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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任實縣 守令의 출신성분과 在任實態 = The Origins and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Hyeon during Joseon - With a focus on Imsilhyeonseonsaen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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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글은 『任實縣先生案』을 중심으로 임실 수령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를 살펴본 논문이다. 이 자료에는 17~20세기 초반(1909년)까지 총 179명의 수령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임실 수령은 비록 6품 蔭職이 부임하는 자리였으나 다양한 전력을 지닌 사람들이 수령으로 부임하였다. 이들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원래 가지고 있었던 관직이나 품계보다 낮은 임실 수령직에 부임하고 있었다. 이는 관인층의 확대, 外官에 대한 선호 현상 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실 수령의 평균 재임 기간은 25개월이었다. 이러한 재임기간은 이미 연구가 진행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 각 시기별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16세기가 가장 비중이 높으며, 18 · 19세기는 엇비슷했다. 수령의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분석한 수령 가운데 1/4에 불과하며, 그 중 다수도 16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부평이나 단양이 19세기에 와서 수령의 재임기간이 짧아지는 것과는 반대되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임실 수령은 어떤 이유로 교체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교체사유를 그 성격에 따라 5종류로 분류하여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파직이 179명 가운데 78명으로 전체의 43.6%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자의에 의한 사직과 다른 관직으로의 移拜가 각각 20.2%와 24.6%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만과 체직은 그 비중이 매우 미미하였다. 둘째, 시기별 교체 사유를 살펴보면, 파직은 16세기와 17세기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19세기에 오면 6.4%로 그 비중이 아주 낮아진다. 반면, 이배의 경우는 19세기에 그 비중이 54.5%로 가장 높아 파직의 경우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두 가지의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수령의 재임기간이 만기를 채우지 않는 것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세기에 수령의 재임기간이 짧아지는 것이 전체 군현에 걸친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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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任實縣先生案』을 중심으로 임실 수령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를 살펴본 논문이다. 이 자료에는 17~20세기 초반(1909년)까지 총 179명의 수령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임실 수령은 비...

