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고려왕조는 문벌귀족사회로서 신라와 조선의 사이에 위치하는 가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고려초기 왕권이 성장하지 못했으며 국왕은 문벌을 이루고 있는 귀족의 대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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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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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지금까지 고려왕조는 문벌귀족사회로서 신라와 조선의 사이에 위치하는 가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고려초기 왕권이 성장하지 못했으며 국왕은 문벌을 이루고 있는 귀족의 대표자...
지금까지 고려왕조는 문벌귀족사회로서 신라와 조선의 사이에 위치하는 가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고려초기 왕권이 성장하지 못했으며 국왕은 문벌을 이루고 있는 귀족의 대표자에 불과하다는 왕권의 미약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경향과는 거리가 있으며 제대로 된 성격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최근에 제기된 고려사회의 다원성과 통합성에 관한 논의를 살펴볼 때 고려사회의 성격에 관하여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은 고려사회의 성격에 관한 보다 활발한 논의를 위해 고려사회를 다원사회로 규정하고 그 구조를 다원성 위에 국왕 중심의 통합성이 주어진 사회로 보았다. 다원적 사상지형과 이중적 자아인식을 통해 형성된 지향성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다원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이러한 다원성은 해동천자의 위상을 갖는 왕권에 의해 통합되었다. 이러한 다원적 사회구조는 성리학이 수용되고 내면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적어도 15세기까지 유지되었다. 이 글을 통해 고려사회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가 활성화된다면 발전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s a noble aristocracy, the Goryeo Dynasty has been considered as a bridge between Silla and Joseon. However, as it is based on a premise that the royal authority was not growing in the early Goryeo Dynasty, and the kings were no more than the represe...
As a noble aristocracy, the Goryeo Dynasty has been considered as a bridge between Silla and Joseon. However, as it is based on a premise that the royal authority was not growing in the early Goryeo Dynasty, and the kings were no more than the representative of the nobility, it is far away from the recent research tendency, so that it cannot be regarded as a proper definition of its character. Therefore, viewing the recent discussions of pluralism and integrity of Goryeo society, there should be more discussions of the character of Goryeo society.
For more active discussions of the character of Goryeo society, this thesis defined the Goryeo society as a pluralistic society, and then regarded its structure as a society added with the king-centered integrity to the pluralism. The orientation that was formed through the pluralistic topography of thoughts and dual self-positioning was the energy to achieve the pluralistic society where different elements pursued the harmony and coexistence. This pluralism was integrated by the royal authority with the statue of Haedong-cheonja. This pluralistic social structure was maintained at least till the 15th century even in the process of accepting and internalizing Neo-Confucianism. If this thesis vitalizes productive discussions of Goryeo society, more developmental results could be obtained.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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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남부지역 조선군 지휘부의 갈등 양상과 대응방안(1593. 7~1597.7)
李睟光의 『芝峯類說』에 나타난 임진왜란 인식과 방어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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