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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유교 지식인의 도시 이주와 가족사의 새로운 전개 - 경북 비안의 향반 출신 해악 김광진 가족의 사례 연구 - = The Migration of Confucian Intellectual and New Evolution of the Family History in Colonial Period - A Case Study of Hae­ak(海岳) Kim Kwang­Jin(金光鎭) and his Family from Hyangban(鄕班) of Bian, North Gyeongsang Prov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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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Confucian intellectual Hae­ak(海岳) Kim Kwang­Jin(金光鎭) and his family’s migration to city and their survival strategy accordingly. To do so, the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Kim Kwang­Jin’s migration to city after leaving his hometown Bian(比安).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abhorred cities that were secular and pursued profit. However, Kim Kwang­Jin accepted a new modern trend at a modern educational institution in Daegu(大邱) in 1906 and in this condition decided to migrate to a city for an independent life and the education of his sons.
    After migrating to the city, Kim Kwang­Jin’s sons suffered from an extreme mental stress due to employment and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However, their wish to be accepted into a good school and find a decent job during the colonial period was difficult to be achieved in reality. Also, the conflict among the family members deepened as they faced an economic hardship over the marriage of second son. Although the migration to city was merely one incident, the family members did not have the same, single experience as a result. In addition, they had different stances according to gender, generation, and economic interests.
    Kim Kwang­Jin’s solution toward such conflict was ‘yang­jan­joo­eui(兩全主義),’ which was to completely admit the traditional thought of old generation and the modern thought of new generation. Through this, the paper could verify that the migration to city, education, employment, love and marriage, and economic problems were all in a complicated, intertwined relationship. Therefore, this paper is significant because it reproduced the various perspectives and stances within a family as multi-layered, intersecting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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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Confucian intellectual Hae­ak(海岳) Kim Kwang­Jin(金光鎭) and his family’s migration to city and their survival strategy accordingly. To do so, the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Kim Kwa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Confucian intellectual Hae­ak(海岳) Kim Kwang­Jin(金光鎭) and his family’s migration to city and their survival strategy accordingly. To do so, the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Kim Kwang­Jin’s migration to city after leaving his hometown Bian(比安).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abhorred cities that were secular and pursued profit. However, Kim Kwang­Jin accepted a new modern trend at a modern educational institution in Daegu(大邱) in 1906 and in this condition decided to migrate to a city for an independent life and the education of his sons.
    After migrating to the city, Kim Kwang­Jin’s sons suffered from an extreme mental stress due to employment and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However, their wish to be accepted into a good school and find a decent job during the colonial period was difficult to be achieved in reality. Also, the conflict among the family members deepened as they faced an economic hardship over the marriage of second son. Although the migration to city was merely one incident, the family members did not have the same, single experience as a result. In addition, they had different stances according to gender, generation, and economic interests.
    Kim Kwang­Jin’s solution toward such conflict was ‘yang­jan­joo­eui(兩全主義),’ which was to completely admit the traditional thought of old generation and the modern thought of new generation. Through this, the paper could verify that the migration to city, education, employment, love and marriage, and economic problems were all in a complicated, intertwined relationship. Therefore, this paper is significant because it reproduced the various perspectives and stances within a family as multi-layered, intersecting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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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식민지기 도시로 이주한 향반 출신 유교 지식인 海岳 金光鎭(1885~1940)과 그의 가족이 도시 이주 후 직면하게 된 진학 및 구직 문제와 결혼 문제로 인한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타협 방향을 살펴 본 것이다. 이를 통해 1920년대 도시의 성장, 그 속에서 탄생한 도시인들의 곤경이 갖는 역설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식민지기 거대 변동의 지표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1924년 김광진이 고향 비안에서 대구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은 이념적으로는 1920년대 자립과 직업을 중시하는 청년 운동의 이상이 작용했으며, 현실적으로는 아들들의 교육과 취업 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김광진과 그의 가족들의 삶은 큰 전환을 맞이했으며, 이것은 근대 도시와 도시인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도시 이주 후 김광진과 그의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했으나, 진학과 구직, 혼인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과 갈등을 겪게 된다. 진학과 구직에서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것은 김광진의 바람이 상당 부분 성취된 것이었다. 단, 첫째 아들은 끝까지 김광진과 갈등을 빚었고, 구직 활동에 실패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김광진은 도시를 정보와 기회는 많지만 마음을 유혹하는 이중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이 성공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충분하지는 않지만 남겨진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성 가족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근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도시 이주로 인해 가사 노동이 증가하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신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둘째 며느리는 그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도, 자식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시어머니 장씨는 둘째 며느리의 처지에 공감했고, 무엇보다 가사 도움을 위해 그녀를 지지했다. 첫째 아들 내외는 신식 결혼을 주장하는 둘째 아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이는 결혼 문제가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뿐만 아니라 젠더, 경제적 이해관계와도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가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것에 대해 김광진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이를 중재하고자 했다. 人情을 중시하는 구세대의 사고와 개인의 욕망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사고, 이 兩者를 완전히 인정하자는 ‘兩全主義’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은 모순적인 현실을 공존시키려는 절충책이었지만, 김영소가 신식 결혼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부친이 사망할 때까지 이것을 미루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전통과 근대의 사고를 통합의 관계로 전환하려는 김광진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이를 발전시켜 ‘情欲兩養論’과 ‘鼎足論’으로 자신의 사유를 확장시켰다.
    이렇듯 식민지기에 근대 교육의 빠른 수용과 대비되어 근대 결혼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빚어진 미묘한 엇박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심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도시 이주와 그에 따른 일상의 경험들이 철학적 사유로 확장되는 과정을 밝히는 심화 작업이 요구된다. 아울러 김광진과 같은 유교 지식인들의 ‘도시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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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식민지기 도시로 이주한 향반 출신 유교 지식인 海岳 金光鎭(1885~1940)과 그의 가족이 도시 이주 후 직면하게 된 진학 및 구직 문제와 결혼 문제로 인한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타협...

