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東金石書》에는 ‘(包川) 某寺碑’ 혹은 ‘寺圓悟大師碑’라는 이름으로 碑片 일부의 탁본이 수록되어 있다. 8行 90여字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승려의 입적과 그를 위한 碑의 건립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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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219-230(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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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金石書》에는 ‘(包川) 某寺碑’ 혹은 ‘寺圓悟大師碑’라는 이름으로 碑片 일부의 탁본이 수록되어 있다. 8行 90여字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승려의 입적과 그를 위한 碑의 건립에 관...
《大東金石書》에는 ‘(包川) 某寺碑’ 혹은 ‘寺圓悟大師碑’라는 이름으로 碑片 일부의 탁본이 수록되어 있다. 8行 90여字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승려의 입적과 그를 위한 碑의 건립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碑는 고승의 탑비로 추정되며, 해당 고승은 비문 중에 ‘海龍王故圓悟大師’로 언급 되고 있는 海龍王寺 圓悟大師로 볼 수 있다. 비문에는 또한 비문 찬술자인 金廷彦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가 翰林學士로 활동한 시기와 비문에서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비는 950년대 혹은 970년대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圓悟大師의 入寂은 940년대 후반 혹은 970년대 전반으로 추정된다. 海龍王寺는 고려 태조대에 중국 福建지방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完帙의 大藏經을 구해온 普耀禪師와 제자 洪慶(=弘慶)의 師弟가 건립한 선종 사찰로 확인되며 包川의 海龍山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 海龍王寺에 祖師로서 탑비가 봉안되었던 圓悟大師는 활동시기 및 해룡왕사의 조사라는 공통점 등으로 볼 때 普耀禪師나 洪慶(=弘慶) 중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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