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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희랍 철학에 나타난 ‘관상적 생활’  :  이상(理想)의 기원과 의미에 관한 연구 = Zum Ursprung und der Bedeutung des bios theoretikos in der klassischen griechischen Philosop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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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희랍의 생활이상을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관상적 생활로 구분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구분이 그보다 이전 시대에 논의된 사실로 인정한다. 관상적 생활의 기원에 관하여 헤라클레이데스는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생활 이상의 제창자라고 밝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가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성향을 나타내는 조화의 철학자라는 점과 그의 교단에 속한 자들의 정치 참여를 감안할 때, 그를 단순히 자연을 관상하는 철학자로 단정지울 수는 없다. 관상적 생활의 문헌상의 기원을 피타고라스에게 둔다할지라도, 정신적 기원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플라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혼재된 혹은 대립적 모습을 보여준다. 관상적 생활에 관한 Franz Boll의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그의 테오리아에 대한 어원적 의미 분석은 학계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탈레스 이래로 철학자의 삶의 이상이 관상적이었는가 그리고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언제나 상극관계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아울러 후대에 정형화된 관상적 생활이 고대로 소급되어 그 독자적 권위를 갖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의문시된다. 그 까닭은 이와 관련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철학자의 삶이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의 조화를 추구한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상적 생활은 특히 소크라테스에게서 실천적 생활의 존재 이유로서 관상적 생활의 가치가 드러나면서 실천적 생활과 분리되기 시작한다. 아울러 사유가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해지면서 실천적 생활이성의 통제자로서의 관상적 생활이 인정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이상의 통일을 성취한 최초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7장에서 관상적 생활의 기본 원리로 소피아를, 실천적 생활의 원리로 프로네시스 개념을 분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테크네의 본질은 아레테에 있고, 소피아, 아레테 그리고 테크네는 같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하지만 아레테는 정신적ㆍ윤리적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테크네에서 떨어져 나와 소피아와 아레테가 같게 되고, 결국 이론과 윤리적 의미의 실천과의 통일이 이뤄진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네시스 개념을 윤리적 지식으로, 이해 반해 소피아 개념을 형이상학적 지식으로 한정시킨다. 플라톤은 인간이 로고스적인 동물이자 동시에 뛰어난 폴리스적 동물임을 인정하면서, 철인왕 사상과 관상적 생활이상의 연관성을 논의한다. 관상적 생활의 형이상학적ㆍ윤리학적 의미에서 관상적 생활은 플라톤의 경우 종교적 영감에 의하여 초월적 세계를 관상한다는 형이상학적 비전으로 이해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순수한 지성의 활동으로 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실천적 영역에서 모든 의무를 감면해 주게 된다. 이후 관상적 생활은 여러 학파로 계승되며, 고대 후기에는 관상과 실천이 혼합된 삶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에서 확인되는 바는 관상적 생활이 희랍인의 철학적 생활이상으로서 초기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서 창시되고 실천되었다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론적으로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고전 시대 희랍인의 의식에게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조화되기 어려운 두 세계로 구분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플라톤에게서는 '관상하는 실천'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실천하는 관상'이 우위(優位)를 점유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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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희랍의 생활이상을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관상적 생활로 구분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구분이 그보다 이전 시대에 논의된 사실로 인정...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희랍의 생활이상을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관상적 생활로 구분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구분이 그보다 이전 시대에 논의된 사실로 인정한다. 관상적 생활의 기원에 관하여 헤라클레이데스는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생활 이상의 제창자라고 밝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가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성향을 나타내는 조화의 철학자라는 점과 그의 교단에 속한 자들의 정치 참여를 감안할 때, 그를 단순히 자연을 관상하는 철학자로 단정지울 수는 없다. 관상적 생활의 문헌상의 기원을 피타고라스에게 둔다할지라도, 정신적 기원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플라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혼재된 혹은 대립적 모습을 보여준다. 관상적 생활에 관한 Franz Boll의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그의 테오리아에 대한 어원적 의미 분석은 학계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탈레스 이래로 철학자의 삶의 이상이 관상적이었는가 그리고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언제나 상극관계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아울러 후대에 정형화된 관상적 생활이 고대로 소급되어 그 독자적 권위를 갖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의문시된다. 그 까닭은 이와 관련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철학자의 삶이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의 조화를 추구한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상적 생활은 특히 소크라테스에게서 실천적 생활의 존재 이유로서 관상적 생활의 가치가 드러나면서 실천적 생활과 분리되기 시작한다. 아울러 사유가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해지면서 실천적 생활이성의 통제자로서의 관상적 생활이 인정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관상적 생활과 실천적 생활이상의 통일을 성취한 최초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7장에서 관상적 생활의 기본 원리로 소피아를, 실천적 생활의 원리로 프로네시스 개념을 분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테크네의 본질은 아레테에 있고, 소피아, 아레테 그리고 테크네는 같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하지만 아레테는 정신적ㆍ윤리적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테크네에서 떨어져 나와 소피아와 아레테가 같게 되고, 결국 이론과 윤리적 의미의 실천과의 통일이 이뤄진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네시스 개념을 윤리적 지식으로, 이해 반해 소피아 개념을 형이상학적 지식으로 한정시킨다. 플라톤은 인간이 로고스적인 동물이자 동시에 뛰어난 폴리스적 동물임을 인정하면서, 철인왕 사상과 관상적 생활이상의 연관성을 논의한다. 