    이 연구는 식민지기 도시로 이주한 향반 출신 유교 지식인 海岳 金光鎭(1885~1940)과 그의 가족이 도시 이주 후 직면하게 된 진학 및 구직 문제와 결혼 문제로 인한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타협 방향을 살펴 본 것이다. 이를 통해 1920년대 도시의 성장, 그 속에서 탄생한 도시인들의 곤경이 갖는 역설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식민지기 거대 변동의 지표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1924년 김광진이 고향 비안에서 대구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은 이념적으로는 1920년대 자립과 직업을 중시하는 청년 운동의 이상이 작용했으며, 현실적으로는 아들들의 교육과 취업 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김광진과 그의 가족들의 삶은 큰 전환을 맞이했으며, 이것은 근대 도시와 도시인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도시 이주 후 김광진과 그의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했으나, 진학과 구직, 혼인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과 갈등을 겪게 된다. 진학과 구직에서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것은 김광진의 바람이 상당 부분 성취된 것이었다. 단, 첫째 아들은 끝까지 김광진과 갈등을 빚었고, 구직 활동에 실패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김광진은 도시를 정보와 기회는 많지만 마음을 유혹하는 이중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이 성공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충분하지는 않지만 남겨진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성 가족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근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도시 이주로 인해 가사 노동이 증가하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신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둘째 며느리는 그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도, 자식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시어머니 장씨는 둘째 며느리의 처지에 공감했고, 무엇보다 가사 도움을 위해 그녀를 지지했다. 첫째 아들 내외는 신식 결혼을 주장하는 둘째 아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이는 결혼 문제가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뿐만 아니라 젠더, 경제적 이해관계와도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가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것에 대해 김광진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이를 중재하고자 했다. 人情을 중시하는 구세대의 사고와 개인의 욕망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사고, 이 兩者를 완전히 인정하자는 ‘兩全主義’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은 모순적인 현실을 공존시키려는 절충책이었지만, 김영소가 신식 결혼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부친이 사망할 때까지 이것을 미루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전통과 근대의 사고를 통합의 관계로 전환하려는 김광진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이를 발전시켜 ‘情欲兩養論’과 ‘鼎足論’으로 자신의 사유를 확장시켰다.
    이렇듯 식민지기에 근대 교육의 빠른 수용과 대비되어 근대 결혼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빚어진 미묘한 엇박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심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도시 이주와 그에 따른 일상의 경험들이 철학적 사유로 확장되는 과정을 밝히는 심화 작업이 요구된다. 아울러 김광진과 같은 유교 지식인들의 ‘도시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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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E.H.キンモンス, "立身出世の社会史" 玉川大学出版部 1995

    2 박지현, "한말 일제시대 유교 지식인의 지적 곤경과 근대 지식의 모색 -海岳 金光鎭의 『海岳文集』 편찬과 간행을 중심으로-" 한국고전번역원 44 : 249-276, 2014

    3 박지현, "한말 식민지기 유교 지식인 김광진의 근대 지식의 탐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2015

    4 박지현, "한말 식민지기 유교 지식인 김광진의 가계와 일상 그리고 의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2015

    5 박찬승, "한국근대 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2

    6 이타가키 류타, "한국 근대의 역사민족지 : 경북 상주의 식민지 경험" 혜안 2015

    7 김성수, "한국 근대 서간문화사 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

    8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문학과 지성사 2012

    9 이기훈,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돌베개 2014

    10 이광규, "전통사회의 가족과 촌락생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1 E.H.キンモンス, "立身出世の社会史" 玉川大学出版部 1995

