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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전반 서양 異樣船의 출몰과 조선 조정의 대응 = The Chosun government’s response against the appearance of the Western vessel in the early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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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Unlike China and Japan, Chosun could not have any relation with the West for a long time. This was a separate issue from whether Chosun wanted to have a relationship with the West. The fact that because of the diplomatic topography problem of Chosun the possibilities that Chosun could come across(奇遇) the West had been abolished shows this well during the period of dynasty change from Ming to Qing. However, even after the stabilization of the continental situation in the 18th century, the West could not come to be regarded as subject to be related to Chosun. In a world view centered on China, the West was only a strange subject which advanced the civilization of China. Then Chosun came cross the West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e Western vessel(異樣船). To Chosun which was on the verge of changing to anti-christianity, the appearance of the Western vessel was only a preview of Western powers advancing toward East Asia(西勢東漸).
      The response of the Chosun government had no choice but to be poor to deal with this issue. It was a natural step for the Chosun government to report about Britain's first demand of trade to Qing at that time. But the attitude of Chosun that neglected the valuable foreign information brought by the British vessel should be criticized. As this shows the mistake of Chosun, the Western vessel began to threaten the defense of Chosun by the mid-19th century. The successive events in 1845 and 1846 of the British and French Western vessel event was directly related to the first Opium War.
      However, the reaction of the Chosun government did not change. Rather than actively coping with the issues of the Western vessel, Chosun could not prepare any countermeasures but to follow the standard of Qing. The response of this period to the Western vessel should be critically examined since it became the manual of the attitude of Chosun to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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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like China and Japan, Chosun could not have any relation with the West for a long time. This was a separate issue from whether Chosun wanted to have a relationship with the West. The fact that because of the diplomatic topography problem of Chosun t...

      Unlike China and Japan, Chosun could not have any relation with the West for a long time. This was a separate issue from whether Chosun wanted to have a relationship with the West. The fact that because of the diplomatic topography problem of Chosun the possibilities that Chosun could come across(奇遇) the West had been abolished shows this well during the period of dynasty change from Ming to Qing. However, even after the stabilization of the continental situation in the 18th century, the West could not come to be regarded as subject to be related to Chosun. In a world view centered on China, the West was only a strange subject which advanced the civilization of China. Then Chosun came cross the West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e Western vessel(異樣船). To Chosun which was on the verge of changing to anti-christianity, the appearance of the Western vessel was only a preview of Western powers advancing toward East Asia(西勢東漸).
      The response of the Chosun government had no choice but to be poor to deal with this issue. It was a natural step for the Chosun government to report about Britain's first demand of trade to Qing at that time. But the attitude of Chosun that neglected the valuable foreign information brought by the British vessel should be criticized. As this shows the mistake of Chosun, the Western vessel began to threaten the defense of Chosun by the mid-19th century. The successive events in 1845 and 1846 of the British and French Western vessel event was directly related to the first Opium War.
      However, the reaction of the Chosun government did not change. Rather than actively coping with the issues of the Western vessel, Chosun could not prepare any countermeasures but to follow the standard of Qing. The response of this period to the Western vessel should be critically examined since it became the manual of the attitude of Chosun to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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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중국․일본과 달리 조선은 오랫동안 서양과 일체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는 조선이 서양과의 관계를 원했는가의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명․청 교체기, 조선이 서양과 奇遇할 수 있었던 가능성들이 조선의 외교지형 문제로 인해 모두 무산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대륙의 정세가 안정된 18세기 이후에도 서양은 조선에게 관계를 맺어야할 대상으로서 떠오르지 못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서양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문물을 뛰어나게 발전시킨 낯선 타자에 불과했다. 이러던 중 조선은 異樣船을 통해 서양의 실체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천주교 문제로 인해 이제 막 反서양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던 조선에게 닥친 이양선 출몰의 문제는 西勢東漸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처음으로 이양선 문제를 처결해야 했던 조정의 대응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조정이 영국의 최초 통상요구를 大國 청에게 상주했던 건, 당시 조선에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영국 이양선이 가져온 귀중한 대외정세의 정보를 소홀히 했던 조정의 태도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조정의 이러한 과오를 보여주듯, 19세기 중반이 되자 점점 더 빈번하게 출몰했던 이양선들은 조선의 국방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1845년과 1846년에 연달아 발생한 영국․프랑스 이양선 사건은 1차 아편전쟁과 직접 연관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의 대응방식은 달라지지 못했다. 조정은 조선의 방위를 허물고자 했던 이양선의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청을 본위로 하는 대외질서를 방패로 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시기 조정의 이양선에 대한 대응방식은 이후 조선의 서양에 대한 태도의 매뉴얼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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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일본과 달리 조선은 오랫동안 서양과 일체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는 조선이 서양과의 관계를 원했는가의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명․청 교체기, 조선이 서양과 奇遇할 수 있었던...

