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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愭 文學의 美意識 = Aesthetic Consciousness of Yoon Ki’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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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68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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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Rhetoric and goals of Yoon Ki’s literature seems to be based on Pak Goei’s, appreciating his simple and direct ways of satirizing the social irregularities. Yoon Ki had maintained his literary disposition until he died even if his influence was not that much, while Pak Goei had made defection of his style.
      Yoon Ki’s aesthetic consciousness aims to simple, clear, and plain style, which could be described with the words “Jung-Yak(Simple Idiom)” and “Hyun-Bu(Distinct Idiom)”, especially Hyun-Bu.
      He criticized the exclusive group which used mere technical stools like an anagram and some superficial flow which looked elegant being empty and blank really. He rather emphasized that a straight and strict writing style should be needed. Thus, in his prose he had used very artless and sincere expressions, not using an anagram, which was related with a historical statement style.
      Furthermore, in his poetry, he had shown much lifelike and plain reflections, similes, and compositions, which viewpoints could be mutually understood with the nature of Sagongdo’s “Twenty-four Poems.” Not using his own direct emotion description, he rather used truth-based representations with some suitable method.
      “During the lifetime, I have not written poetry to delight in. It was subtle satire and vigilance that I have written for.” He said. It is the authentic statements, especially when he had dealt with his poverty.
      He did not directly condemn the writers of the same period, but had stuck to critical viewpoints for not being corresponding and honest, for I Assuming it was related with the school of Yoen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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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hetoric and goals of Yoon Ki’s literature seems to be based on Pak Goei’s, appreciating his simple and direct ways of satirizing the social irregularities. Yoon Ki had maintained his literary disposition until he died even if his influence was no...

