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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김해만 정치체의 형성과정과 수장층의 출현 = A Study on the Formation of Political Body in Paleo-Gimhae Bay and the Advent of the Ruling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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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370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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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d a phase in history from the society that built dolmens to the period when wooden coffin graves appeared and the state of Garak was established centering on Paleo-Gimhae Bay.
    The nine-ruler society related with the dolmen constructing group was divided by settlements which had superiority and inferiority as well as the sense of independence. With the spread of Korean bronze dagger culture, the nine-ruler society went through the formation of villages through the phase of ritual community centering on dominant settlements, and in particular, this is shown prominently in the basin of Haebancheon Stream. In the case of dolmen in Gusan-dong, the scope of the ritual community is such that it as large as the spatial scope of Eup-rap(邑落). The ritual center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olitical center.
    Around the beginning of the common era, wooden coffin graves appeared in relation to immigrants and the state of Garak was established. The geopolitical characteristics of the Paleo- Gimhae Bay as the base of international trade must have played the biggest role in the economic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Eup-rap(邑落)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tate of Garak.
    The nature of the leader of the group must have shifted from leader to ruler in this process. The leader in the dolmen constructing society is the community-oriented leader who emphasizes the unity of the entire group than the personal authority whereas the leader in the wooden coffin constructing group is the leader emphasizing personal authority, forming the full-scale political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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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d a phase in history from the society that built dolmens to the period when wooden coffin graves appeared and the state of Garak was established centering on Paleo-Gimhae Bay. The nine-ruler society related with the dolmen constructi...

    This study examined a phase in history from the society that built dolmens to the period when wooden coffin graves appeared and the state of Garak was established centering on Paleo-Gimhae Bay.
    The nine-ruler society related with the dolmen constructing group was divided by settlements which had superiority and inferiority as well as the sense of independence. With the spread of Korean bronze dagger culture, the nine-ruler society went through the formation of villages through the phase of ritual community centering on dominant settlements, and in particular, this is shown prominently in the basin of Haebancheon Stream. In the case of dolmen in Gusan-dong, the scope of the ritual community is such that it as large as the spatial scope of Eup-rap(邑落). The ritual center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olitical center.
    Around the beginning of the common era, wooden coffin graves appeared in relation to immigrants and the state of Garak was established. The geopolitical characteristics of the Paleo- Gimhae Bay as the base of international trade must have played the biggest role in the economic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Eup-rap(邑落)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tate of Garak.
    The nature of the leader of the group must have shifted from leader to ruler in this process. The leader in the dolmen constructing society is the community-oriented leader who emphasizes the unity of the entire group than the personal authority whereas the leader in the wooden coffin constructing group is the leader emphasizing personal authority, forming the full-scale political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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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에서는 고김해만을 중심으로 구간사회(九干社會)의 기원인 지석묘축조사회로부터 목관묘가 출현하고 구야국(가락국)의 국읍이 성립하는 단계까지 살펴보았다.
    지석묘 축조집단과 관련되는 구간사회는 기본적으로 촌락 단위로 구분되었으며 우열이 있으나 독립성도 있었다.
    한국식동검문화의 파급과 함께 구간사회의 유력 촌락을 중심으로 의례공동체 과정을 통해 읍락형성기를 거쳤는데, 특히, 대성동 일원의 해반천유역에서 그러한 양상이 두드러진다. 읍락의 맹아를 유추할 수 있는 고고학적 현상은 구지봉 지석묘와 환호시설, 대성동 환호시설, 구산동의 초대형 지석묘 등과 관련된다. 구지봉이나 구산동지석묘의 예를보면 의례적 공동체 범위가 읍락 정도의 공간적 범위를 아우를 정도이다. 이 단계에도 개별 촌락들은 자치권을 유지하였으므로 후대에 구간사회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의례의 중심지와 정치적 중심지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기원전 1세기 혹은 기원전후 무렵에 이주민과 관련된 목관묘의 출현과 함께 삼한 소국의 하나인 구야국 성립 단계에 이르렀다. 읍락형성기나 구야국 성립과정에서 경제적 배경은 ‘고김해만’이라는 대외교역의 거점으로서의 지정학적특수성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의 우두머리(首長)의 성격은 지도자로부터 지배자로 점차 전환되었을 것이다. 즉, 지석묘 축조사회는 개인의 위세보다는 집단전체의 통합을 강조하는 공동체 지향의 수장이고, 구간사회를 통합한 목관묘 축조집단은 개인 지향의 수장으로서 본격적인 정치체가 형성된 단계이다. 완만한 혈연적·의례적 공동체를 정치적 공동체로전환시킨 것은 철기문화를 가지고 선진 정치체제를 경험한 북방 이주민과 관련될 것이며, 고고자료로서는 목관묘군집과 관련될 것이다.
    하지만, 목관묘 단계 사회는 정치적 권력에서 일정한 한계성도 보인다 즉, 목관묘 단계는 일반대중과 분리되어 배타적인 권력과 지위를 갖는 통치자의 면모는 미약한 측면이 있다. 지배-피지배 계층의 명확한 구분은 묘역이 구릉 정상부의 탁월한 입지로 분리되고 다량의 유물을 부장하는 대형 목곽묘 출현기가 되어서야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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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에서는 고김해만을 중심으로 구간사회(九干社會)의 기원인 지석묘축조사회로부터 목관묘가 출현하고 구야국(가락국)의 국읍이 성립하는 단계까지 살펴보았다. 지석묘 축조집단과 관련...

