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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 중국 신시기 소설의 문학적 공간 연구-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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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72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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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中國文學硏究史上 古代나 現代에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쏟아 본 상태에서, 近代 문학론의 핵심인 이른바 維新派 지식인 계층의 啓蒙主義 문학사조에 대해 그 주요 주장과 경향을 세밀히 고찰하여 이해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그 가운데에서 고대와 현대 혹은 新과舊가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으로 같은 시기 한국 및 일본과 연계된 부분을 탐구하여 우리의 문학과 사회를 보다 철저히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기대 한다. 본고의 연구대상 및 범위는 제목에 사용된 용어로 대변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근대 역사 및 문학의 分期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그 특징 및 변화에 대한 인식이 다름에 따라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그 上限時點을 阿片戰爭으로, 下限時點을 五四運動으로 보는 견해를 수용했다. 하한시점보다 상한시점에 대해서 의견이 크게 달라지는데, 서구로부터의 영향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서구와의 접촉이 본격화되는 아편전쟁을 상한시점으로 한 것이다. 고전문학으로부터확연한 변화가 발생하여 근대문학으로 발전된 데는 중국의 내적 변화보다는 서구로부터의 영향이 더 큰 요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둘째, '維新派'란 淸末에 '蠻法維新運動'을 추진하며 政界에 두각을 나타냈던 진보세력의 하나이다. 근대 중국의 통치집단은 크게 守舊派 ·洋務派 維新派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中體西用기 사상적 전제 하에'利器(과학기술)' 위주의 지업적 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양무파의 洋務運動이 실패하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집단이 바로 유신파였다. 주요 인물로는 1880년대의 馮桂芬 ·王韜 ·馬建忠· 鄭觀應 등으로부터 1890년대 蠻法運動의 대표자였던 康有爲 ·梁啓超 두 師弟와 黃遵憲·譚嗣同 ·夏曾佑 ·丘逢甲 ·蔣智由 등을 꼽을 수 있다. 아편전쟁 전후부터 극심한 체제이완과 외부충격이라는 변화국면에 접한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사실 19세기 초부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公羊今文學을 기반으로 한 現實主義 ·進步主義의 思想潮流이다. 이는 중국 근대 계몽주의사상의 한 맹아라고 할 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19세기 후반기 즉 晩淸時期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격심한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름대로의 정치적 ·사상적 대응논리를 정립시켰고, 더불어 문화전반에서도 새로운 기풍을 일으켰다. 그 중심이 바로 전 후기 유신파지식인들이며, 이들은 심각한 民族存亡의 위기 속에서 수구파의 낙후성과 양무파의 한계를 인식하고, 아편전쟁 전후기의 龔自珍 ·魏源 등의 社會變革 ·經世致用 경향의 진보주의적 사상을 계승했으며, 근본적으로 制度를 개량해야만 함을 절감하고 특히 중불전쟁과 중일전쟁의 실패를 계기로 그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며 일종의 개량주의적 사회사조로 형성 시 켰다. 1880-90년대의 새로운 진보세력으로서 이들 유신파 지식인들은 사상적 측면에서 계몽주의를 비롯한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 계충의 사상을적극 수용하여 그 개혁운동의 중요한 근원으로 삼아 봉건왕조의 법제와사회를 개량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통치자 차원에서 '重農抑商정책을개혁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발전을 고취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국가를 건립하고 부강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서구 제국을 모델로 삼아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측면 등등에서 총체적으로 개혁을추진하여 자본주의 노선을 따르고자 한 것이다. 다만 이들이 추진한 개혁은 기본적으로 봉건통치에 의지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하고자 한것이었으며, 때문에 봉건 전제왕조의 제약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렇게 민중으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 등으로 인해 이들이 추진한 변법유신은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후 오히려실패를 계기로 학술 ·사상 및 문학 전반에 걸쳐 개혁운동을 전개하여當代에 이미 커다란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현대에까지 계속 깊은영향을 미첨으로써 나름대로 큰 성취를 거두었다. 