관상적 생활의 형이상학적ㆍ윤리학적 의미에서 관상적 생활은 플라톤의 경우 종교적 영감에 의하여 초월적 세계를 관상한다는 형이상학적 비전으로 이해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순수한 지성의 활동으로 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실천적 영역에서 모든 의무를 감면해 주게 된다. 이후 관상적 생활은 여러 학파로 계승되며, 고대 후기에는 관상과 실천이 혼합된 삶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에서 확인되는 바는 관상적 생활이 희랍인의 철학적 생활이상으로서 초기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서 창시되고 실천되었다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론적으로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고전 시대 희랍인의 의식에게 관상적 생활은 실천적 생활과 조화되기 어려운 두 세계로 구분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플라톤에게서는 '관상하는 실천'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실천하는 관상'이 우위(優位)를 점유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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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Es ist wohl bekannt, dass Aristoteles das griechische Lebensideal unter drei Lebensformen, nämlich das apolaustische Leben, das politische Leben und das theoretische Leben unterscheidet. Er weist aber darauf hin, dass diese Unterscheidung schon vor ihm verbreitet und von manchen viel gesprochen worden ist. Über den Ursprung vom bios theoretikos spricht Herakleides, Pythagoras sei Urheber dieses Lebensideals. Unter dem Gesichtspunkt, dass Pythagoras als Philosoph der hamonia war, mit der er politischen, religiösen und philosophischen Charakter zusammenverbindet, und dass die Pythagoreer das politische Engagement haben, darf man nicht behaupten, dass er ein Philosoph war, der nur die Natur betrachtet. Obwohl der doxographische Ursprung des bios theoretikos Pythagoras zuschreibt, scheint es zu sein, dass der geistige Ursprung vor ihm gewesen war. Die Angaben von Homer, Herodot, Euripides, Aristophanes und Platon zeigen sich, dass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gemischt oder gegenseitig waren. In Betracht der richtungsweisenden Forschungsarbeit von F. Boll über den bios theoretikos wird zwar seine etymologische Analyse der theoria unter Mitforschern zweilsohne akzeptiert. Aber es ist fraglich, dass seit Thales das Lebensideal der Philosophen theoretiscb war, und der bios theoretikos immer mit dem praktischen Leben konfrontierte. Dazu noch ist es umstritten, dass der bios theoretikos, der im späteren Zeitraum charakterisiert und danach zum früheren Zeitraum zurückgeführt wird, seine absolute Autorität bekam. Weil nach Diogenes Laertios und Aristoteles die griechischen Philosophen auftreten, die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harmonisieren. Insbesondere bei Sokrates fängt die Spaltung von beiden Lebensformen an, wobei die Wert des theoretischen Lebens als Daseinsgrund des praktischen Lebens erhoben wird. Es hat allmählich begonnen, dass das theoretische Leben für die Kontrolle des praktischen Lebens anerkannt wird, indem sich das Denken nicht nach der Natur, sondern nach dem Menschen richtet. In diesem Sinne kann Sokrates zum ersten Denker gewürdigt werden, der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einheitlich zusammenbindet. Aristoteles erhellt in seiner Nichomachischen Ethik(Buch 6, Kap. 7), dass sophia für das Grundprinzip des bios theoretikos, und phronesis für das Grundprinzip des praktischen Lebens gekennzeichnet wird. Nach diesem Verständnis besteht die techne in der Arete. Demzufolge stellt Aristoteles sophia, arete und phronesis gleich. Die arete enthält aber den geistigen und ethischen Sinn. Dadurch ist sie getrennt von der techne. Folgerichtig wird die sophia zur arete. Konsequenterweise werden die theoria und die die ethische Bedeutung in sich habende praxis einig. Letzten Endes wird die phronesis als das ethische Wissen bei Aristoteles betrachtet, und demgegenüber die sophia als das metaphysische Wissen beschränkt. Bei Platon ist der Zusammenhang zwischen dem Philosophen-König und dem bios theoretikos die Rede, wobei er die Menschen nicht nur für zoon logon, sondern auch für zoon politikon hält. In metaphysischer und ethischer Hinsicht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Platon eine metaphysische Vision in dem Sinne, dass man die transzendente Welt durch die religiöse Inspiration schaut. Im Vergleich dazu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Aristoteles die intellektuelle Tätigkeit des reinen Geistes. In dieser Tätigkeit sind die Philosophen von allen praktischen Verpflichtungen befreit. In den folgenden Jahrhunderten war der bios theoretikos in verschiedenen Schulen überliefert worden. Und in der späten Antike war die gemischte Lebensform von der theoria und der praxis von besonderer Bedeutung. Zusammenfassend lässt sich sagen, dass bei den Griechen der bios theoretikos als das philosophische Lebensideal nicht von Vorsokratikern gesprochen und praktisiert wird, und jedoch vielmehr seit Aristoteles an Bedeutung gewinnt. Unter dem Bewusstsein der Griechen ist der bios theoretikos vom bios praktikos nie getrennt. Daher haben die beiden Lebensideale keine Schwierigkeit, miteinander harmonisiert zu werden. Kurzum: Bei Platon spielt die schauende Praxis erste Geige, und bei Aristoteles die praktisierende The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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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 ist wohl bekannt, dass Aristoteles das griechische Lebensideal unter drei Lebensformen, nämlich das apolaustische Leben, das politische Leben und das theoretische Leben unterscheidet. Er weist aber darauf hin, dass diese Unterscheidung schon vor i...

