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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高達寺址의 浮屠와 塔碑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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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04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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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高達寺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禪刹로 원감국사 현욱이 머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여, 불교가 國是로 채택된 고려시대에 원종대사 찬유가 주석하면서 大刹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동안 수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고달사지에는 당대의 위상을 전해주는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도와 탑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상당히 우수한 치석 수법과 양식을 가지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연구되었는데, 여전히 부도의 조성시기의 선후 관계, 탑비와 한 쌍으로 건립된 부도의 주인공 등이 미해결이 상태이다. 그 이유는 부도의 양식이 유사하고, 관련 기록도 많지 않으며, 주인공을 추정할만한 결정적인 근거 자료 등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부도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완료되어 원위치임이 확인되어 부도와 탑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산상사지에 대한 새로운 검토 등이 요구되어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현재 고달사지 부도와 탑비의 주인공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승려는 원감국사 현욱과 원종대사 찬유이다. 이중에서 원종대사 찬유의 탑비는 비문이 남아있어 주인공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일명 귀부는 조성 시기가 신라말기이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원감국사 현욱의 탑비가 건립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원감국사 현욱의 탑비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확실시된다. 그리고 보물 제7호 부도가 양식사적으로 국보 제4호 부도보다 먼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도와 귀부의 조각 기법 등 다양한 비교를 통하여 볼 때 국보 제4호 부도의 주인공이 원종대사 찬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문의 기록으로 보아도 국보 제4호 부도의 주인공이 원종대사 찬유일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7호는 향후 산상사지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원감국사 현욱의 부도와 탑비가 고달사에 건립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달사지의 역사와 석조미술의 양식사적 정립을 위해서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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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達寺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禪刹로 원감국사 현욱이 머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여, 불교가 國是로 채택된 고려시대에 원종대사 찬유가 주석하면서 大刹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동...

      高達寺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禪刹로 원감국사 현욱이 머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여, 불교가 國是로 채택된 고려시대에 원종대사 찬유가 주석하면서 大刹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동안 수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고달사지에는 당대의 위상을 전해주는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도와 탑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상당히 우수한 치석 수법과 양식을 가지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연구되었는데, 여전히 부도의 조성시기의 선후 관계, 탑비와 한 쌍으로 건립된 부도의 주인공 등이 미해결이 상태이다. 그 이유는 부도의 양식이 유사하고, 관련 기록도 많지 않으며, 주인공을 추정할만한 결정적인 근거 자료 등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부도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완료되어 원위치임이 확인되어 부도와 탑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산상사지에 대한 새로운 검토 등이 요구되어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현재 고달사지 부도와 탑비의 주인공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승려는 원감국사 현욱과 원종대사 찬유이다. 이중에서 원종대사 찬유의 탑비는 비문이 남아있어 주인공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일명 귀부는 조성 시기가 신라말기이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원감국사 현욱의 탑비가 건립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원감국사 현욱의 탑비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확실시된다. 그리고 보물 제7호 부도가 양식사적으로 국보 제4호 부도보다 먼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도와 귀부의 조각 기법 등 다양한 비교를 통하여 볼 때 국보 제4호 부도의 주인공이 원종대사 찬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문의 기록으로 보아도 국보 제4호 부도의 주인공이 원종대사 찬유일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7호는 향후 산상사지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원감국사 현욱의 부도와 탑비가 고달사에 건립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달사지의 역사와 석조미술의 양식사적 정립을 위해서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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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Kodalsa temple site at Yeoju city was founded by the late of Shilla dynasty. It was estimated the late in the 8th century or early in the 9th century. The monk HyunWook at the time stayed. He took the side of Shilla’s royal court in terms of politics. The temple emerged to be one of the major temples in the early Goryeo period from the monk Chanyou’s actively effort, support of the king and royal family. Buddhism was recognised as state religion is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excavate the many times on the Kodalsa temple site, the temple was destroyed in the late of Joseon. Now, the most important thing of Kodalsa temple history is the Stone Stupa and Tabbi. A long time ago research which were built to a stupa order of the composition of the time, paired with a Stupa and a Tabbi still excess capacity, and the owner of the Stupa is unresolved. The reason the verge of stupa is many are similar in style. Recently, arthritic to excavate the sites is completed in around Stupa and verified that a Stupa and Tabbi for understanding on. Contributions and a new review on the Stupa, Tabbi, and Sansangsaji temple site write this paper is required. Currently, the hero of Stupa and Tabbi at Kodalsa temple site is variously estimated monk Hyunwook and Chanyou. The damaged turtle base of a stone monument was made when the late of Silla period, for the monk Hyunwook. It is clear. Monk Shimhee, disciple of monk Hyunwook, opened the Bongrimsanmun with the foundation of the namesake temple. The temple took over the religious heritage and political stance of the Kodalsa temple. Monk Chanyou, Shimhee’s disciple, accepted the doctrine of the while declaring his allegiance to Goryeo dynasty. The number 7 of the treasure was built ahead of the number 4 of the national treasure from the style and form. Also, Heyjin-Tabbi resembles the staff of national treasure No. 4 on the carved method and style. All points of view, the hero of the national treasure No. 4 is the monk Chanyou. Treasure No. 7 is next on the scrutiny of Sansangsaji temple site is be realized if can track the specific aspects will be correlated. The Kodalsa temple site of stone art and history of the private arrangement form for future sustainable research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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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odalsa temple site at Yeoju city was founded by the late of Shilla dynasty. It was estimated the late in the 8th century or early in the 9th century. The monk HyunWook at the time stayed. He took the side of Shilla’s royal court in terms of pol...