      Rhetoric and goals of Yoon Ki’s literature seems to be based on Pak Goei’s, appreciating his simple and direct ways of satirizing the social irregularities. Yoon Ki had maintained his literary disposition until he died even if his influence was not that much, while Pak Goei had made defection of his style.
      Yoon Ki’s aesthetic consciousness aims to simple, clear, and plain style, which could be described with the words “Jung-Yak(Simple Idiom)” and “Hyun-Bu(Distinct Idiom)”, especially Hyun-Bu.
      He criticized the exclusive group which used mere technical stools like an anagram and some superficial flow which looked elegant being empty and blank really. He rather emphasized that a straight and strict writing style should be needed. Thus, in his prose he had used very artless and sincere expressions, not using an anagram, which was related with a historical statement style.
      Furthermore, in his poetry, he had shown much lifelike and plain reflections, similes, and compositions, which viewpoints could be mutually understood with the nature of Sagongdo’s “Twenty-four Poems.” Not using his own direct emotion description, he rather used truth-based representations with some suitable method.
      “During the lifetime, I have not written poetry to delight in. It was subtle satire and vigilance that I have written for.” He said. It is the authentic statements, especially when he had dealt with his poverty.
      He did not directly condemn the writers of the same period, but had stuck to critical viewpoints for not being corresponding and honest, for I Assuming it was related with the school of Yoen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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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尹愭는 문학의 수사법과 그 목표를 정하는데 있어 白居易를 典範으로 삼았다. 白居易는 소위 ‘新樂府運動’에 나타나듯이 평소에 時務에 관심을 가지고 시대의 급무를 처리해야 하고, 독서는 治理를 공부하여 문장으로 시대상을 나타내고 詩歌로는 시대의 일을 형상화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설정하고 있었다. 白居易 문학의 쉽고도 명확한 표현 방법과 명쾌한 직설로 시대의 질곡을 풍자한 점에 깊이 동감한 것이다. 그러나 白居易는 생애 후반기부터는 자신의 특징적 면모를 지켜내지 못하고 세상과 일종의 타협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尹愭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문학적 경향을 변함없이 유지하였다.
      尹愭 산문의 미의식은 平易하고 明白한 표현으로 直筆을 추구하였다. 그의 산문의 風格은 『文心雕龍』 「體性篇」의 精約과 顯附 2가지와 近似하다. 精約은 ‘간결한 작풍’이고 顯附는 ‘선명한 작풍’이라 하겠다. 이 가운데서도 顯附의 辭直義暢이 尹愭의 산문의 작풍과 근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문에 있어서 어떤 문체의 특징적 면모를 위하여 僻字를 짜깁기 하여 奇異하고 巧妙한 것을 새로 만드는데 전념하여 뜻이 통하지도 않게 하고는, 유파를 형성하여 서로 칭송하고 다른 사람은 폄하하는 부류가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燕巖 계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실상을 분석해 보면 본체는 너무 날카롭고 그 말은 급박하여 얼핏 보기에는 아름답고 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軟弱하고 空虛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렇게 겉만 古文이고 그 실상은 그렇지 못한 당시의 경향은 진정한 古文 운동에 악영향을 준다고 비판하였다. 이 보다는 ‘의미의 전달’ 이라도 되도록 平易한 작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산문의 서술방법은 특별하게 난해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없고 불가결한 경우 외에는 用事를 쓰지 않고 글자 역시 僻字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 隱喩的인 표현이나 婉曲한 표현을 지양하고 모든 점에 대하여 자신의 주장을 直說적인 表現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歷史를 記述할 때 명확한 意味의 전달을 중시하는 수사법과 관련이 있다.
      韻文에 있어서의 미의식은 逼眞한 模寫를 중시하였다. 그의 詩作 경향에 보이는 平易한 시어와 模寫의 중시라는 측면에서는 司空圖의 ‘詩品二十四則’의 自然과 상통하고 시에 있어서 화려한 수사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산문과 같은 담담한 묘사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점에 있어 實境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尹愭는 詩作과 詩評에서 성조와 격률 같은 修辭法 보다는 소위 辭達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詩經』에 대하여 ‘핍진한 模寫와 자연스런 色響이 있다.’라고 하여 대상의 외형과 내면을 逼眞하게 모사해 내면 그 결과로 색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시의 가치를 ‘다소 意에 치우쳐 文詞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상대에 따라 뜻을 붙여서 心懷를 나타내어 읊어 諷戒를 붙이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시는 자신의 감회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다만 사실대로 模寫를 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模寫만으로는 그 意想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적합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외에 尹愭는 스스로 “평생토록 한가히 吟風弄月을 짓지 않았고, 작은 흥취도 은근한 풍자와 경계 아닌 것 없네.”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의 시문에서는 음풍농월은 찾기 어렵고 시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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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愭는 문학의 수사법과 그 목표를 정하는데 있어 白居易를 典範으로 삼았다. 白居易는 소위 ‘新樂府運動’에 나타나듯이 평소에 時務에 관심을 가지고 시대의 급무를 처리해야 하고, 독...