    Es ist wohl bekannt, dass Aristoteles das griechische Lebensideal unter drei Lebensformen, nämlich das apolaustische Leben, das politische Leben und das theoretische Leben unterscheidet. Er weist aber darauf hin, dass diese Unterscheidung schon vor ihm verbreitet und von manchen viel gesprochen worden ist. Über den Ursprung vom bios theoretikos spricht Herakleides, Pythagoras sei Urheber dieses Lebensideals. Unter dem Gesichtspunkt, dass Pythagoras als Philosoph der hamonia war, mit der er politischen, religiösen und philosophischen Charakter zusammenverbindet, und dass die Pythagoreer das politische Engagement haben, darf man nicht behaupten, dass er ein Philosoph war, der nur die Natur betrachtet. Obwohl der doxographische Ursprung des bios theoretikos Pythagoras zuschreibt, scheint es zu sein, dass der geistige Ursprung vor ihm gewesen war. Die Angaben von Homer, Herodot, Euripides, Aristophanes und Platon zeigen sich, dass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gemischt oder gegenseitig waren. In Betracht der richtungsweisenden Forschungsarbeit von F. Boll über den bios theoretikos wird zwar seine etymologische Analyse der theoria unter Mitforschern zweilsohne akzeptiert. Aber es ist fraglich, dass seit Thales das Lebensideal der Philosophen theoretiscb war, und der bios theoretikos immer mit dem praktischen Leben konfrontierte. Dazu noch ist es umstritten, dass der bios theoretikos, der im späteren Zeitraum charakterisiert und danach zum früheren Zeitraum zurückgeführt wird, seine absolute Autorität bekam. Weil nach Diogenes Laertios und Aristoteles die griechischen Philosophen auftreten, die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harmonisieren. Insbesondere bei Sokrates fängt die Spaltung von beiden Lebensformen an, wobei die Wert des theoretischen Lebens als Daseinsgrund des praktischen Lebens erhoben wird. Es hat allmählich begonnen, dass das theoretische Leben für die Kontrolle des praktischen Lebens anerkannt wird, indem sich das Denken nicht nach der Natur, sondern nach dem Menschen richtet. In diesem Sinne kann Sokrates zum ersten Denker gewürdigt werden, der das theoretische Leben und das praktische Leben einheitlich zusammenbindet. Aristoteles erhellt in seiner Nichomachischen Ethik(Buch 6, Kap. 7), dass sophia für das Grundprinzip des bios theoretikos, und phronesis für das Grundprinzip des praktischen Lebens gekennzeichnet wird. Nach diesem Verständnis besteht die techne in der Arete. Demzufolge stellt Aristoteles sophia, arete und phronesis gleich. Die arete enthält aber den geistigen und ethischen Sinn. Dadurch ist sie getrennt von der techne. Folgerichtig wird die sophia zur arete. Konsequenterweise werden die theoria und die die ethische Bedeutung in sich habende praxis einig. Letzten Endes wird die phronesis als das ethische Wissen bei Aristoteles betrachtet, und demgegenüber die sophia als das metaphysische Wissen beschränkt. Bei Platon ist der Zusammenhang zwischen dem Philosophen-König und dem bios theoretikos die Rede, wobei er die Menschen nicht nur für zoon logon, sondern auch für zoon politikon hält. In metaphysischer und ethischer Hinsicht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Platon eine metaphysische Vision in dem Sinne, dass man die transzendente Welt durch die religiöse Inspiration schaut. Im Vergleich dazu ist der bios theoretikos bei Aristoteles die intellektuelle Tätigkeit des reinen Geistes. In dieser Tätigkeit sind die Philosophen von allen praktischen Verpflichtungen befreit. In den folgenden Jahrhunderten war der bios theoretikos in verschiedenen Schulen überliefert worden. Und in der späten Antike war die gemischte Lebensform von der theoria und der praxis von besonderer Bedeutung. Zusammenfassend lässt sich sagen, dass bei den Griechen der bios theoretikos als das philosophische Lebensideal nicht von Vorsokratikern gesprochen und praktisiert wird, und jedoch vielmehr seit Aristoteles an Bedeutung gewinnt. Unter dem Bewusstsein der Griechen ist der bios theoretikos vom bios praktikos nie getrennt. Daher haben die beiden Lebensideale keine Schwierigkeit, miteinander harmonisiert zu werden. Kurzum: Bei Platon spielt die schauende Praxis erste Geige, und bei Aristoteles die praktisierende The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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