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申檣/1382년(우왕 8)∼1433년(세종 15))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초기를 살았던 명필이다. 그래서 대외관계 문서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혼란했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상황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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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 京畿大學校, 2012
학위논문(석사) -- 경기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원 , 전통예술학과 서예문자예술전공 , 2012
2012
한국어
641 판사항(5)
745.619951 판사항(21)
경기도
v, 213 p. : 삽화 ; 26 cm
참고문헌: p. 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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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申檣/1382년(우왕 8)∼1433년(세종 15))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초기를 살았던 명필이다. 그래서 대외관계 문서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혼란했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상황에서 신장은 할아버지인 신덕린의 필재를 이어받았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활동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단명했던 인물이다. 조부인 신덕린은 고려 말 충신인 두문동72현 중에 한사람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광주와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신장은 남원에서 출생하여 보련법주의 가르침을 받았다. 서법 역시 보련법주의 필법을 사사하였다. 이는 해서, 행서, 초서의 경우는 왕희지와 조맹부의 필법이며, 액체는 이부광의 필법을 전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숭례문편액>, <임씨가묘편액> 등은 구양순체를 사용하였다.
고려 말 송설체를 따른 이제현, 이암, 신덕린 등이 있다. 송설체의 유행은 원에 유학하거나 체류하였던 인물들로부터 수용되었으며, 특히 과거시험의 시지(試紙) 작성의 서체와 관계 깊다. 이런 사사문화의 전통은 조선에도 그대로 전래되었다. 신장의 조부인 신덕린은 송설체의 필법을 어떻게 체득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송설체의 유행은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다. 당시 과거시험의 답안지인 시지(試紙)는 송설체를 사용해야만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풍조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시험 준비과정에서 송설체를 습득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장의 필명을 뒤 이은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들이다. 그의 아들인 보한재 신숙주(保閑齋 申叔舟/1417∼1475), 신중주, 신말주(申末舟/1429∼1503) 등이다. 그 뒤를 이어 신준(申浚/1444∼1509), 신복순(申復淳/1464∼1541), 그리고 신숙주의 증손인 신잠(申潛/1491∼1554)과, 신절(申梲/1596∼1688), 신극청(申克淸/), 신일청(申一淸/1698∼1770) 등이 고령신씨의 필명을 이은 사람들이다.
신덕린 이후 고령신씨들은 한결같이 왕희지체와 송설체를 이었다. 신장은 조부인 신덕린의 서법을 이었고, 신장은 아들인 신숙주(保閑齋 申叔舟/1417∼1475), 신중주, 신말주(申末舟/1429~1503) 등에게 필법을 전수하였다. 그 뒤를 이은 후손들도 한결같이 왕희지체와 송설체를 전수 받았다. 이런 가문은 보기 드물며 일가 가문의 전통의 전래와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특별한 예이다. 이런 예가 조선시대 전통적인 가학(家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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