      The Kodalsa temple site at Yeoju city was founded by the late of Shilla dynasty. It was estimated the late in the 8th century or early in the 9th century. The monk HyunWook at the time stayed. He took the side of Shilla’s royal court in terms of politics. The temple emerged to be one of the major temples in the early Goryeo period from the monk Chanyou’s actively effort, support of the king and royal family. Buddhism was recognised as state religion is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excavate the many times on the Kodalsa temple site, the temple was destroyed in the late of Joseon. Now, the most important thing of Kodalsa temple history is the Stone Stupa and Tabbi. A long time ago research which were built to a stupa order of the composition of the time, paired with a Stupa and a Tabbi still excess capacity, and the owner of the Stupa is unresolved. The reason the verge of stupa is many are similar in style. Recently, arthritic to excavate the sites is completed in around Stupa and verified that a Stupa and Tabbi for understanding on. Contributions and a new review on the Stupa, Tabbi, and Sansangsaji temple site write this paper is required. Currently, the hero of Stupa and Tabbi at Kodalsa temple site is variously estimated monk Hyunwook and Chanyou. The damaged turtle base of a stone monument was made when the late of Silla period, for the monk Hyunwook. It is clear. Monk Shimhee, disciple of monk Hyunwook, opened the Bongrimsanmun with the foundation of the namesake temple. The temple took over the religious heritage and political stance of the Kodalsa temple. Monk Chanyou, Shimhee’s disciple, accepted the doctrine of the while declaring his allegiance to Goryeo dynasty. The number 7 of the treasure was built ahead of the number 4 of the national treasure from the style and form. Also, Heyjin-Tabbi resembles the staff of national treasure No. 4 on the carved method and style. All points of view, the hero of the national treasure No. 4 is the monk Chanyou. Treasure No. 7 is next on the scrutiny of Sansangsaji temple site is be realized if can track the specific aspects will be correlated. The Kodalsa temple site of stone art and history of the private arrangement form for future sustainable research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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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기존의 연구 성과와 견해, 그리고 난점
      • Ⅲ. 浮屠와 塔碑의 造成 史實과 主人公
      • Ⅳ. 浮屠와 塔碑의 樣式과 主人公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기존의 연구 성과와 견해, 그리고 난점
      • Ⅲ. 浮屠와 塔碑의 造成 史實과 主人公
      • Ⅳ. 浮屠와 塔碑의 樣式과 主人公
      • Ⅴ. 맺음말
      • 국문초록
      • Abstract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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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續香山錄」, 虛靜集(法宗, 1670~1733년)(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복사본)"

      2 "「妙香山誌」, 雪巖集(秋鵬, 1651~1706년)(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복사본)"

      3 鄭永鎬, "李元淳敎授華甲紀念史學論叢" 교학사 1986

      4 "寧邊郡地圖"

      5 "寧邊誌"

      6 조선문화보존사, "조선의 절 안내" 북한 조선문화보존사 2003

      7 허흥식, "일제는 왜 묘향산보현사조사보고서를 숨겼을까? —묘향산 보현사를 마치며—" 고조선단군학회 19 : 401-411, 2008

      8 서신혜, "오천년 역사 묘향산에 오르다" 평단문화사 2006

      9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10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02 - 평안북도 상 -" 양사재 2011

      1 "「續香山錄」, 虛靜集(法宗, 1670~1733년)(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복사본)"

