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Kukhanmun in the late 19th Century Kim, Joo-phil The term, ‘Kukhanmun'(國漢文, The Korean and Chinese Writing), was first used in “Official Document Form" in November 21th 1894 with a view to distinguishing it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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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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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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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Kukhanmun in the late 19th Century Kim, Joo-phil The term, ‘Kukhanmun'(國漢文, The Korean and Chinese Writing), was first used in “Official Document Form" in November 21th 1894 with a view to distinguishing it f...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Kukhanmun in the late 19th Century
Kim, Joo-phil
The term, ‘Kukhanmun'(國漢文, The Korean and Chinese Writing), was first used in “Official Document Form" in November 21th 1894 with a view to distinguishing it from Kukmun(國文, the Korean Writing). According to the 14th article of “Official Document Form", official documents should mainly be written in Kukmun with an attachment of the Chinese translation, or in Kukhanmun, but in reality official documents were written in Kukhanmun. Kukhanmun was made by dividing a Chinese sentence into words, rearranging them in the word order of a Korean sentence, and adding particular Korean grammatical morphemes to them. Therefore Kukhanmun had the same syntactical structure as Kukmun, but morphologically it retained the Chinese way of writing.
Yu Gil-joon(1856-1914) said that Kukhanmun originated in Chilseo Eonhae(七書諺解). Its Korean annotation, which replaced the Chinese sentences with Korean sentences with the aid of Eumdok-kugyol(音讀口訣), was virtually the same in its nature and construction as Kukhanmun in the late 19th century. This sort of annotation could also be verified in the kugyol and annotation O Kyeong-li(1813-1893) put beside the Chinese original with a writing brush in his The Book of Changes(周易). From this we can see that Kukhamun originated in the way of studying Chinese writings that the origianl Chinese sentences were understood in paraphrased Korean sentences with the aid of eumdok-kugyol.
Kukhanmun, which occupied a transitional stage in replacing Hanmun, the Chinese Writing, with Kukmun, has grea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Korean Speech and Writing in that it formed a basis for modern Korean sentences.
‘國漢文’은 1894년 11월 21일 軍國機務處에서 반포한 公文式에서 ‘國文’과 구별되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公文式 第14條에서는 “法律勅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이...
‘國漢文’은 1894년 11월 21일 軍國機務處에서 반포한 公文式에서 ‘國文’과 구별되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公文式 第14條에서는 “法律勅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이라 하였으나 실제의 공문은 國漢文으로 작성되었다. 19세기 말 國漢文은 한문 문장을 단어 수준의 형태로 分斷하여 그 형태들을 우리말 문장 구조에 따라 재배열한 다음, 그 뒤에 조사나 어미를 첨가하여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國漢文은 統辭的으로는 국문 문장과 같았지만, 形態論的으로는 한문에 사용된 단어와 유사한 ‘漢文套’를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國漢文의 이러한 ‘한문투’를 자립적인 한자어나 고유어로 바꿈으로써 국문 문장이 만들어졌다. 兪吉濬(1856~1914)은 國漢文이 七書諺解에 기원한다고 하였다. 선조조에 간행된 七書諺解의 언해문은 19세기 말 國漢文과 그 성격이 같다. 七書諺解의 언해문은 한문에 단 音讀 口訣을 활용하여 한문을 우리말 단어 수준의 형태로 분단하고, 그 형태 뒤에 조사나 어미를 첨가하여 우리말 문장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해문은 19세기 전기에 吳慶履(1813~1893)가 공부한 周易(1810년 전주판)의 원문 옆에 붓으로 쓴 口訣과 上의 諺解文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므로 國漢文은 음독 구결의 방법을 활용하여 한문 문장을 우리말 문장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漢文 學習 方法에 기원한다.國漢文은 한문을 국문으로 전환하는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따라서 한문에 익숙한 지식층과 그렇지 못한 일반 언중들을 모두 독자로 하는 공문 작성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적절한 文體였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군국기무처에서는 공문을 國漢文으로 작성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문을 국문으로 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공문식 제14조에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문 중심의 어문 생활에서 국문 중심의 어문 생활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용된 19세기 말 國漢文은 현대 국어 문장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어문 생활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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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18세기 초 中華繼承意識의 형성과 正統論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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