즉 유신파는 정치적으로 개량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비교적 철저하지못한 개혁구도를 고수하며 뿌리 깊은 보수경향과 守舊派의 제약 등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신들의 理想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의 관념과 실천활동은 사실 자신들의 정치 사회 개량운동에 부응하여 전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근대문학의 발전방향을 결정짓고 다시 五四文學運動의 先導的 役割을 한 것에 중요한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中華人民共和國 성립 이후로, 중국에서 유신파 즉 부르주아계층의 개량파 지식인들은 혁명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개량주의도 철저히 부정되었다. 때문에 이후 근 30년 동안 그들에 대한연구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文化大革命 이후 '사상해방운동'과 '개혁' ·'개방'의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근대' 전반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 연구도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셋째, 위와 같은 배경 아래 형성된 유신파의 문학경향은 한마디로 啓蒙主義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계몽주의제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먼저 詞典上에서 '啓蒙'은 첫째, 어두움을 연다' 즉 '우매함을 깨우쳐 사리를 명백하게 한다'는 의미로, 漢代 應劭의 『風俗通 ·皇覇·六國』과 淸代 劉獻廷의 『廣陽雜記』 卷三 등에 보인다. 또 둘째, '初學者로 하여금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게 한다'는 의미로, 元代 劉壎의 『隱居通議 ·論語二』 등에 보인다. 字句上의 의미만으로 본다면, '계몽'은 초학자나 어린이를 교육시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케 한다거나, 또 나아가 선전과 교육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우매함과 미신을 벗어나 새로운 사물과 지식을 받아들이게함으로써 뒤떨어진 사회를 진보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東西古今에 걸쳐 쉽게 예를 찾아볼 수 있는 매우 廣義的인 개념이다. 그런데 역사적 현상으로서 또는 사상적 조류로서의 계몽주의(Englishtenment)'는 일반적으로 그 범위와 개념을 상당히 구체적으로제한하여 논의해 왔다. 즉 狹義的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주의'는 I5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싹트기 시작해, 18세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사상계를 휩쓸었었으며, 특히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思潮로 '18세기 계몽'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내용은 理性으로써 중세기의 종교적 蒙昧主義를비판하고, 자유 ·평등의 근대적 정치 ·사회 주장으로써 封建專制主義를비판하고, 幸福主義로써 종교적 금욕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이성으로써 모든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인생의 규범을 잘 정할 수 있으며, 미신과 편견 그리고 이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권위와 전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이성은 올바른 인격과 사회를 성립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주장함으로써 봉건적인 낡은 사상을 혁신적인 사상으로 유도하려던 主義이다. 그리고 이성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은 과학이며, 따라서 과학적 사고방법은 곧 이성적 사고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가장 구체적인 思潮로서의 계몽은 주로 부르주아혁명을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18세기 계몽'을 가리킨다. 그리고 넓게는 그 이전의사상적 준비과정 즉 중세기 후기에 발생한 早期 사상계몽과의 연속성을 고려해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서구 문예부흥과 종교개혁도 계몽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또 아울러 18세기 계몽 이후 서구 이외에 일본 ·한국 중국 등 後進國家들의 사상해방운동과 같은 계몽 노력도 포함시킬 수 있다. 결국 계몽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국가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사회사상적 현상으로, 그 主義의 목적은 중세기 몽매주의에 대한비판을 통해 봉건주의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정치 ·사회 주장을 宣揚하며, 나아가 인간의 관념의 변혁을 실현함으로써 근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여러 제도들의 확립을 촉진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을 그 근간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삼는 계몽주의 문학은 앞서 논의한 계몽주의의 목적을위해 作家가 계몽자 즉 교육자나 先覺者의 입장에서 이성 즉 합리성에 호소하여 민중을 가르치려는 일종의 敎訓主義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유신파에 의해 형성되고 성행한 중국 근대의 계몽주의 문학사조에대해 그 주요 주장과 경향을 중심으로 자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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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中國文學硏究史上 古代나 現代에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쏟아 본 상태에서, 近代 문학론의 핵심인 이른바 維新派 지식인 계층의 啓蒙主義 문학사조에 대해 그 주요 주장과 경향을 ...