      중국․일본과 달리 조선은 오랫동안 서양과 일체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는 조선이 서양과의 관계를 원했는가의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명․청 교체기, 조선이 서양과 奇遇할 수 있었던 가능성들이 조선의 외교지형 문제로 인해 모두 무산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대륙의 정세가 안정된 18세기 이후에도 서양은 조선에게 관계를 맺어야할 대상으로서 떠오르지 못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서양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문물을 뛰어나게 발전시킨 낯선 타자에 불과했다. 이러던 중 조선은 異樣船을 통해 서양의 실체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천주교 문제로 인해 이제 막 反서양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던 조선에게 닥친 이양선 출몰의 문제는 西勢東漸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처음으로 이양선 문제를 처결해야 했던 조정의 대응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조정이 영국의 최초 통상요구를 大國 청에게 상주했던 건, 당시 조선에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영국 이양선이 가져온 귀중한 대외정세의 정보를 소홀히 했던 조정의 태도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조정의 이러한 과오를 보여주듯, 19세기 중반이 되자 점점 더 빈번하게 출몰했던 이양선들은 조선의 국방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1845년과 1846년에 연달아 발생한 영국․프랑스 이양선 사건은 1차 아편전쟁과 직접 연관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의 대응방식은 달라지지 못했다. 조정은 조선의 방위를 허물고자 했던 이양선의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청을 본위로 하는 대외질서를 방패로 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시기 조정의 이양선에 대한 대응방식은 이후 조선의 서양에 대한 태도의 매뉴얼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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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신복룡, "한말외국인기록 10․11․12" 집문당 1999

      2 한명기, "하멜 漂流 무렵의 조선과 東아시아 : 당시의 朝淸, 朝日關係를 중심으로" 2 : 2004

      3 김문식,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5 : 2003

      4 김재승, "조선해역에서 영국의 해상활동과 한영관계(1797~1905)" 23 : 1996

      5 노대환, "조선 후기 서양세력의 접근과 海洋觀의 변화" 한국사연구회 (123) : 11-378, 2003

      6 로널드 토비,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일본의 ‘쇄국’은 ‘쇄국’이 아니었다" 창해 2013

      7 한명기, "역사평설 병자호란 2" 푸른역사 2013

      8 박천홍,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현실문화 2009

      9 岩崎奈緖子, "쇼군 천황 국민" 서해문집 2012

      10 박현모, "세도정치기(1800-1863) 조선의 대외정책 연구" 한국국제정치학회 44 (44): 7-26, 2004

      1 신복룡, "한말외국인기록 10․11․12" 집문당 1999

      2 한명기, "하멜 漂流 무렵의 조선과 東아시아 : 당시의 朝淸, 朝日關係를 중심으로" 2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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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재승, "조선해역에서 영국의 해상활동과 한영관계(1797~1905)" 23 : 1996

      5 노대환, "조선 후기 서양세력의 접근과 海洋觀의 변화" 한국사연구회 (123) : 11-378, 2003

      6 로널드 토비,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 일본의 ‘쇄국’은 ‘쇄국’이 아니었다" 창해 2013

      7 한명기, "역사평설 병자호란 2" 푸른역사 2013

      8 박천홍,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현실문화 2009

      9 岩崎奈緖子, "쇼군 천황 국민" 서해문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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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坂野正高, "近代中国政治外交史" 東京大学出版会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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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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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7 1.07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7 1.02 2.45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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