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를 통해 이탈리아 경제사를 둘러싼 주요 해석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주된 쟁점은 기업과 국가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전통 해석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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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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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를 통해 이탈리아 경제사를 둘러싼 주요 해석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주된 쟁점은 기업과 국가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전통 해석에 따르면...
본 연구는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를 통해 이탈리아 경제사를 둘러싼 주요 해석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주된 쟁점은 기업과 국가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전통 해석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경제 발전은 전형적인 후발국 유형, 그러니까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산업화라는 테제로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명백히 밑으로부터의 자생적인 기업가적 역량(entrepreneurship)이 이탈리아에 부재했음을 암시하면서 이탈리아 기업들이 국가에 의존하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천편일률적인 부정적 이미지들을 양산했다.
그러나 최근의 수정주의적 연구들은 이탈리아 기업들이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보여준 자율적인 역량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최근의 기업사 일반의 연구 동향과도 부합한다. 실제로 아마토리(Franco Amatori)와 같은 많은 이탈리아의 기업사가들이 이탈리아의 특수성을 잊지 않으면서도 쉼페터(Joseph A. Schumpeter)의 "기업가"나 "혁신"의 개념, 혹은 챈들러(Alfred D. Chandler)의 "근대적 산업 기업(modern industrial enterprise)"의 패러다임을 빌려 이탈리아 기업사를 해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음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시사적이라 할 것이다. 요컨대 최근 연구들에서 강조점은 국가에서 기업 혹은 기업가적 역량으로 옮겨진 듯하다.
이러한 연구 경향을 염두에 두면서 본 논문은 피아트의 발전 사례를 통해 기업가적 역량과 국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본 논문이 고찰한 파시즘 지배기(1918-1943)에 피아트와 국가의 관계에는 밀월과 위기를 오가는 다양한 부침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피아트의 발전에서 국가는 상당히 큰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피아트와 파시즘 사이에는 결코 사소하게 볼 수 없는 심각한 대립과 갈등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여기서 파시즘과 국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피아트는 파시즘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경영의 자율성을 효과적으로 방어했고 이 점이 피아트의 주요한 성공 이유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피아트의 발전에서 국가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국가가 기업 활동을 제한했다는 논지를 입증하는 증거는 아니다.
이러한 결론은 필경 파시즘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비록 파시즘은 자신의 일관된 체제적/정치적 목표를 추구했지만, 국가를 운영한 주체로 기능한 한에서 결과적으로는 국가의 일반적 기능을 일정한 수준에서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 경제를 관리하는 국가의 일반적 기능을 파시즘 또한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파시즘의 정치 효과가 국가, 체제, 정부, 지방 행정 등 다양한 층위에서 매우 중층적이고 모순적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혁명(anthropological revolution)"를 부르짖은 파시즘의 전체주의 기획이 현실에서 일정한 한계를 노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본 기업사 연구는 이탈리아의 경제 발전을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전통 해석이 국가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면, 수정 해석은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면서 기업가적 역량을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가적 역량과 국가의 역할을 길항 관계로 보는, 다분히 허구적인 이분법이다. 피아트의 사례는, 회장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가 잘 보여 주었듯이, 기업이 국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활용하여 기업 발전을 꾀하는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기업가적 역량의 개념은 국가의 역할과 대비된다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기능을 전유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피아트의 발전에서 국가가 건설한 고속도로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나 미국 자동차 기업(포드)의 이탈리아 상륙을 저지한 전향적인 관세 정책이 없었다면, 발전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넬리는 그러한 인프라와 관세를 따내기 위해 국가에 끊임없는 요구 공세를 펼쳤다. 기업을 위한 보호의 구조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애써 얻어낸 것이다.
이렇게 기업가적 역량에 국가를 활용하는 기업가의 능력까지 포함된다면, 우리는 기업과 국가 사이에 부단한 갈등과 협상의 과정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요컨대 문제는 기업과 국가 중 어느 하나를 발전의 요인으로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그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정치, 사회, 문화의 다양한 요인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요인들을 올바르게 식별해낼 때에만 왜 어느 기업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다른 기업은 실패하는지에 대해 합당한 역사적 설명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