      본 연구는 中國文學硏究史上 古代나 現代에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쏟아 본 상태에서, 近代 문학론의 핵심인 이른바 維新派 지식인 계층의 啓蒙主義 문학사조에 대해 그 주요 주장과 경향을 세밀히 고찰하여 이해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그 가운데에서 고대와 현대 혹은 新과舊가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으로 같은 시기 한국 및 일본과 연계된 부분을 탐구하여 우리의 문학과 사회를 보다 철저히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기대 한다. 본고의 연구대상 및 범위는 제목에 사용된 용어로 대변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근대 역사 및 문학의 分期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그 특징 및 변화에 대한 인식이 다름에 따라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그 上限時點을 阿片戰爭으로, 下限時點을 五四運動으로 보는 견해를 수용했다. 하한시점보다 상한시점에 대해서 의견이 크게 달라지는데, 서구로부터의 영향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서구와의 접촉이 본격화되는 아편전쟁을 상한시점으로 한 것이다. 고전문학으로부터확연한 변화가 발생하여 근대문학으로 발전된 데는 중국의 내적 변화보다는 서구로부터의 영향이 더 큰 요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둘째, '維新派'란 淸末에 '蠻法維新運動'을 추진하며 政界에 두각을 나타냈던 진보세력의 하나이다. 근대 중국의 통치집단은 크게 守舊派 ·洋務派 維新派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中體西用기 사상적 전제 하에'利器(과학기술)' 위주의 지업적 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양무파의 洋務運動이 실패하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집단이 바로 유신파였다. 주요 인물로는 1880년대의 馮桂芬 ·王韜 ·馬建忠· 鄭觀應 등으로부터 1890년대 蠻法運動의 대표자였던 康有爲 ·梁啓超 두 師弟와 黃遵憲·譚嗣同 ·夏曾佑 ·丘逢甲 ·蔣智由 등을 꼽을 수 있다. 아편전쟁 전후부터 극심한 체제이완과 외부충격이라는 변화국면에 접한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사실 19세기 초부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公羊今文學을 기반으로 한 現實主義 ·進步主義의 思想潮流이다. 이는 중국 근대 계몽주의사상의 한 맹아라고 할 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19세기 후반기 즉 晩淸時期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격심한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름대로의 정치적 ·사상적 대응논리를 정립시켰고, 더불어 문화전반에서도 새로운 기풍을 일으켰다. 그 중심이 바로 전 후기 유신파지식인들이며, 이들은 심각한 民族存亡의 위기 속에서 수구파의 낙후성과 양무파의 한계를 인식하고, 아편전쟁 전후기의 龔自珍 ·魏源 등의 社會變革 ·經世致用 경향의 진보주의적 사상을 계승했으며, 근본적으로 制度를 개량해야만 함을 절감하고 특히 중불전쟁과 중일전쟁의 실패를 계기로 그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며 일종의 개량주의적 사회사조로 형성 시 켰다. 1880-90년대의 새로운 진보세력으로서 이들 유신파 지식인들은 사상적 측면에서 계몽주의를 비롯한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 계충의 사상을적극 수용하여 그 개혁운동의 중요한 근원으로 삼아 봉건왕조의 법제와사회를 개량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통치자 차원에서 '重農抑商정책을개혁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발전을 고취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국가를 건립하고 부강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서구 제국을 모델로 삼아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측면 등등에서 총체적으로 개혁을추진하여 자본주의 노선을 따르고자 한 것이다. 다만 이들이 추진한 개혁은 기본적으로 봉건통치에 의지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하고자 한것이었으며, 때문에 봉건 전제왕조의 제약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렇게 민중으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 등으로 인해 이들이 추진한 변법유신은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후 오히려실패를 계기로 학술 ·사상 및 문학 전반에 걸쳐 개혁운동을 전개하여當代에 이미 커다란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현대에까지 계속 깊은영향을 미첨으로써 나름대로 큰 성취를 거두었다. 즉 유신파는 정치적으로 개량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비교적 철저하지못한 개혁구도를 고수하며 뿌리 깊은 보수경향과 守舊派의 제약 등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신들의 理想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의 관념과 실천활동은 사실 자신들의 정치 사회 개량운동에 부응하여 전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근대문학의 발전방향을 결정짓고 다시 五四文學運動의 先導的 役割을 한 것에 중요한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中華人民共和國 성립 이후로, 중국에서 유신파 즉 부르주아계층의 개량파 지식인들은 혁명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개량주의도 철저히 부정되었다. 때문에 이후 근 30년 동안 그들에 대한연구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文化大革命 이후 '사상해방운동'과 '개혁' ·'개방'의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근대' 전반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 연구도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셋째, 위와 같은 배경 아래 형성된 유신파의 문학경향은 한마디로 啓蒙主義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계몽주의제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먼저 詞典上에서 '啓蒙'은 첫째, 어두움을 연다' 즉 '우매함을 깨우쳐 사리를 명백하게 한다'는 의미로, 漢代 應劭의 『風俗通 ·皇覇·六國』과 淸代 劉獻廷의 『廣陽雜記』 卷三 등에 보인다. 또 둘째, '初學者로 하여금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게 한다'는 의미로, 元代 劉壎의 『隱居通議 ·論語二』 등에 보인다. 字句上의 의미만으로 본다면, '계몽'은 초학자나 어린이를 교육시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케 한다거나, 또 나아가 선전과 교육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우매함과 미신을 벗어나 새로운 사물과 지식을 받아들이게함으로써 뒤떨어진 사회를 진보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東西古今에 걸쳐 쉽게 예를 찾아볼 수 있는 매우 廣義的인 개념이다. 그런데 역사적 현상으로서 또는 사상적 조류로서의 계몽주의(Englishtenment)'는 일반적으로 그 범위와 개념을 상당히 구체적으로제한하여 논의해 왔다. 