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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근대 유교 계열의 민족주의 서사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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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657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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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연구 제안자(필자)는 1905~1920년간의 유교 계열 민족주의의 핵심 양상들을 다음과 같이 검토할 것이다.

      첫째, 위정척사파의 이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정통 유림들이 의병전쟁 실패 후 복벽론을 경유하여 근대적 민족의식을 형성해 간 흐름을 사상적으로 검토한 후, 그 서사 구조를 분석할 것이다. 1905년 이후 국망에 이르는 기간, 위정척사파를 계승한 정통 유림의 대결 의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들은 「맹자」에서 기원한 “의를 위해 생을 버리는(舍生取義)” 종교적 보편주의적 서사를 발전시켰다. 국망 이후, 이러한 의식은 복벽론으로 발전했다가 1919년 ‘파리장서 사건’을 통해 근대적 민족주의 이념과 결합하였다(조동걸, 1993: 173). 이러한 사상적인 변화 과정에서 핵심은 바로 유교의 보편주의적 서사 장치들을 민족주의 서사와 결합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둘째, 개신 유교 계열의 학자들의 민족주의 사상과 서사구조를 분석할 것이다. 유교개신론 계열의 민족주의는 본래 애국계몽운동의 틀에서 유교의 변화를 통한 자강을 강조했다가 국망 이후 민족주의의 다양한 흐름에 통합되어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유교와 민족을 결합시킨 서사 장치들은 향후 민족운동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대표한 박은식의 경우, 1900년의 “학규신론”과 1909년의 “유교구신론”에서 유교의 대동사상을 기초로 본래 유교의 민본성과 근대적 계몽의 필요성을 조화시켰는데, 국망 이후에는 친일 유림과 일제에 맞서 개인 수신과 도덕성에 치중한 전통적 서사를 포기하고 대신 민족을 역사 주체로 설정하여 그 속에서 유교의 이상이 수용되게끔 하는 서사를 발전시켰다.

      셋째, 이러한 서사 분석에 머물지 않고, 서사의 변화 양상에 미치는 당대의 경쟁 담론(일제의 동화주의 이데올로기)과의 관계(김경일, 2003: 353) 및 그 대응의 구조적 조건을 검토할 것이다. 서사적 설명의 틀은 한번 성립하면 사회경제적 변화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재현이 실재의 양상에 대한 표현인 한, 서사적 설명의 논리도 사상의 변화, 경쟁하는 다른 설명틀과의 관계, 그리고 정치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특정한 대응 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는 유교 계열 민족주의 서사의 발전 과정에 미친 경쟁 서사로서의 동화주의와 20세기 초반의 사회 변화를 분석하여, 그 중 어떤 요인이 특정하게 유교계가 전통적 복벽론을 극복하고 민족 주체의 서사를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를 해명할 것이다. 이는 서사 분석의 설득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 연구의 목적에 따라 순서로는 사회구조 분석이 서사 분석보다 선행할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유교 계열 민족주의의 두 흐름에서 유교적 서사를 어떻게 전유하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가) 복벽적 민족주의의 역사관 전유
      - 복벽적 민족주의 서사의 구성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교양에 해당하는 의리관과 역사관을 기본으로 하되, 한국 문화사의 오랜 전통에서 왕조에 대한 충성 이야기 구조와 잇닿아 있게 된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 복벽적 민족주의에서 유교와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해, 이들이 중화 중심의 문명/야만 코드에서 왕조와 군왕에 대한 충성 중심의 코드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전통적인 유교적 서사의 틀 안에서 그 구성 요소들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바꿔 갖는 전유(appropriation)의 방식을 적절히 활용했다.
      (나) 유교개신론의 2차 전유
      - 유교개신론은 유교 가치의 적극적 재해석을 통해 유교와 근대의 관념이 조화로울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신축성은 국망 전후에 타종교를 포함한 범유교계열이 자연스럽게 전통과 근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관념을 제공하는 데 기여했다. 박은식을 비롯한 민족주의적 유교개신론자들은 오히려 과거 정통 유림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서사를 받아들인다. 위정척사적 대결 의식을 바탕으로, 박은식은 성리학의 리와 기의 구분과 구조상 같은 혼(魂)과 백(魄)의 이항대립 코드를 통해, 민족의 정신 영역인 국혼(國魂)을 강조한다. 혼과 백이 모두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서로에 의존하지만,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혼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박은식은 병탄 이전의 근대적 문화와 실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자세 대신 일제와의 대결 의식과 무력 항쟁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와 차이는 서사 분석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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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제안자(필자)는 1905~1920년간의 유교 계열 민족주의의 핵심 양상들을 다음과 같이 검토할 것이다. 첫째, 위정척사파의 이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정통 유림들이 의병전쟁 실패 후 복벽...

