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우수등재

      조선시대 해일의 발생과 대응 = Occurrence of and countermeasure against Tidal wave in Joseon Dynast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27926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idal wave was intensively happened in southwest seashore. Storm surge was happened by typhoon and wind and waves high tide. Tidal wave mainly occurred in Rainy season(June∼September). Tidal wave’s number of occurrences was small in the eastern coast of Korea but most of them was tsunami. Thus the number of occurrences have to be focused.
      The reason of tidal wave was not figured out, and in case of storm surge there were main reasons(rainy season, typhoon, wind and waves) in the historic materials but tidal wave was not always accompanied. Thus, people understood that Tide wave was natural calamity occurred by Heavenly judgement that cannot understood specific reasons. People reported King and provision for Heavenly judgement and focused victim relief.
      As Tidal wave in the Joseon Dynasty took a toll people, Nation had to ready to protect it. The harm was very huge(people were drowned, damage on brine pan, flooding farmland. Specially, people could not farm because flooding farmland made salinity accumulation as a result, there were many starved people. People wander and nation could not collect taxed from people.
      Government officials and King discussed about the problem and gave King the advise. Paradoxically they make political capital on the Tidal wave.
      Nation surveyed the situation and gave wander people tax exemption depending on the seriousness of the incident. The Joseon suffered the most from Farmland and Nation gave a real-estate tax from the people as investing the area. The period was very long as People could not farm in a flooded area.
      Our country were still damaged by tidal wave. Specially the eastern coast of Korea was still in existence of tsunami. Recently Gyeongju and Pohang people worried about the tsunami but the preventive measure is still insufficiency. Thus tidal wave has to be model.
      번역하기

      Tidal wave was intensively happened in southwest seashore. Storm surge was happened by typhoon and wind and waves high tide. Tidal wave mainly occurred in Rainy season(June∼September). Tidal wave’s number of occurrences was small in the eastern co...

      Tidal wave was intensively happened in southwest seashore. Storm surge was happened by typhoon and wind and waves high tide. Tidal wave mainly occurred in Rainy season(June∼September). Tidal wave’s number of occurrences was small in the eastern coast of Korea but most of them was tsunami. Thus the number of occurrences have to be focused.
      The reason of tidal wave was not figured out, and in case of storm surge there were main reasons(rainy season, typhoon, wind and waves) in the historic materials but tidal wave was not always accompanied. Thus, people understood that Tide wave was natural calamity occurred by Heavenly judgement that cannot understood specific reasons. People reported King and provision for Heavenly judgement and focused victim relief.
      As Tidal wave in the Joseon Dynasty took a toll people, Nation had to ready to protect it. The harm was very huge(people were drowned, damage on brine pan, flooding farmland. Specially, people could not farm because flooding farmland made salinity accumulation as a result, there were many starved people. People wander and nation could not collect taxed from people.
      Government officials and King discussed about the problem and gave King the advise. Paradoxically they make political capital on the Tidal wave.
      Nation surveyed the situation and gave wander people tax exemption depending on the seriousness of the incident. The Joseon suffered the most from Farmland and Nation gave a real-estate tax from the people as investing the area. The period was very long as People could not farm in a flooded area.
      Our country were still damaged by tidal wave. Specially the eastern coast of Korea was still in existence of tsunami. Recently Gyeongju and Pohang people worried about the tsunami but the preventive measure is still insufficiency. Thus tidal wave has to be model.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시대 서ㆍ남해안에서는 만조 시 태풍과 풍랑에 의한 폭풍해일 잦았다. 장마와 태풍이 발생하는 음 6~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동해안은 해일발생 횟수가 매우 적기는 하나 발생된 해일 대부분은 지진해일로 파악되어 예의 주시된다. 당시 해일은 다른 재이와 마찬가지로 구체적 원인을 알 수 없는 天譴災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해일은 큰 피해를 일으켰으므로 국가에서 예의 주시한 재해였다. 해일로 인한 피해는 익사, 가옥과 염분 등의 시설물 파손, 농경지 침수였다. 특히 농경지 침수는 염분의 집적으로 수확이 불가했고, 장기간 경작을 하지 못해 많은 기민이 발생하여 백성들이 유망하거나 국가의 收稅가 감소하는 등 여타재이보다 피해가 컸다.
      해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먼저 대처했던 것은 국왕의 恐懼修省이었다. 관료들은 국왕에게 言路를 개방하여 구언방책을 들을 것과 근신하며 덕정을 펼치도록 간언했다. 관료들은 해일을 명분 삼아 국왕의 실정을 고하고, 평소 처결하지 못했던 일이나 사건을 처리하는 등의 정략적 대응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국가에서는 피해상황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 民戶에 대해서는 피해 경중에 따라 세금과 役 등의 감면대책을 마련하여 유망을 막았다. 구휼미를 풀고 身役에 대한 미포를 감해주거나 환곡의 징수를 연기해 주었다. 해일의 가장 큰 피해는 농경지의 침수였다. 경작이 불가한 곳은 災結로 산정하고 田稅를 감하였다. 해수에 침수되면 염분으로 인해 금방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감세기간은 토지가 탈염되어 농사를 재개할 수 있는 수년에서 수십 년 간 지속되기도 했다.
      한국은 과거부터 해일피해가 상존해 있는 국가였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해일의 우려가 상존해 있다. 최근 경주ㆍ포항 두 차례의 지진발생으로 인해 지진해일 발생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는 반면, 그 예방대책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해일은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하여 문제시 되어 왔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역사속의 사례를 통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번역하기

      조선시대 서ㆍ남해안에서는 만조 시 태풍과 풍랑에 의한 폭풍해일 잦았다. 장마와 태풍이 발생하는 음 6~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동해안은 해일발생 횟수가 매우 적기는 하나 발생된 해...