      2 "「妙香山誌」, 雪巖集(秋鵬, 1651~1706년)(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복사본)"

      3 鄭永鎬, "李元淳敎授華甲紀念史學論叢" 교학사 1986

      4 "寧邊郡地圖"

      5 "寧邊誌"

      6 조선문화보존사, "조선의 절 안내" 북한 조선문화보존사 2003

      7 허흥식, "일제는 왜 묘향산보현사조사보고서를 숨겼을까? —묘향산 보현사를 마치며—" 고조선단군학회 19 : 401-411, 2008

      8 서신혜, "오천년 역사 묘향산에 오르다" 평단문화사 2006

      9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10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02 - 평안북도 상 -" 양사재 2011

      11 대한불교진흥원, "북한의 사찰"

      12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 Ⅳ"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13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북한의 건축문화재"

      14 사찰문화연구원, "북한사찰연구" 한국불교종단협의회 1993

      15 鄭泰爀, "북한 6" 북한연구소 1980

      16 리철, "문화유산 애호가들의 벗" 북한 조선문화보존사 2005

      17 최형민, "묘향산과 보현사" 북한 국가관광총국 관광선전사 2002

      18 강병희, "묘향산 용주봉의 진신사리 탑을 통해 본 球形 浮屠와 사리구" 불교미술사학회 15 : 127-152, 2013

      19 許興植, "고려의 문화전통과 사회사상" 집문당 2004

      20 김창현, "고려 서북면의 사원과 불교신앙-묘향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49) : 141-188, 2010

      21 許興植, "韓國金石全文 中世 上" 亞細亞文化社 1984

      22 康炳喜, "韓國의 多角多層 石塔"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1996

      23 高裕燮, "韓國塔婆의 硏究 各論草稿, 高裕燮 遺著 其三"

      24 黃壽永, "韓國佛塔100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2

      25 "關西日記"

      26 "芝山集 第5卷" 雜著(曺好益)

      27 康炳喜, "興天寺 舍利殿과 石塔에 관한 연구" 한국불교미술사학회 (19) : 237-269, 2002

      28 嚴基杓, "石造浮屠에 대한 名稱과 用例 考察" 단국사학회 37 : 2005

      29 엄기표, "益山 深谷寺 7層石塔의 建立 時期와 美術史的 意義" 전북사학회 (45) : 461-499, 2014

      30 "淸虛集"

      31 劉燕庭, "海東金石苑 上" 亞細亞文化社 1976

      32 朝鮮總督府, "朝鮮金石總覽 下" 亞細亞文化社 1976

      33 嚴基杓, "朝鮮時代의 塔婆" 檀國大學校 25 : 2010

      34 朝鮮總督府, "朝鮮寺刹史料 下卷" 도서출판 문현 2010

      35 朝鮮總督府, "朝鮮古蹟圖譜 6"

      36 許興植, "普賢寺古今事蹟과 妙香異蹟의 史料價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

      37 "新增東國輿地勝覽"

      38 鄭永鎬, "文化史學 創刊號" 韓國文化史硏究會 1994

      39 許興植, "延世大所藏 妙香山資料의 價値"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 : 2001

      40 "平安道寧邊妙香山普賢寺完文"

      41 許興植, "姜侯晉의 생애와 저술" 書誌學會 24 : 2000

      42 "妙香異蹟"

      43 "妙香山普賢寺之記"

      44 "妙香山小記"

      45 天沼俊一, "妙香山 普賢寺 - 普賢寺 8各 13層 石塔" 15 : 1931

      46 仲摩照久, "地理風俗 下" 新光社 1930

      47 "四溟堂大師集"

      48 許興植, "名山과 大刹과 神堂의 의존과 갈등 - 妙香山과 普賢寺와 檀君窟의 사례 -" 위덕대학교 박물관 (창간) : 2001

      49 "同治十一年四月日寧邊府地圖"

      50 高裕燮, "又玄 高裕燮 全集 4 - 朝鮮 塔婆의 硏究 下 各論篇" 열화당 2007

      51 韓國佛敎硏究院, "北韓의 寺刹 - 韓國의 寺刹 17 -" 一志社 1986

      52 국립문화재연구소, "北韓文化財解說集Ⅰ - 石造物 篇 -" 1997

      53 齋藤 忠, "北朝鮮考古學の新發見" 雄山閣出版株式會社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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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2-11 학회명변경 영문명 : Dongak Art History -> Association of Dongak Art History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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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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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71 0.8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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