      연구 제안자(필자)는 1905~1920년간의 유교 계열 민족주의의 핵심 양상들을 다음과 같이 검토할 것이다.

      첫째, 위정척사파의 이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정통 유림들이 의병전쟁 실패 후 복벽론을 경유하여 근대적 민족의식을 형성해 간 흐름을 사상적으로 검토한 후, 그 서사 구조를 분석할 것이다. 1905년 이후 국망에 이르는 기간, 위정척사파를 계승한 정통 유림의 대결 의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들은 「맹자」에서 기원한 “의를 위해 생을 버리는(舍生取義)” 종교적 보편주의적 서사를 발전시켰다. 국망 이후, 이러한 의식은 복벽론으로 발전했다가 1919년 ‘파리장서 사건’을 통해 근대적 민족주의 이념과 결합하였다(조동걸, 1993: 173). 이러한 사상적인 변화 과정에서 핵심은 바로 유교의 보편주의적 서사 장치들을 민족주의 서사와 결합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둘째, 개신 유교 계열의 학자들의 민족주의 사상과 서사구조를 분석할 것이다. 유교개신론 계열의 민족주의는 본래 애국계몽운동의 틀에서 유교의 변화를 통한 자강을 강조했다가 국망 이후 민족주의의 다양한 흐름에 통합되어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유교와 민족을 결합시킨 서사 장치들은 향후 민족운동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대표한 박은식의 경우, 1900년의 “학규신론”과 1909년의 “유교구신론”에서 유교의 대동사상을 기초로 본래 유교의 민본성과 근대적 계몽의 필요성을 조화시켰는데, 국망 이후에는 친일 유림과 일제에 맞서 개인 수신과 도덕성에 치중한 전통적 서사를 포기하고 대신 민족을 역사 주체로 설정하여 그 속에서 유교의 이상이 수용되게끔 하는 서사를 발전시켰다.

      셋째, 이러한 서사 분석에 머물지 않고, 서사의 변화 양상에 미치는 당대의 경쟁 담론(일제의 동화주의 이데올로기)과의 관계(김경일, 2003: 353) 및 그 대응의 구조적 조건을 검토할 것이다. 서사적 설명의 틀은 한번 성립하면 사회경제적 변화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재현이 실재의 양상에 대한 표현인 한, 서사적 설명의 논리도 사상의 변화, 경쟁하는 다른 설명틀과의 관계, 그리고 정치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특정한 대응 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는 유교 계열 민족주의 서사의 발전 과정에 미친 경쟁 서사로서의 동화주의와 20세기 초반의 사회 변화를 분석하여, 그 중 어떤 요인이 특정하게 유교계가 전통적 복벽론을 극복하고 민족 주체의 서사를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를 해명할 것이다. 이는 서사 분석의 설득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 연구의 목적에 따라 순서로는 사회구조 분석이 서사 분석보다 선행할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유교 계열 민족주의의 두 흐름에서 유교적 서사를 어떻게 전유하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가) 복벽적 민족주의의 역사관 전유
      - 복벽적 민족주의 서사의 구성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교양에 해당하는 의리관과 역사관을 기본으로 하되, 한국 문화사의 오랜 전통에서 왕조에 대한 충성 이야기 구조와 잇닿아 있게 된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 복벽적 민족주의에서 유교와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해, 이들이 중화 중심의 문명/야만 코드에서 왕조와 군왕에 대한 충성 중심의 코드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전통적인 유교적 서사의 틀 안에서 그 구성 요소들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바꿔 갖는 전유(appropriation)의 방식을 적절히 활용했다.
      (나) 유교개신론의 2차 전유
      - 유교개신론은 유교 가치의 적극적 재해석을 통해 유교와 근대의 관념이 조화로울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신축성은 국망 전후에 타종교를 포함한 범유교계열이 자연스럽게 전통과 근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관념을 제공하는 데 기여했다. 박은식을 비롯한 민족주의적 유교개신론자들은 오히려 과거 정통 유림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서사를 받아들인다. 위정척사적 대결 의식을 바탕으로, 박은식은 성리학의 리와 기의 구분과 구조상 같은 혼(魂)과 백(魄)의 이항대립 코드를 통해, 민족의 정신 영역인 국혼(國魂)을 강조한다. 혼과 백이 모두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서로에 의존하지만,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혼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박은식은 병탄 이전의 근대적 문화와 실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자세 대신 일제와의 대결 의식과 무력 항쟁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와 차이는 서사 분석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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