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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의 가르침 가능성과 덕의 단일성: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서 '위대한 연설'과 그에 대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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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자신이 하는 일이 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덕이라는 것이 도대체 가르쳐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제시한다. 아테네인들이 나라경영의 문제에 대해서 아무에게나 발언기회를 주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덕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과, 페리클레스와 같은 뛰어난 시민들이 자신의 덕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증거들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인들이 모든 사람이 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모두에게 발언기회를 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결론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모두가 모두에게 덕을 가르치는 경우에는 천성적 재능의 차이가 중요해서 뛰어난 아버지의 아들이 덕이 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서 드러나는 프로타고라스의 덕 개념은 야만인과 문명인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있으나, 문명사회의 성원들 중에서 탁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가 전자로서의 덕이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고 해도 후자로서의 덕도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삶 속에서 도덕적 딜레마라고 부를 만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적절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사회를 잘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회의 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침들을 내면화하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이란 바로 그러한 지침들이 상충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덕은 파편적이지 않은 단일한 것임을 필요로 하는데 비해, 프로타고라스가 이야기하는 덕은 한 부분을 가지면서 다른 부분을 가지지 않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파편적이다. 소크라테스가 주도하는 덕의 단일성 논의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덕은 그렇게 파편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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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하는 일이 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덕이라는 것이 도대체 가르쳐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제시한다. 아테네인들이 나라경영의 문...

    자신이 하는 일이 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덕이라는 것이 도대체 가르쳐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제시한다. 아테네인들이 나라경영의 문제에 대해서 아무에게나 발언기회를 주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덕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과, 페리클레스와 같은 뛰어난 시민들이 자신의 덕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증거들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인들이 모든 사람이 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모두에게 발언기회를 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결론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모두가 모두에게 덕을 가르치는 경우에는 천성적 재능의 차이가 중요해서 뛰어난 아버지의 아들이 덕이 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서 드러나는 프로타고라스의 덕 개념은 야만인과 문명인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있으나, 문명사회의 성원들 중에서 탁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가 전자로서의 덕이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고 해도 후자로서의 덕도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삶 속에서 도덕적 딜레마라고 부를 만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적절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사회를 잘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회의 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침들을 내면화하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이란 바로 그러한 지침들이 상충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덕은 파편적이지 않은 단일한 것임을 필요로 하는데 비해, 프로타고라스가 이야기하는 덕은 한 부분을 가지면서 다른 부분을 가지지 않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파편적이다. 소크라테스가 주도하는 덕의 단일성 논의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덕은 그렇게 파편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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