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이 간행되고 유통되었던 근대 계몽기의 조선은 비균질적인 공간이었다. 신분과 남녀의 차별 같은 정치·사회적 격차가 존속해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차와 같은 교통 공간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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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3
2003
한국어
070 판사항(4)
서울
v, 91p. : 삽도 ; 26cm.
참고문헌: p. 8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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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이 간행되고 유통되었던 근대 계몽기의 조선은 비균질적인 공간이었다. 신분과 남녀의 차별 같은 정치·사회적 격차가 존속해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차와 같은 교통 공간의 미비로 인해 자연적 장벽이 공간을 가로막고 있었다. 즉 조선은 이질적인 공간들로 분할되어 있었다. 결국 『독립신문』의 도입과 확산은 비균질성을 극복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독립신문』이 비균질적 공간 속에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공간의 비균질성을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을 다루고자 했다.
『독립신문』은 활자어의 선별과 지면의 배치를 통해 안팎을 구별하고 만국 체제와 조선의 경계를 표상해 내고 있다. 개별 국가들로 구성된 만국체제가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위치를 점하는 하나의 개별 공간으로 드러났다. 이때 만국체제를 형성하는 단위로는 개별 국가가 호명되었으며 조선 역시 국가라는 단일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독립신문』이 조선을 균질적인 공간으로 전제하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 즉 조선 내부의 비균질성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신분이나 지식의 격차, 서울과 지방의 차이 등이 실제 조선을 구성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과 실제 사이의 격차를 해소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독립신문』은 계몽 공간의 확보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즉 신문은 미성숙한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근대적 소통 공간으로 자임했고 이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공간 관계 재편의 매체로 위치하였다.
조선이 ‘서구의 충격’ 속에서 자본주의적 만국체제로 포섭되어가는 과정은 중화체제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내부의 균질성을 확보를 위해 공공 영역을 성립하고 소통 수단을 완비할 것이 요구되었다. 『독립신문』은 먼저 변화한 공간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만국체제는 구미제국이 근대적 소통 수단과 압도적인 물리력을 이용해 전지구적으로 확장해 낸 공간이었다. 이로써 ‘하나의 세계’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통합된 세계는 다시 문명-반개-야만으로 위계화되었다. 공간의 질적 차이가 시간의 차이로 환원되면서 새로운 위계화의 공간이 발생한 것이다. 『독립신문』에서 재현되고 있는 ‘세계’는 일종의 척도로서 작용한다. 이처럼 만국체제의 전범으로 기능한 ‘세계’는 구미 제국 혹은 서양을 의미했다.
만국체제 속에서 세계가 서양을 의미했다면 동양은 조선, 청국, 일본 삼국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중화체제가 영토적인 관념이 아니었던 데 비해 동양 삼국은 분명한 지리적 경계를 갖는다. 그러나 구미 제국과 비교한다면, 동양 삼국은 상호 분명히 구분되면서도 풍속이나 학문 등이 동일한 같은 문명권에 속했다. 즉 서양에 비추어 볼 때 동양은 단일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또한 서양과 비교 하에서 정체된 공간으로 파악되었다.
공간적 차이를 시간의 지체로 파악한 문명관은 인종주의와 결합한다. 『독립신문』을 보면 백인의 얼굴이 척도로 작용하면서 백인과의 유사성에 따라 인종간의 위계가 결정되는 양상을 목격할 수 있다. 문명이 야만을 계몽한다는 미명 아래 차별을 정당화했듯 문명론과 결부된 인종주의는 당위성을 획득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적 차별이 피부색의 차이로 환원되어 은폐된 것이다. 『독립신문』이 또한 인종주의를 표명하는 이상 서양이 비백인의 공간인 동양을 제국주의적으로 침탈하는 것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인종주의 도식에 따르면 서양의 동양 침탈은 그대로 묵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립신문』에 따르면 인종주의는 서양의 침탈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이해되기도 했다. 조선이 문명화의 단계에 진입한 일본과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혈연 또는 인종적 동일성이다. 결국 황인종의 동양은 백인종의 서양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추구해야 할 문명의 척도는 여전히 서양이었다. 만국체제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이 체제를 형성한 구미제국의 관계 규범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구미 제국과 동등해지기 위해서는 구미의 표준에 들어맞는다고 인정될 때까지 공간을 계속 변형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표준화된 서구를 전일적으로 받아들이기에 현실적인 난관과 심리적 장애물이 존재했다. 결국 동일한 인종 혹은 문화권으로 표상된 인접 공간이 직접적인 모방 대상이 되었다.
근대 이전 문명의 중심지였던 청나라는 더럽고 지저분한 국가로 표상되었다. 청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선교사들이 조선인들에게 보였던 태도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청은 조선이 버려야 할 타자로 설정되었다. 반면 일본은 반개화에서 개화국으로 발전한 사례였으며 조선이 따라할 직접적인 모범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일본을 통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서구와 균질적인 공간을 도입하려 했다. 이러한 연쇄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공간의 재편은 조선이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해되었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서구 또는 일본의 충격 속에서’ 공간 재편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미 재편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던 서울은 개화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비균질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서울은 세상의 변화를 알려주고 공간 재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매체로서 작동했다. 서울이 직접적인 모범으로 설정되면서 개별 공간은 이를 모방하는 연쇄 과정 속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서울 모델의 확산 속에서 조선은 균질적 공간으로 재편될 수 있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근대적 소통 수단의 도입을 통해서 균질공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언표되었다. 외침(外侵)을 막거나 백성의 노역을 던다는 명목으로 억제되었던 소통 공간은 전국 인민을 위해 신속하게 소통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했다. 새로운 소통 공간의 필요성은 전신이나 전화, 우체, 신문과 같은 근대적 소통 매체의 수용을 촉발시켰다. 근대적 소통 매체들이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공간을 빠르게 횡단함으로써 균질적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신문』은 빠르고 정확한 소통망의 확장 속에서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개별 공간이 만국체제에 합당한 표준화된 균질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표상했다.
요컨대 만국체제 속의 타자 체험은 공간체제의 변화나 그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신문의 등장은 이러한 필요성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근대적 제도의 하나로 도입된 『독립신문』 역시 표상공간을 활용해 비균질적인 조선을 균질적 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독립신문』은 서양과 청국, 일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근대적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독립신문』에서 창출하고자 했던 공간이 근대 계몽기 조선과 일대일로 대응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독립신문』이 특정한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지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신문』이 근대 계몽기 조선의 공간 체제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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