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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태조대왕과 신대왕 王系에 대한 재검토 : 초기 王系의 복원을 통한 왕실교대와 국내천도 시기의 탐색 = Reserch on Royal Family of King Taejo-wang(太祖王) and King Sindae-wang(新大王) in the Kogu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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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필자의 기 발표 연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하였다. 필자는 기왕의 연구에서 고구려본기의 초기 왕계를 주몽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이란 졸본계 왕계, 유리왕-재사-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이라는 국내계 왕계로 나누어보는 가설을 제시하였으며, 이 가설의 틀에서 고구려본기에 나타나는 왕계상의 의문점들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연구방법을 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졸본 지역은 소노부의 세력 기반이고, 계루부는 국내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즉 졸본계 왕계는 소노부 왕실이며, 국내계 왕계는 계루부 왕실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 교대와 졸본에서 국내로의 천도가 동일한 역사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국내 천도 및 왕실 교대는 국내계 왕계로 설정한 태조대왕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였다. 다만 이는 태조대왕과 차대왕, 신대왕의 3왕이 같은 계루부 왕실을 구성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타당한지를 검토하였다. 그동안의 여러 연구에서 지적한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과 관련된 고구려본기의 불합리한 점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3왕 사이에는 의제적인 형제 관계로 구성된 것이고, 동시에 3왕의 부모로 설정된 再思와 모태후 부여인 사이도 의제적인 부부 관계임을 추정하였다, 따라서 이들 5인의 계보를 재구성하여 모태후 부여인-태조대왕/차대왕의 계보 및 再思-신대왕의 계보를 분리하였다. 이 두 계보에서 부여인-태조대왕의 계보는 주몽왕 이래의 건국전승에 나타나는 부여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졸본계 왕계로 파악하고, 유리왕-재사-신대왕 계보를 국내계 왕계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신대왕의 왕위 계승 명분을 합리화하는 기사의 맥락을 통해, 차대왕에서 신대왕의 이어지는 왕위 계승이 정변에 의해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 교대를 가져온 과정임을 추론하였다. 그 후 졸본계 왕계[소노부 왕실]와 국내계 왕계[계루부 왕실]을 하나의 단일 왕계로 만드는 과정에서 유리왕을 주몽왕의 아들로 편입하고, 또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을 형제 관계로 만들면서 再思와 부여인이 부부 관계가 되는, 즉 현 고구려본기의 왕계가 최종 구성되었다고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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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필자의 기 발표 연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하였다. 필자는 기왕의 연구에서 고구려본기의 초기 왕계를 주몽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이란 졸본계 왕계, 유...

      본 연구는 필자의 기 발표 연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하였다. 필자는 기왕의 연구에서 고구려본기의 초기 왕계를 주몽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이란 졸본계 왕계, 유리왕-재사-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이라는 국내계 왕계로 나누어보는 가설을 제시하였으며, 이 가설의 틀에서 고구려본기에 나타나는 왕계상의 의문점들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연구방법을 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졸본 지역은 소노부의 세력 기반이고, 계루부는 국내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즉 졸본계 왕계는 소노부 왕실이며, 국내계 왕계는 계루부 왕실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 교대와 졸본에서 국내로의 천도가 동일한 역사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국내 천도 및 왕실 교대는 국내계 왕계로 설정한 태조대왕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였다. 다만 이는 태조대왕과 차대왕, 신대왕의 3왕이 같은 계루부 왕실을 구성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타당한지를 검토하였다. 그동안의 여러 연구에서 지적한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과 관련된 고구려본기의 불합리한 점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3왕 사이에는 의제적인 형제 관계로 구성된 것이고, 동시에 3왕의 부모로 설정된 再思와 모태후 부여인 사이도 의제적인 부부 관계임을 추정하였다, 따라서 이들 5인의 계보를 재구성하여 모태후 부여인-태조대왕/차대왕의 계보 및 再思-신대왕의 계보를 분리하였다. 이 두 계보에서 부여인-태조대왕의 계보는 주몽왕 이래의 건국전승에 나타나는 부여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졸본계 왕계로 파악하고, 유리왕-재사-신대왕 계보를 국내계 왕계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신대왕의 왕위 계승 명분을 합리화하는 기사의 맥락을 통해, 차대왕에서 신대왕의 이어지는 왕위 계승이 정변에 의해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 교대를 가져온 과정임을 추론하였다. 그 후 졸본계 왕계[소노부 왕실]와 국내계 왕계[계루부 왕실]을 하나의 단일 왕계로 만드는 과정에서 유리왕을 주몽왕의 아들로 편입하고, 또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을 형제 관계로 만들면서 再思와 부여인이 부부 관계가 되는, 즉 현 고구려본기의 왕계가 최종 구성되었다고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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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 divided Goguryeo s early royal family into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as a progenitor and the royal lineage of King Yuri(琉璃王) as a progenitor.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 was Royal family of Sonobu(消奴部), the royal lineage of King Yuri(琉璃王) was Royal family of Gyerubu(桂婁部). The royal lineage recorded in the Goguryeo Bongi was the result of combining the two royal lines. In this process, King Yuri was incorporated as the son of King Jumong. The irrationalities of Koguryo-Bongi(高句麗本紀) articles related to King Taejo and King Sindae were carefully reviewed. The brotherhood of the three kings was created for political purposes. The genealogy of King s Buyou mother-King Taejo-wang(太祖王), King Chadae-wang(次大王) and the genealogy of Jaesa(再思)-King Sindae-wang(新大王) were separated. The genealogy of King Taejo-wang was identified as the royal family of jolbon(卒本), and the genealogy of King Sindae-wang was identified as the royal family of Kugnae(國內) The Change of Royal family from Sonobu(消奴部) to Gyerubu(桂婁部) and Capital Transfer from Jolbon(卒本) Region to Guknae(國內) region mean the same history. With current data, Capital Transfer period can be estimated to be the period between King Taejo-wang(太祖王) and King Sindae-wang(新大王). From the article that King Sindae-wang(新大王) served as a ritual at the Firt King Shrine, and the article that King Sindae-wang(新大王) was the first king maded a royal tomb in Guknae(國內) region on Koguryo-Bongi, I think that King Sindae-wang king was on the changeover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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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divided Goguryeo s early royal family into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as a progenitor and the royal lineage of King Yuri(琉璃王) as a progenitor.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 was Royal family of Sonobu(消奴部), t...