    본 글은 『任實縣先生案』을 중심으로 임실 수령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를 살펴본 논문이다. 이 자료에는 17~20세기 초반(1909년)까지 총 179명의 수령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임실 수령은 비록 6품 蔭職이 부임하는 자리였으나 다양한 전력을 지닌 사람들이 수령으로 부임하였다. 이들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원래 가지고 있었던 관직이나 품계보다 낮은 임실 수령직에 부임하고 있었다. 이는 관인층의 확대, 外官에 대한 선호 현상 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실 수령의 평균 재임 기간은 25개월이었다. 이러한 재임기간은 이미 연구가 진행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 각 시기별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16세기가 가장 비중이 높으며, 18 · 19세기는 엇비슷했다. 수령의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분석한 수령 가운데 1/4에 불과하며, 그 중 다수도 16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부평이나 단양이 19세기에 와서 수령의 재임기간이 짧아지는 것과는 반대되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임실 수령은 어떤 이유로 교체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교체사유를 그 성격에 따라 5종류로 분류하여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파직이 179명 가운데 78명으로 전체의 43.6%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자의에 의한 사직과 다른 관직으로의 移拜가 각각 20.2%와 24.6%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만과 체직은 그 비중이 매우 미미하였다. 둘째, 시기별 교체 사유를 살펴보면, 파직은 16세기와 17세기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19세기에 오면 6.4%로 그 비중이 아주 낮아진다. 반면, 이배의 경우는 19세기에 그 비중이 54.5%로 가장 높아 파직의 경우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두 가지의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수령의 재임기간이 만기를 채우지 않는 것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세기에 수령의 재임기간이 짧아지는 것이 전체 군현에 걸친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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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origins and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with a focus on Imsilhyeonseonsaengan, which offers a list of total 179 Suryeongs between the 17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1909).
    The Suryeong position of Imsil was originally a Grade 6 Eumjik, but individuals of various records were appointed to the position. As it approached the end of Joseon, individuals were commissioned to the position that was lower than their original positions or ranks. This phenomenon was attributed to the expansion of the Gwanin class and preference for Oigwan. The average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were 25 months, which was relatively longer than that of other areas on which research was conducted. As for the percentage of service years according to the periods, the cases of less than a year in office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16th century and were similar between the 18th and 19th century. Of all the cases analyzed in the study, only a quarter served in the office for less than a year with most of them concentrated in the 16th century, which was an opposite trend to the increasingly shorter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Bupyeong and Danyang in the 19th century.
    The study then examined the reasons for the replacement of Suryeongs in Imsil. These reasons were classified into five according to their nature, and the findings were as follows: first, 78(43.6%) of 179 were dismissed from the position with 20.2% and 24.6% resigning voluntarily and being transferred to a different office, respectively. The cases of Gwaman and Chejik were very rare. Second, the study examined the reasons of their replacement by the period and found that dismissal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16th and 17th century and dropped to mere 6.4% in the 19th century and that transfer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at 54.5% in the 19th century contrary to dismissal.
    These analysis results confirmed two significant facts: one was that it was common throughout Joseon that Suryeongs did not fulfill their terms of office, and the other was that shorter terms of office in the 19th century were not general across all the guns and hyeons in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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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origins and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with a focus on Imsilhyeonseonsaengan, which offers a list of total 179 Suryeongs between the 17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1909). The Suryeong...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origins and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with a focus on Imsilhyeonseonsaengan, which offers a list of total 179 Suryeongs between the 17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1909).
    The Suryeong position of Imsil was originally a Grade 6 Eumjik, but individuals of various records were appointed to the position. As it approached the end of Joseon, individuals were commissioned to the position that was lower than their original positions or ranks. This phenomenon was attributed to the expansion of the Gwanin class and preference for Oigwan. The average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Imsil were 25 months, which was relatively longer than that of other areas on which research was conducted. As for the percentage of service years according to the periods, the cases of less than a year in office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16th century and were similar between the 18th and 19th century. Of all the cases analyzed in the study, only a quarter served in the office for less than a year with most of them concentrated in the 16th century, which was an opposite trend to the increasingly shorter service years of Suryeongs in Bupyeong and Danyang in the 19th century.
    The study then examined the reasons for the replacement of Suryeongs in Imsil. These reasons were classified into five according to their nature, and the findings were as follows: first, 78(43.6%) of 179 were dismissed from the position with 20.2% and 24.6% resigning voluntarily and being transferred to a different office, respectively. The cases of Gwaman and Chejik were very rare. Second, the study examined the reasons of their replacement by the period and found that dismissal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16th and 17th century and dropped to mere 6.4% in the 19th century and that transfer recorded the highest percentage at 54.5% in the 19th century contrary to dismissal.
    These analysis results confirmed two significant facts: one was that it was common throughout Joseon that Suryeongs did not fulfill their terms of office, and the other was that shorter terms of office in the 19th century were not general across all the guns and hyeons in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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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지역 특성 및 자료 해제
    • Ⅲ. 출신 성분과 품계
    • Ⅳ. 재임기간과 교체사유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지역 특성 및 자료 해제
    • Ⅲ. 출신 성분과 품계
    • Ⅳ. 재임기간과 교체사유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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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권기중, "조선후기 전라도 임실현 향리층의 존재양태 — <운수연방선생안(雲水掾房先生案)>을 중심으로 —" 동양고전학회 (72) : 157-184, 2018

    2 권기중, "조선후기 암행어사의 수령 평가-경기 암행어사 서계(書啓)를 중심으로-" 호서사학회 (87) : 159-188, 2018

    3 문용식, "조선후기 수령자비곡의 설치" 9 : 1999

    4 권기중, "조선후기 수령의 지방재정 운영과 公私 관념 ― 경상도 암행어사 서계를 중심으로 ―" 수선사학회 (48) : 195-215, 2014

    5 권기중, "조선후기 수령의 업무 능력과 부세 수취의 자율권 -조선후기 暗行御史 書啓를 중심으로-" 호서사학회 (67) : 225-252, 2013

    6 윤정애, "조선후기 수령대책과 그 인사실태" 17 : 1990

    7 구완회, "조선후기 軍役釐整의 方向과 守令" 1 : 1992

    8 김양수, "조선후기 忠淸監司와 淸州守令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 한국사연구회 (125) : 119-175, 2004

