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정동행성’이 공식적으로 발족된 1283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이 현저히 변화한 1299년의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1299년은 행성관이 단순히 ‘증치’된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평장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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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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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먼저 ‘정동행성’이 공식적으로 발족된 1283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이 현저히 변화한 1299년의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1299년은 행성관이 단순히 ‘증치’된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평장정사...
먼저 ‘정동행성’이 공식적으로 발족된 1283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이 현저히 변화한 1299년의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1299년은 행성관이 단순히 ‘증치’된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평장정사가 설치됨으로써 정동행성이 ‘실질기관화’한 시점이자, 정동행성의 고려에 대한 시책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시점에 해당하였다.
다음으로, 활리길사의 개변을 노비제 부분 및 여타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활리길사의 정치적 입장 및 1291년 이래 원정부가 견지한 국정지향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당시 원제국정부는 ‘至元新格’이라는 신법령을 반포하며 특정 방법론을 통한 정치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활리길사는 그러한 원내 정치개혁론을 고려의 상황에 교과서적으로 적용하려 한 것으로, 그를 무리하게 시도하는 과정에서 원정부가 오래 전부터 보장해 오던 고려의 국속까지도 무리하게 변경하게 된 결과, 잡음 및 외교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정동성관 활리길사의 고려제도 개변시도가 당시 고려-원 관계사에서 점하는 의미를 짚어보았다. 특히 활리길사의 개변시도 중 일부분은 고려정부에 의해 거부되고, 일부분은 실제로 관철되었다는 점을 통해, 종래 원이 고려의 풍속과 구래 전통을 인정하기만 하다가, 이 시기 들어 국속 인정의 방침은 유지하되 동시에 일정한 정치개혁 또한 강요하는 새로운 형태의 ‘개입’을 보이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