      I divided Goguryeo s early royal family into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as a progenitor and the royal lineage of King Yuri(琉璃王) as a progenitor. the royal lineage of King Jumong(朱蒙王) was Royal family of Sonobu(消奴部), the royal lineage of King Yuri(琉璃王) was Royal family of Gyerubu(桂婁部). The royal lineage recorded in the Goguryeo Bongi was the result of combining the two royal lines. In this process, King Yuri was incorporated as the son of King Jumong. The irrationalities of Koguryo-Bongi(高句麗本紀) articles related to King Taejo and King Sindae were carefully reviewed. The brotherhood of the three kings was created for political purposes. The genealogy of King s Buyou mother-King Taejo-wang(太祖王), King Chadae-wang(次大王) and the genealogy of Jaesa(再思)-King Sindae-wang(新大王) were separated. The genealogy of King Taejo-wang was identified as the royal family of jolbon(卒本), and the genealogy of King Sindae-wang was identified as the royal family of Kugnae(國內) The Change of Royal family from Sonobu(消奴部) to Gyerubu(桂婁部) and Capital Transfer from Jolbon(卒本) Region to Guknae(國內) region mean the same history. With current data, Capital Transfer period can be estimated to be the period between King Taejo-wang(太祖王) and King Sindae-wang(新大王). From the article that King Sindae-wang(新大王) served as a ritual at the Firt King Shrine, and the article that King Sindae-wang(新大王) was the first king maded a royal tomb in Guknae(國內) region on Koguryo-Bongi, I think that King Sindae-wang king was on the changeover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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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Ⅱ. 왕실 교대 및 국내 천도 논의에서 제기한 논점들 Ⅲ.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王系의 검토 Ⅳ.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王系의 재구성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Ⅱ. 왕실 교대 및 국내 천도 논의에서 제기한 논점들 Ⅲ.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王系의 검토 Ⅳ.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王系의 재구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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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2 여호규, "고구려 초기정치사 연구" 신서원 2014

      3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68) : 5-34, 2012

      4 권순홍, "고구려 초기의 都城과 改都 - 태조왕대의 왕실교체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학회 (78) : 185-231, 2015

      5 김종은, "고구려 초기 천도기사로 살펴본 왕실교대" 3 : 2003

      6 이준성, "고구려 초기 정치세력의 분포와 계루부의 등장- 천도·왕실교체에 대한 재검토를 겸하여 -" 한국고대사학회 (99) : 131-164, 2020

      7 기경량, "고구려 초기 왕도 졸본의 위치와 성격" 인문학연구원 (34) : 129-162, 2017

      8 강현숙, "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고고학적 추론" 역사문화연구소 (56) : 3-42, 2015

      9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

      10 임기환, "고구려 전기 都城 관련 기사의 재검토 - 기사의 原典 계통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소 (65) : 3-36, 2018

      1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2 여호규, "고구려 초기정치사 연구" 신서원 2014

      3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68) : 5-34, 2012

      4 권순홍, "고구려 초기의 都城과 改都 - 태조왕대의 왕실교체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학회 (78) : 185-231, 2015

      5 김종은, "고구려 초기 천도기사로 살펴본 왕실교대" 3 : 2003

      6 이준성, "고구려 초기 정치세력의 분포와 계루부의 등장- 천도·왕실교체에 대한 재검토를 겸하여 -" 한국고대사학회 (99) : 131-164, 2020

      7 기경량, "고구려 초기 왕도 졸본의 위치와 성격" 인문학연구원 (34) : 129-162, 2017

      8 강현숙, "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고고학적 추론" 역사문화연구소 (56) : 3-42, 2015

      9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

      10 임기환, "고구려 전기 都城 관련 기사의 재검토 - 기사의 原典 계통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소 (65) : 3-36, 2018

      11 양시은,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구려발해학회 50 : 37-66, 2014

      12 임기환, "고구려 王系의 성립과정과 시기" 한국고대사학회 (83) : 97-125, 2016

      13 임기환, "고구려 國內都城의 형성과 공간 구성 - 문헌 검토를 중심으로 -" 고려사학회 (59) : 7-44, 2015

      14 임기환, "고구려 國內 遷都 시기 再論" 한국사학회 (132) : 177-230, 2018

      15 여호규, "高句麗 國內 遷都의 시기와 배경" 한국고대사학회 (38) : 37-84, 2005

      16 여호규, "高句麗 初期의 王位繼承原理와 古鄒加" 국학연구원 (150) : 139-196, 2010

      17 강현숙, "石槨積石塚을 통해 본 高句麗 五部" 12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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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외대사학 -> 역사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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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49 1.216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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