    2 박지현, "한말 일제시대 유교 지식인의 지적 곤경과 근대 지식의 모색 -海岳 金光鎭의 『海岳文集』 편찬과 간행을 중심으로-" 한국고전번역원 44 : 249-276, 2014

    3 박지현, "한말 식민지기 유교 지식인 김광진의 근대 지식의 탐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2015

    4 박지현, "한말 식민지기 유교 지식인 김광진의 가계와 일상 그리고 의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2015

    5 박찬승, "한국근대 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2

    6 이타가키 류타, "한국 근대의 역사민족지 : 경북 상주의 식민지 경험" 혜안 2015

    7 김성수, "한국 근대 서간문화사 연구"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

    8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문학과 지성사 2012

    9 이기훈,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돌베개 2014

    10 이광규, "전통사회의 가족과 촌락생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11 문소정, "일제하 농촌의 인구와 가족의 변화 in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03

    12 이현일, "일제하 公立醫學專門學校의 설립과 운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42) : 321-348, 2012

    13 최재목, "일제강점기 신지식의 요람 대구 「友弦書樓」에 대하여"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211-225, 2009

    14 손정목,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연구" 일지사 1996

    15 박지현, "유교 지식인 해악 김광진의 醫生 활동과 그 의미: 식민지기 의생의 정체성 및 의료 문화와 관련하여" 역사학회 (229) : 157-185, 2016

    16 이기훈, "역사비평" 역사문제연구소 2010

    17 김영미,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2007

    18 문소정, "식민지시기 도시가족과 여성의 현실에 관한 연구 ― 京城府(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 서울역사편찬원 (70) : 5-49, 2007

    19 박철희, "식민지기 한국 중등교육 연구 : 1920~30년대 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2

    20 소현숙, "식민지기 근대적 이혼제도와 여성의 대응" 한양대학교 2013

    21 오성철, "식민지 초등 교육의 형성" 교육과학사 2000

    22 김일수, "서상일의 정치·경제 이념과 활동"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1

    23 Eugene Y. Park, "새로운 가족사의 추구 —근대 한국의 족보편찬과 중인층의 반응—" 역사문제연구소 12 (12): 139-167, 2008

    24 "동아일보"

    25 대구시사편찬위원회, "대구시사"

    26 오재근, "대구 의생 김광진의 동서의학 절충 그리고 한의학 혁신 - 『의학승강법』을 중심으로 -" 대한한의학원전학회 29 (29): 91-119, 2016

    27 황종연, "노블, 청년, 제국" 상허학회 14 : 263-297, 2005

    28 손준종, "근대적 학력주의의 출현과 제도화 과정에 관한 연구: 개항지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안암교육학회 7 (7): 81-118, 2001

    29 김경일,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 푸른역사 2012

    30 박용찬, "근대계몽기 대구의 문학장 형성과 우현서루" 국어교육학회(since1969) (56) : 397-420, 2014

    31 고석규, "근대 도시 목표의 역사 공간 문화"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3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33 "국가보훈처 공적자료"

    34 박지현, "광복, 다시 찾은 빛-광복 70주년 기념 울산박물관 특별기획전" 울산박물관 2015

    35 나리타 류이치, "고향이라는 이야기 : 도시공간의 역사학"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7

    36 함한희, "韓國 人類學의 成果와 展望" 집문당 1998

    37 김영소, "道生集" 1983

    38 김광진, "海岳文集" 1985

    39 김광진, "海岳文集" 나라얼연구소 2013

    40 이훈상, "朝鮮後期의 鄕吏" 일조각 1990

    41 이훈상, "朝鮮後期 邑治 社會의 構造와 祭儀: 鄕吏集團의 正體性 혼란과 邑治 祭儀의 遊戱化" 역사학회 147 : 1995

    42 朝鮮總督府, "朝鮮の姓" 1934

    43 김종주, "慶州金氏大安君派龜巖公后世譜" 대보사 2004

    44 김광진, "家歷" 1924

    45 김광진, "家政考" 1932

    46 김광진, "家信" 1933

    47 김광진, "家事日記 2권" 1933

    48 김영소, "子孫" 1991

    49 大邱府, "大邱府史" 1943

    50 최경희, "『엄마의 말뚝 1』과 여성의 근대성" 민족문학사학회 9 : 1996

    51 박지현, "『朝鮮靑年의 理想과 事業』 해제" 석당학술원 (61) : 347-373, 2015

    52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한국문학연구소, "‘고향’의 창조와 재발견" 역락 2007

    53 황민호, "(日帝下雜誌拔萃)植民地時代 資料叢書(13)" 啓明文化社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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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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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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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7 1.07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7 1.02 2.45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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