즉 狹義的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주의'는 I5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싹트기 시작해, 18세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사상계를 휩쓸었었으며, 특히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思潮로 '18세기 계몽'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내용은 理性으로써 중세기의 종교적 蒙昧主義를비판하고, 자유 ·평등의 근대적 정치 ·사회 주장으로써 封建專制主義를비판하고, 幸福主義로써 종교적 금욕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이성으로써 모든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인생의 규범을 잘 정할 수 있으며, 미신과 편견 그리고 이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권위와 전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이성은 올바른 인격과 사회를 성립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주장함으로써 봉건적인 낡은 사상을 혁신적인 사상으로 유도하려던 主義이다. 그리고 이성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은 과학이며, 따라서 과학적 사고방법은 곧 이성적 사고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가장 구체적인 思潮로서의 계몽은 주로 부르주아혁명을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18세기 계몽'을 가리킨다. 그리고 넓게는 그 이전의사상적 준비과정 즉 중세기 후기에 발생한 早期 사상계몽과의 연속성을 고려해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서구 문예부흥과 종교개혁도 계몽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또 아울러 18세기 계몽 이후 서구 이외에 일본 ·한국 중국 등 後進國家들의 사상해방운동과 같은 계몽 노력도 포함시킬 수 있다. 결국 계몽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국가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사회사상적 현상으로, 그 主義의 목적은 중세기 몽매주의에 대한비판을 통해 봉건주의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정치 ·사회 주장을 宣揚하며, 나아가 인간의 관념의 변혁을 실현함으로써 근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여러 제도들의 확립을 촉진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을 그 근간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삼는 계몽주의 문학은 앞서 논의한 계몽주의의 목적을위해 作家가 계몽자 즉 교육자나 先覺者의 입장에서 이성 즉 합리성에 호소하여 민중을 가르치려는 일종의 敎訓主義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유신파에 의해 형성되고 성행한 중국 근대의 계몽주의 문학사조에대해 그 주요 주장과 경향을 중심으로 자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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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oman's body has been confined by dichotomy since modern age. Descartes' 'Cogito ergo sum', being representative of modern philosophy, thoroughly concealed woman's body for a long time. Now the corporeal feminism, advocated by L. Irigaray and E. Grosz, speaks out woman's body. They emphasize woman's body as a self-regulating subject. Woman's body is the umbilical cord linking Ego and the world.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article surveys different meanings of woman's body in NEW ERA of China. To speak generally, woman's body of the fictions before 1949, for example Yu Dafu(郁達夫)'s, Ding Ling(丁玲)'s and Feng Yuanjun(馮沅君)'s, is not free from social conventions. Woman's body begins to get out of shackles of socialism ideology since 1980's. Wang Anyi(王安憶)'s SAN LIAN(三戀), Tie Ning(鐵凝)'s 〈麥秸垛〉 〈閏七月〉, Zhang Xianliang(張賢亮)'s 〈男人的一半是女人〉 in the middle of 1980's show us different aspects of the released body. In these fictions, woman's body longs for the deviant sexual desire. Lin bai(林白)'s 〈一個人的戰爭〉 and 〈同心愛者不能分手〉, Chen ran(陳染)'s 〈與往事干杯〉 reveal woman's body as the more fragmentary individual. In these fictions, personas' sexual experience has a meaning of the rites of passage to comprehend her own 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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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man's body has been confined by dichotomy since modern age. Descartes' 'Cogito ergo sum', being representative of modern philosophy, thoroughly concealed woman's body for a long time. Now the corporeal feminism, advocated by L. Irigaray and E. Grosz...

      Woman's body has been confined by dichotomy since modern age. Descartes' 'Cogito ergo sum', being representative of modern philosophy, thoroughly concealed woman's body for a long time. Now the corporeal feminism, advocated by L. Irigaray and E. Grosz, speaks out woman's body. They emphasize woman's body as a self-regulating subject. Woman's body is the umbilical cord linking Ego and the world.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article surveys different meanings of woman's body in NEW ERA of China. To speak generally, woman's body of the fictions before 1949, for example Yu Dafu(郁達夫)'s, Ding Ling(丁玲)'s and Feng Yuanjun(馮沅君)'s, is not free from social conventions. Woman's body begins to get out of shackles of socialism ideology since 1980's. Wang Anyi(王安憶)'s SAN LIAN(三戀), Tie Ning(鐵凝)'s 〈麥秸垛〉 〈閏七月〉, Zhang Xianliang(張賢亮)'s 〈男人的一半是女人〉 in the middle of 1980's show us different aspects of the released body. In these fictions, woman's body longs for the deviant sexual desire. Lin bai(林白)'s 〈一個人的戰爭〉 and 〈同心愛者不能分手〉, Chen ran(陳染)'s 〈與往事干杯〉 reveal woman's body as the more fragmentary individual. In these fictions, personas' sexual experience has a meaning of the rites of passage to comprehend her own 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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