      조선시대 서ㆍ남해안에서는 만조 시 태풍과 풍랑에 의한 폭풍해일 잦았다. 장마와 태풍이 발생하는 음 6~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동해안은 해일발생 횟수가 매우 적기는 하나 발생된 해일 대부분은 지진해일로 파악되어 예의 주시된다. 당시 해일은 다른 재이와 마찬가지로 구체적 원인을 알 수 없는 天譴災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해일은 큰 피해를 일으켰으므로 국가에서 예의 주시한 재해였다. 해일로 인한 피해는 익사, 가옥과 염분 등의 시설물 파손, 농경지 침수였다. 특히 농경지 침수는 염분의 집적으로 수확이 불가했고, 장기간 경작을 하지 못해 많은 기민이 발생하여 백성들이 유망하거나 국가의 收稅가 감소하는 등 여타재이보다 피해가 컸다.
      해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먼저 대처했던 것은 국왕의 恐懼修省이었다. 관료들은 국왕에게 言路를 개방하여 구언방책을 들을 것과 근신하며 덕정을 펼치도록 간언했다. 관료들은 해일을 명분 삼아 국왕의 실정을 고하고, 평소 처결하지 못했던 일이나 사건을 처리하는 등의 정략적 대응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국가에서는 피해상황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 民戶에 대해서는 피해 경중에 따라 세금과 役 등의 감면대책을 마련하여 유망을 막았다. 구휼미를 풀고 身役에 대한 미포를 감해주거나 환곡의 징수를 연기해 주었다. 해일의 가장 큰 피해는 농경지의 침수였다. 경작이 불가한 곳은 災結로 산정하고 田稅를 감하였다. 해수에 침수되면 염분으로 인해 금방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감세기간은 토지가 탈염되어 농사를 재개할 수 있는 수년에서 수십 년 간 지속되기도 했다.
      한국은 과거부터 해일피해가 상존해 있는 국가였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해일의 우려가 상존해 있다. 최근 경주ㆍ포항 두 차례의 지진발생으로 인해 지진해일 발생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는 반면, 그 예방대책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해일은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하여 문제시 되어 왔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역사속의 사례를 통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박성래, "論壇 : 李泰鎭교수 “‘小氷期’(1500∼1750년)의 天體 現象的원인-『朝鮮王朝實錄』의 관련 기록 분석-”" 149 : 1996

      2 "한국천문연구원"

      3 이태진, "한국사상사방법론" 소화 1997

      4 이석규, "조선초기의 天人合一論과 재이론" 81 : 1996

      5 최지은, "조선왕조실록과 현대의 해일기록 비교분석" 2014

      6 안희주, "조선왕조시대(1392∼1903)의 해일 기록 및 분석" 6 (6): 1985

      7 권용란, "조선시대 “解怪祭”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22) : 217-241, 2006

      8 김일기, "전오염 제조방법에 관한 연구" 3 : 1991

      9 장학근, "연산군의 재이론에 대한 인식변화-군권・언권 논쟁을 중심으로" 7 : 1995

      10 "방재안전기술원"

      1 박성래, "論壇 : 李泰鎭교수 “‘小氷期’(1500∼1750년)의 天體 現象的원인-『朝鮮王朝實錄』의 관련 기록 분석-”" 149 : 1996

      2 "한국천문연구원"

      3 이태진, "한국사상사방법론" 소화 1997

      4 이석규, "조선초기의 天人合一論과 재이론" 81 : 1996

      5 최지은, "조선왕조실록과 현대의 해일기록 비교분석" 2014

      6 안희주, "조선왕조시대(1392∼1903)의 해일 기록 및 분석" 6 (6): 1985

      7 권용란, "조선시대 “解怪祭”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22) : 217-241, 2006

      8 김일기, "전오염 제조방법에 관한 연구" 3 : 1991

      9 장학근, "연산군의 재이론에 대한 인식변화-군권・언권 논쟁을 중심으로" 7 : 1995

      10 "방재안전기술원"

      11 최종성, "국행기우제와 민간기우제의 비교연구" 16 : 1997

      12 "高麗史"

      13 "解怪祭謄錄"

      14 "續雜錄"

      15 "燃藜室記述"

      16 "朝鮮王朝實錄"

      17 "書經"

      18 "春秋繁露"

      19 "日省錄"

      20 "承政院日記"

      21 "增補文獻備考"

      22 "國朝寶鑑"

      23 "各司謄錄"

      24 "剛齋集"

      25 하서정, "仁祖대 災異에 대한 인식과 대응" 대구사학회 127 : 157-187, 2017

      26 "五洲衍文長箋散稿"

      27 이상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성종기成宗期 재이관災異觀의 특징" 한국국학진흥원 (21) : 357-388, 2012

      28 박권수, "『승정원일기』 속의 천변재이 기록" 한국사학회 (100) : 65-108, 2010

      29 김우형, "『經筵日記』에 나타난 율곡의 災異觀" (사)율곡학회 18 : 59-85, 2009

      30 경석현, "『朝鮮王朝實錄』 災異 기록의 재인식 -16세기 災異論의 정치・사상적 기능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60) : 47-82, 2013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0 평가예정 계속평가 신청대상 (등재유지)
      2015-01-01 평가 우수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5 1.15 1.2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21 1.16 2.615 0.53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