboo paintings. It is considered that his landscape painting, which traveled to famous mountain was the beginning of the development of the Real Landscape Paint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He learned and practiced the style of the Southern School through the Chinese picture book. His handwriting is the result of learning the calligraphy style of the old master calligraphers and completing them with his character and insight. His writings also proved to be excellent through the records of other writers. However, there are few poems that exist due to the moderation of Cho Sok who watched the misfortune of his father who suffered politically. In this way, even in the midst of the evaluation of the Three Perfections, he kept himself in control of himself in all areas of writing, painting, and writing. The postures of a middle course and modesty are thought to have been mental coordinates to support his life, which he experienced through the rise and fall of a family. In addition, Cho sok enjoyed appreciation of calligraphy, and compiled books with interest in old writings and texts and his excellent memory. His compilation “Kumseokchungwan” is the oldest existing one and is a rubbed copy of the inscriptions of famous calligraphers. This makes it possible to know that he was a pioneer who led the culture of the time with the archaic writer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as an intellectual. Therefore, he lived in a difficult time and gave up wealth and honor and took complete control of himself. And he achieved an artistic world as the three perfections, enjoyed literary culture and practiced the role of intellectual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안휘준, "한국 회화사 연구" 시공사 2000
2 마이클 설리번, "최상의 중국 예술 시·서·화 삼절" 한국미술연구소 2015
3 강관식, "조선후기 남종화풍의 흐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39 : 1990
4 장지성, "조선시대 중기 화조화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9
5 황정연,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7
6 국립중앙박물관, "왕의 글이 있는 그림" 2008
7 유홍준, "김광국의 석농화원" 눌와 2015
8 신재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궤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0
9 최완수, "겸재진경산수화고" 한국민족미술연구소 21 : 1981
10 顧炳, "顧氏畵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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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휘준, "韓國繪畵史" 일지사 1980
12 李厚源, "迂齊集"
13 豐壤趙氏花樹會, "豐壤趙氏文集叢書 제6집" 1991
14 豐壤趙氏花樹會, "豐壤趙氏世祿1" 1981
15 許穆, "記言別集"
16 許穆, "記言"
17 李選, "芝湖集"
18 閔鼎重, "老峯集"
19 尹舜擧, "童土集"
20 李景奭, "白軒集"
21 李植, "澤堂集"
22 이은경, "滄江 趙涑의 繪畵 : 傳稱作을 통한 연구" 梨花女子大學校 大學院 1998
23 李裕元, "林下筆記"
24 이선옥, "朝鮮 中期 梅花圖 화풍의 特徵과 影響" 한국미술사학회 (249) : 5-35, 2006
25 南鶴鳴, "晦隱集"
26 趙裕壽, "后溪集"
27 朴長遠, "久堂集"
28 남동신, "『金石淸玩』 연구" 한국중세사학회 (34) : 361-434, 2012
고성 옥천사 연대암 치성광여래도 도상연구 - 칠성각부도상을 중심으로 -
불교와 도교의 交涉과 攝受 - 조선후기 神衆圖의 신선 도상 수용을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5-02-1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Dongak Art History -> Association of Dongak Art History | ![]()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47 | 0.47 | 0.71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68 | 0.71 | 0.807 | 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