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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 자유시의 미적 전략과 근대적 서정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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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1910년대의 시작품과 시론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근대 자유시 성립과정과 그 주창자들이 뚜렷하게 내세웠던 미적 태도를 규명하자 하였다. 1900년대의 유학생 세대들이 보여준 언어관이나 문학관에서 우리말로 쓰인 시라는 것은 계몽의 도구로써의 효용성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1910년대 중반 이후 출현하여 그 주제의식과 언어적 형식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보여준 자유시의 창작자들은 앞 시대와는 세대적으로 다른 지향을 갖고 있었다. 문학, 예술에 대한 선구자적 의식과 이전시대의 문학행위들을 가치론적으로 배제하는 태도 등 적어도 문학예술에 관해『학지광』이후의 유학생 지식인들은 1910년대 중반부터의 소개되기 시작하는 예술론과 시, 문학론 속에서 공통된 의식지향을 수용하고 있었다.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 중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1910년대 후반에 그 미학적 지향을 선언적 언어로 제시하게 되었다. 1919년에 황석우가 ‘시단의 발족점’은 반드시 자유시여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근대시의 본질이 자유시에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그 형식과 내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전대의 시가들을 근대시의 중심에서 밀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는 나아가 ‘령어(靈語)’ 즉 비일상적이며 비대중적인 언어를 시어의 본질로 규정함으로써 가창 가능한 텍스트의 청자로서의 독자를 고려하고 있었던 전대 ‘시가’의 제시형식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의 일그러진 실상과 그 속에서 상처입은 화자의 독백을 표현하는 예술적 텍스트로서의 근대시를 주장하였다. 이는 191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근대 자유시를 옹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시단이 지향해야 할 미학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학지광』에서 자유시의 시인들이 계몽적 주체로서 유학생 집단 가운데에서 소수의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면, 『삼광』과 『태서문예신보』는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표현으로 등장한 청년들의 매체로서 자유시의 본격적 선언과 실천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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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1910년대의 시작품과 시론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근대 자유시 성립과정과 그 주창자들이 뚜렷하게 내세웠던 미적 태도를 규명하자 하였다. 1900년대의 유학생 세대들이 보여준 언어...

      이 연구는 1910년대의 시작품과 시론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근대 자유시 성립과정과 그 주창자들이 뚜렷하게 내세웠던 미적 태도를 규명하자 하였다. 1900년대의 유학생 세대들이 보여준 언어관이나 문학관에서 우리말로 쓰인 시라는 것은 계몽의 도구로써의 효용성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1910년대 중반 이후 출현하여 그 주제의식과 언어적 형식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보여준 자유시의 창작자들은 앞 시대와는 세대적으로 다른 지향을 갖고 있었다. 문학, 예술에 대한 선구자적 의식과 이전시대의 문학행위들을 가치론적으로 배제하는 태도 등 적어도 문학예술에 관해『학지광』이후의 유학생 지식인들은 1910년대 중반부터의 소개되기 시작하는 예술론과 시, 문학론 속에서 공통된 의식지향을 수용하고 있었다.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 중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1910년대 후반에 그 미학적 지향을 선언적 언어로 제시하게 되었다. 1919년에 황석우가 ‘시단의 발족점’은 반드시 자유시여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근대시의 본질이 자유시에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그 형식과 내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전대의 시가들을 근대시의 중심에서 밀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는 나아가 ‘령어(靈語)’ 즉 비일상적이며 비대중적인 언어를 시어의 본질로 규정함으로써 가창 가능한 텍스트의 청자로서의 독자를 고려하고 있었던 전대 ‘시가’의 제시형식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의 일그러진 실상과 그 속에서 상처입은 화자의 독백을 표현하는 예술적 텍스트로서의 근대시를 주장하였다. 이는 191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근대 자유시를 옹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시단이 지향해야 할 미학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학지광』에서 자유시의 시인들이 계몽적 주체로서 유학생 집단 가운데에서 소수의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면, 『삼광』과 『태서문예신보』는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표현으로 등장한 청년들의 매체로서 자유시의 본격적 선언과 실천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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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investigation of the formation and the esthetic attitude of Korean modern free-verse. In 1900’s the poem written in Korean language was recognized as an effective means of enlightenment campaign. But in the respect of subject consciousness and linguistic form, the writers of free-verse showed a different intention point from the senior writers. Since the emergence of the magazine of HakJiKwang, the younger writers presented the pioneering realization of the modern literature and the artistic expression.
      The modern free-verse in Korean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middle of 1910’s. And HwangSeokWoo declared the aesthetic theory of the free-verse as a form of modern poetry in late 1910’s. He insisted that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modern poetry must be in the free-verse. It meant that the free-verse is the essence of modern poetry. And he stipulated that the word of soul – nonusual and unpopular expression – is the essentials of poetic language. He denied the form of presentation of the previous pattern of poetry as a chantable lyrics. The writers of the free-verse advocated the realistic portrayal of the torturous world and the wounded subject. They defended the modern free-verse and suggested the aesthetic goal for the future of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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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investigation of the formation and the esthetic attitude of Korean modern free-verse. In 1900’s the poem written in Korean language was recognized as an effective means of enlightenment campaign. But in the respect of ...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investigation of the formation and the esthetic attitude of Korean modern free-verse. In 1900’s the poem written in Korean language was recognized as an effective means of enlightenment campaign. But in the respect of subject consciousness and linguistic form, the writers of free-verse showed a different intention point from the senior writers. Since the emergence of the magazine of HakJiKwang, the younger writers presented the pioneering realization of the modern literature and the artistic expression.
      The modern free-verse in Korean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middle of 1910’s. And HwangSeokWoo declared the aesthetic theory of the free-verse as a form of modern poetry in late 1910’s. He insisted that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modern poetry must be in the free-verse. It meant that the free-verse is the essence of modern poetry. And he stipulated that the word of soul – nonusual and unpopular expression – is the essentials of poetic language. He denied the form of presentation of the previous pattern of poetry as a chantable lyrics. The writers of the free-verse advocated the realistic portrayal of the torturous world and the wounded subject. They defended the modern free-verse and suggested the aesthetic goal for the future of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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