      尹愭는 문학의 수사법과 그 목표를 정하는데 있어 白居易를 典範으로 삼았다. 白居易는 소위 ‘新樂府運動’에 나타나듯이 평소에 時務에 관심을 가지고 시대의 급무를 처리해야 하고, 독서는 治理를 공부하여 문장으로 시대상을 나타내고 詩歌로는 시대의 일을 형상화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설정하고 있었다. 白居易 문학의 쉽고도 명확한 표현 방법과 명쾌한 직설로 시대의 질곡을 풍자한 점에 깊이 동감한 것이다. 그러나 白居易는 생애 후반기부터는 자신의 특징적 면모를 지켜내지 못하고 세상과 일종의 타협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尹愭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문학적 경향을 변함없이 유지하였다.
      尹愭 산문의 미의식은 平易하고 明白한 표현으로 直筆을 추구하였다. 그의 산문의 風格은 『文心雕龍』 「體性篇」의 精約과 顯附 2가지와 近似하다. 精約은 ‘간결한 작풍’이고 顯附는 ‘선명한 작풍’이라 하겠다. 이 가운데서도 顯附의 辭直義暢이 尹愭의 산문의 작풍과 근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문에 있어서 어떤 문체의 특징적 면모를 위하여 僻字를 짜깁기 하여 奇異하고 巧妙한 것을 새로 만드는데 전념하여 뜻이 통하지도 않게 하고는, 유파를 형성하여 서로 칭송하고 다른 사람은 폄하하는 부류가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燕巖 계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실상을 분석해 보면 본체는 너무 날카롭고 그 말은 급박하여 얼핏 보기에는 아름답고 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軟弱하고 空虛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렇게 겉만 古文이고 그 실상은 그렇지 못한 당시의 경향은 진정한 古文 운동에 악영향을 준다고 비판하였다. 이 보다는 ‘의미의 전달’ 이라도 되도록 平易한 작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산문의 서술방법은 특별하게 난해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없고 불가결한 경우 외에는 用事를 쓰지 않고 글자 역시 僻字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 隱喩的인 표현이나 婉曲한 표현을 지양하고 모든 점에 대하여 자신의 주장을 直說적인 表現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歷史를 記述할 때 명확한 意味의 전달을 중시하는 수사법과 관련이 있다.
      韻文에 있어서의 미의식은 逼眞한 模寫를 중시하였다. 그의 詩作 경향에 보이는 平易한 시어와 模寫의 중시라는 측면에서는 司空圖의 ‘詩品二十四則’의 自然과 상통하고 시에 있어서 화려한 수사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산문과 같은 담담한 묘사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점에 있어 實境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尹愭는 詩作과 詩評에서 성조와 격률 같은 修辭法 보다는 소위 辭達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詩經』에 대하여 ‘핍진한 模寫와 자연스런 色響이 있다.’라고 하여 대상의 외형과 내면을 逼眞하게 모사해 내면 그 결과로 색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시의 가치를 ‘다소 意에 치우쳐 文詞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상대에 따라 뜻을 붙여서 心懷를 나타내어 읊어 諷戒를 붙이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시는 자신의 감회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다만 사실대로 模寫를 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模寫만으로는 그 意想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적합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외에 尹愭는 스스로 “평생토록 한가히 吟風弄月을 짓지 않았고, 작은 흥취도 은근한 풍자와 경계 아닌 것 없네.”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의 시문에서는 음풍농월은 찾기 어렵고 시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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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鄭麟趾, "龍飛御天歌"

      2 車柱環, "정보판 中國詩論"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3 金宗瑞, "高麗史節要"

      4 金昌協, "農巖集"

      5 張維, "谿谷漫筆"

      6 鍾嶸, "詩品"

      7 丁若鏞, "與猶堂全書"

      8 丁若鏞, "經世遺表"

      9 白居易, "白香山詩集卷"

      10 白居易, "白氏長慶集"

      1 鄭麟趾, "龍飛御天歌"

      2 車柱環, "정보판 中國詩論"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3 金宗瑞, "高麗史節要"

      4 金昌協, "農巖集"

      5 張維, "谿谷漫筆"

      6 鍾嶸, "詩品"

      7 丁若鏞, "與猶堂全書"

      8 丁若鏞, "經世遺表"

      9 白居易, "白香山詩集卷"

      10 白居易, "白氏長慶集"

      11 尹愭, "無名子集, In 韓國文集叢刊" 民族文化推進會 2000

      12 尹愭, "無名子集" 成均館大學校 大東文化硏究院 1977

      13 김병건, "無名子 尹? 한시의 時代槪括과 諷戒的 성격" 우리한문학회 12 (12): 293-324, 2005

      14 임완혁, "無名子 尹愭의 散文世界" 우리한문학회 19 : 719-745, 2008

      15 "無名子 尹愭의 思想과 文學" 성균관대학교 2004

      16 李敏弘, "泮中雜詠에 나타난 18세기의 성균관, 문헌과 해석" 문헌과해석사 2005

      17 李敏弘, "朝鮮朝 成均館의 校園과 太學生의 生活像"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9

      18 程端學, "春秋本義"

      19 김병건, "尹愭의 「家禁」에 나타난 家庭敎育의 面貌와 現代的 意味" 동방한문학회 48 (48): 7-44, 2011

      20 김문식, "尹愭가 노래한 성균관 풍경, In 문헌과 해석" 문헌과해석사 2005

      21 彭定求, "全唐詩"

      22 姜浚欽, "三溟集"

      23 임완혁, "(尹愭 산문선) 차라리 벙어리로 살리라" 태학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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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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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36 0.36 0.3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36 0.746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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