    본고에서는 고김해만을 중심으로 구간사회(九干社會)의 기원인 지석묘축조사회로부터 목관묘가 출현하고 구야국(가락국)의 국읍이 성립하는 단계까지 살펴보았다.
    지석묘 축조집단과 관련되는 구간사회는 기본적으로 촌락 단위로 구분되었으며 우열이 있으나 독립성도 있었다.
    한국식동검문화의 파급과 함께 구간사회의 유력 촌락을 중심으로 의례공동체 과정을 통해 읍락형성기를 거쳤는데, 특히, 대성동 일원의 해반천유역에서 그러한 양상이 두드러진다. 읍락의 맹아를 유추할 수 있는 고고학적 현상은 구지봉 지석묘와 환호시설, 대성동 환호시설, 구산동의 초대형 지석묘 등과 관련된다. 구지봉이나 구산동지석묘의 예를보면 의례적 공동체 범위가 읍락 정도의 공간적 범위를 아우를 정도이다. 이 단계에도 개별 촌락들은 자치권을 유지하였으므로 후대에 구간사회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의례의 중심지와 정치적 중심지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기원전 1세기 혹은 기원전후 무렵에 이주민과 관련된 목관묘의 출현과 함께 삼한 소국의 하나인 구야국 성립 단계에 이르렀다. 읍락형성기나 구야국 성립과정에서 경제적 배경은 ‘고김해만’이라는 대외교역의 거점으로서의 지정학적특수성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의 우두머리(首長)의 성격은 지도자로부터 지배자로 점차 전환되었을 것이다. 즉, 지석묘 축조사회는 개인의 위세보다는 집단전체의 통합을 강조하는 공동체 지향의 수장이고, 구간사회를 통합한 목관묘 축조집단은 개인 지향의 수장으로서 본격적인 정치체가 형성된 단계이다. 완만한 혈연적·의례적 공동체를 정치적 공동체로전환시킨 것은 철기문화를 가지고 선진 정치체제를 경험한 북방 이주민과 관련될 것이며, 고고자료로서는 목관묘군집과 관련될 것이다.
    하지만, 목관묘 단계 사회는 정치적 권력에서 일정한 한계성도 보인다 즉, 목관묘 단계는 일반대중과 분리되어 배타적인 권력과 지위를 갖는 통치자의 면모는 미약한 측면이 있다. 지배-피지배 계층의 명확한 구분은 묘역이 구릉 정상부의 탁월한 입지로 분리되고 다량의 유물을 부장하는 대형 목곽묘 출현기가 되어서야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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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井上, "嶺南地方 出土 倭系遺物로 본 韓日交涉" 慶北大學校 大學院 2006

    2 이동희, "麗水半島 支石墓 社會의 階層構造" 한국대학박물관협회 (70) : 109-132, 2007

    3 이창희, "勒島交易論 -金屬器交易에 대한 新觀點-" 영남고고학회 (73) : 4-27, 2015

    4 林孝澤, "洛東江下流域 加耶의 土壙木棺墓 硏究" 漢陽大學校 大學院 1993

    5 武末純一, "金海 龜山洞遺蹟 Ⅹ" 慶南考古學硏究所 2010

    6 이희준, "한반도 남부 청동기~원삼국시대 수장의 권력 기반과 그 변천" 영남고고학회 (58) : 35-77, 2011

    7 김종일, "한국중서부지역 청동유적·유물의 분포와 제의권" 서울대학교국사학과 31 : 1994

    8 하승철, "진동유적을 통해 본 남해안지역의 네트워크" 한국고고학회 2008

    9 송영진, "적색마연토기에 대한 일고찰" 경상대학교 대학원 2003

    10 이동희, "인도네시아 숨바섬과 한국 지석묘 사회의 비교 연구" 호남고고학회 38 : 5-38, 2011

    1 井上, "嶺南地方 出土 倭系遺物로 본 韓日交涉" 慶北大學校 大學院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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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창희, "勒島交易論 -金屬器交易에 대한 新觀點-" 영남고고학회 (73) : 4-27, 2015

    4 林孝澤, "洛東江下流域 加耶의 土壙木棺墓 硏究" 漢陽大學校 大學院 1993

    5 武末純一, "金海 龜山洞遺蹟 Ⅹ" 慶南考古學硏究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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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이성주, "고고학상으로 본 금관가야의 국가적 성격"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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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이성주, "1~3세기 가야 정치체의 성장" 5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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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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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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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9 0.82 1.79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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