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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정국기 민족문화 재건 논의의 내용과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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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해방정국기의 최우선 과제는 자주적인 민족국가 건설과 민족문화의 재건이었다. 민족문화 재건을 위해서는 일제 식민잔재와 봉건적 잔재의 극복이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다.
    만일 식민잔재의 청산이 그 자체로서 최종목표였더라면, 민족문화의 재건은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세계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식민잔재 청산 논리에 도사리고 있는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한 걸음 나아가 민족문화가 세계문화 차원에서 재건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도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세계문화의 일원이 되는 관건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또 재건될 민족문화는 일부 계급 및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러기에 민족문화 재건운동이 국가적ㆍ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하여, 조직적ㆍ중장기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하였다.
    하지만 식민잔재 청산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냉전체제의 현실이 덮쳤다. 이성적인 접근을 통한 과거사 정리 작업은 불가능해졌고, 민족문화의 재건 또한 비전을 상실했다. 민족문화 재건운동 또한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민족문화 재건을 위한 논의와 노력이 결실 맺지 못한 한계는 분단체제의 고착과 맞물려서, 민족문화 재건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켰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라는 융합할 수 없는 세계관 속에서 우리 글과 말의 편차는 더욱 커졌고, 예술ㆍ문화 등 제방면에 있어서 이질화 또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민족문화 재건 논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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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정국기의 최우선 과제는 자주적인 민족국가 건설과 민족문화의 재건이었다. 민족문화 재건을 위해서는 일제 식민잔재와 봉건적 잔재의 극복이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다. 만일 식민잔...

    해방정국기의 최우선 과제는 자주적인 민족국가 건설과 민족문화의 재건이었다. 민족문화 재건을 위해서는 일제 식민잔재와 봉건적 잔재의 극복이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다.
    만일 식민잔재의 청산이 그 자체로서 최종목표였더라면, 민족문화의 재건은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세계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식민잔재 청산 논리에 도사리고 있는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한 걸음 나아가 민족문화가 세계문화 차원에서 재건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도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세계문화의 일원이 되는 관건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또 재건될 민족문화는 일부 계급 및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러기에 민족문화 재건운동이 국가적ㆍ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하여, 조직적ㆍ중장기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하였다.
    하지만 식민잔재 청산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냉전체제의 현실이 덮쳤다. 이성적인 접근을 통한 과거사 정리 작업은 불가능해졌고, 민족문화의 재건 또한 비전을 상실했다. 민족문화 재건운동 또한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민족문화 재건을 위한 논의와 노력이 결실 맺지 못한 한계는 분단체제의 고착과 맞물려서, 민족문화 재건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켰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라는 융합할 수 없는 세계관 속에서 우리 글과 말의 편차는 더욱 커졌고, 예술ㆍ문화 등 제방면에 있어서 이질화 또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민족문화 재건 논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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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t was the founding of the independent nation and the re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that were the most urgent task in the years of US military governance. It was required ahead of all for rehabilitation of national culture, to overcome vestiges of Japanese colonization and of feudalism.
    The Re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would have been the exclusive and extremely nationalistic, If the final object was to liquidate the vestiges of colonization. It was, however, expected to surmount cliquism and ultra nationalism, harbored in the theory of elimination of colonial remnants, through comprehending world culture on the ground of rediscovering the value of tradition.
    Furthermore, It was emphasized to secure international position by restoring national culture to be world culture. Cultivating ability for the flexible international political environment must have been recognized with great importance, to be a portion of world culture.
    Also, national culture, which would be revived, was perceived not to be solely possessed to some classes, but be public and open. Accordingly, movement for restoration of the national culture was hoped to be pushed on methodically with national? social accord, in the long term.
    By the way the founding of the independent nation footing stroke the realities even before the end of the clearance of colonization. It came to be impossible to do liquidation of bygones in rational approach, and brought about the lost of vision for reviving national culture besides.
    That means, the movement for restoration of national culture could not be free from the theory of power in international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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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was the founding of the independent nation and the re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that were the most urgent task in the years of US military governance. It was required ahead of all for rehabilitation of national culture, to overcome vestiges o...

    It was the founding of the independent nation and the re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that were the most urgent task in the years of US military governance. It was required ahead of all for rehabilitation of national culture, to overcome vestiges of Japanese colonization and of feudalism.
    The Re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would have been the exclusive and extremely nationalistic, If the final object was to liquidate the vestiges of colonization. It was, however, expected to surmount cliquism and ultra nationalism, harbored in the theory of elimination of colonial remnants, through comprehending world culture on the ground of rediscovering the value of tradition.
    Furthermore, It was emphasized to secure international position by restoring national culture to be world culture. Cultivating ability for the flexible international political environment must have been recognized with great importance, to be a portion of world culture.
    Also, national culture, which would be revived, was perceived not to be solely possessed to some classes, but be public and open. Accordingly, movement for restoration of the national culture was hoped to be pushed on methodically with national? social accord, in the long term.
    By the way the founding of the independent nation footing stroke the realities even before the end of the clearance of colonization. It came to be impossible to do liquidation of bygones in rational approach, and brought about the lost of vision for reviving national culture besides.
    That means, the movement for restoration of national culture could not be free from the theory of power in international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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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민족문화 재건과 민족국가 건설
    • Ⅱ. 민족문화 재건 논의의 내용
    • Ⅲ. 민족문화 재건의 방향과 실천
    • 요약
    • 머리말
    • Ⅰ. 민족문화 재건과 민족국가 건설
    • Ⅱ. 민족문화 재건 논의의 내용
    • Ⅲ. 민족문화 재건의 방향과 실천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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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권영민, "해방직후의 민족문학운동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2 김윤식, "해방공간의 문학운동과 문학의 현실인식" 한울 1992

    3 이우용, "해방공간의 문학연구 ⅠⅡ" 태학사 1990

    4 김남식, "한국현대사 자료총서" 돌베개 1-15, 1986

    5 이우성, "한국의 역사인식 하" 창작과비평사 1979

    6 이지원, "한국 근대 문화사상사 연구" 혜안 2007

    7 김 구, "白凡逸志" 나남출판 2002

    8 이기백, "民族과 歷史" 일조각 1983

    9 손진태, "朝鮮民族文化의 硏究" 을유문화사 1948

    10 손진태, "朝鮮民族史槪論" 을유문화사 1948

    1 권영민, "해방직후의 민족문학운동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2 김윤식, "해방공간의 문학운동과 문학의 현실인식" 한울 1992

    3 이우용, "해방공간의 문학연구 ⅠⅡ" 태학사 1990

    4 김남식, "한국현대사 자료총서" 돌베개 1-15, 1986

    5 이우성, "한국의 역사인식 하" 창작과비평사 1979

    6 이지원, "한국 근대 문화사상사 연구" 혜안 2007

    7 김 구, "白凡逸志" 나남출판 2002

    8 이기백, "民族과 歷史" 일조각 1983

    9 손진태, "朝鮮民族文化의 硏究" 을유문화사 1948

    10 손진태, "朝鮮民族史槪論" 을유문화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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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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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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