    9 전경목, "조선중기 수령의 관외 업무 -김현의 『만경일기』를 중심으로-" 9 : 2004

    10 한상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아카넷 2000

    1 권기중, "조선후기 전라도 임실현 향리층의 존재양태 — <운수연방선생안(雲水掾房先生案)>을 중심으로 —" 동양고전학회 (72) : 157-184, 2018

    2 권기중, "조선후기 암행어사의 수령 평가-경기 암행어사 서계(書啓)를 중심으로-" 호서사학회 (87) : 159-188, 2018

    3 문용식, "조선후기 수령자비곡의 설치" 9 : 1999

    4 권기중, "조선후기 수령의 지방재정 운영과 公私 관념 ― 경상도 암행어사 서계를 중심으로 ―" 수선사학회 (48) : 195-215, 2014

    5 권기중, "조선후기 수령의 업무 능력과 부세 수취의 자율권 -조선후기 暗行御史 書啓를 중심으로-" 호서사학회 (67) : 225-252, 2013

    6 윤정애, "조선후기 수령대책과 그 인사실태" 17 : 1990

    7 구완회, "조선후기 軍役釐整의 方向과 守令" 1 : 1992

    8 김양수, "조선후기 忠淸監司와 淸州守令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 한국사연구회 (125) : 119-175, 2004

    9 전경목, "조선중기 수령의 관외 업무 -김현의 『만경일기』를 중심으로-" 9 : 2004

    10 한상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아카넷 2000

    11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12 이성임, "조선시대 富平府使의 재임실태" 2 (2): 2003

    13 李成妊, "조선시대 仁川府使의임용실태" 인하대 4 : 2002

    14 김의환, "조선시대 丹陽郡守의 前歷과 在任 實態" 역사문화학회 14 (14): 115-150, 2011

    15 임용한, "조선 후기 수령 선정비의 분석 ―안성 · 죽산 · 과천의 사례를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26) : 163-195, 2007

    16 "雲水誌" 임실문화원 2012

    17 "輿地圖書"

    18 "續大典"

    19 "經國大典"

    20 이존희, "朝鮮時代 地方行政制度 硏究" 일지사 1990

    21 李源鈞, "朝鮮時代 地方官의 交遞에 관한 硏究" 동아대학교 대학원 1987

    22 李東熙, "朝鮮時代 全羅道의 監司·守令名單-全北編" 1995

    23 李東熙, "朝鮮時代 全羅道 扶安縣監의 任用實態" 6 : 1993

    24 구완회, "朝鮮後期의 收取行政과 守令의 ‘要譽’ :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까지를 중심으로" 14 : 1991

    25 이희권, "朝鮮後期 地方統治行政 硏究" 집문당 1999

    26 宋鍾復, "昌寧 縣監의 交遞와 在任에 關한 一考察" 17 : 2006

    27 안홍민, "日記 자료를 통해 본 16세기 후반 守令의 管外 활동 -江華都護府使 全舜弼의 사례 연구-" 한국학연구소 (23) : 239-269, 2010

    28 김성윤, "吳宖黙(1834∼?)을 통해서 본 수령 군현통치의 과정과 전략" 조선시대사학회 (53) : 83-140, 2010

    29 具玩會, "先生案을 통해 본 朝鮮後期의 守令" 4 : 1982

    30 "任實郡事例定錄"

    31 "任實邑誌"

    32 "任實縣先生案"

    33 具玩會, "世宗朝의 守令六期法" 11 : 1988

    34 "世宗實錄"

    35 고석규, "19세기 조선의 향촌사회 연구-지배와 저항의 구조" 서울대출판부 1998

    36 장동표, "19세기 말 咸安地方 財政運營에서의 鄕會와 逋欠" 68 : 1996

    37 李東熙, "19世紀 前半 守令의 任用實態" 11·12 : 1989

    38 송양섭, "1896년 智島郡 創設과 西南海 島嶼 支配構造의 再編 ―吳宖默의 『智島郡叢刷錄』을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26) : 197-24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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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2-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0-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6-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무악실학회 -> 역사실학회
    영문명 : Mooak Silhakhoe : The Historical Society Of Mooak Silhak -> Yeoksa Silhakhoe: The Historical Society of Yeoksa Sil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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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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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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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5 0.65 0.7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438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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