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子는 王子들 가운데에도 특별히 왕위를 계승할 인물로, 王朝國家에서 太子冊封과 敎育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唐의 제도를 따라 東宮官을 설치하여 太子를 補佐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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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6
2006
한국어
서울
53 p. ; 26 cm.
지도교수: 박용운
단면인쇄임
참고문헌 : 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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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太子는 王子들 가운데에도 특별히 왕위를 계승할 인물로, 王朝國家에서 太子冊封과 敎育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唐의 제도를 따라 東宮官을 설치하여 太子를 補佐하도록...
太子는 王子들 가운데에도 특별히 왕위를 계승할 인물로, 王朝國家에서 太子冊封과 敎育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唐의 제도를 따라 東宮官을 설치하여 太子를 補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東宮官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高麗史} 百官志에 기록된 최초의 東宮官 설치시기는 顯宗 13年이지만 그 보다 이른 시기인 穆宗朝의 改定田柴科에서 東宮官職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다만 高麗의 많은 관부가 成宗朝에 처음으로 설치되거나 정비되었던 것을 감안할 때 東宮官 역시 成宗朝 어느 시기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東宮官은 太子가 존재할 때만 운영되는 官府이다. 따라서 東宮官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太子冊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成宗朝에 東宮官이 설치된 후 顯宗 13年에 이르기까지 太子冊封이 이루어지지 않아 東宮官이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못 했던 것이다. 이 기간동안 追贈職의 사례가 확인되기는 하지만 東宮官의 운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顯宗 13年에 元子인 延慶君 欽을 太子로 책봉하면서 東宮官을 설치하는데, 이것이 高麗 최초의 東宮官 설치인 것이다.
顯宗朝 이후 文宗朝에 대대적인 관제정비를 거치면서 高麗前期의 東宮官은 그 대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肅宗으로부터 毅宗에 이르는 기간동안은 4代에 걸쳐 太子冊封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東宮官의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해지면서 東宮官 역시 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 졌다.
高麗의 東宮官은 唐의 제도를 모방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그 운영에 있어서는 高麗의 실정에 맞게 운영하였다. 唐의 東宮官이 有事時를 대비한 또 하나의 정부로서 기능했던데 반해 高麗는 현재의 太子敎育과 侍衛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顯宗朝 이래로 高麗前期 東宮官의 대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敎育과 侍衛를 맡은 관직을 중심으로 官府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운영의도에 따라 비교적 중요성이 덜 한 官職들은 점차 쇠퇴하게 되어 朝鮮에 이르러서는 世子侍講院과 世子翊衛司라는 분명한 성격의 두 官府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高麗에서는 東宮官의 설치를 통해 왕위계승을 공식화하여 정국운영의 안정성을 꾀하였으며, 동시에 또 하나의 君臣관계 성립을 통해 원활한 정권교체에 도움을 주었다. 이와 같은 점을 살펴 볼 때 高麗는 東宮官 설치를 통해 現王의 정권안정과 後代의 원활한 정권교체를 함께 배려했음을 알 수 있다.
高麗의 東宮官은 後代에 왕으로 즉위할 것이 기대되는 太子를 補導하면서 그에 합당한 敎育을 시켰고, 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지위과 정치적 이상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했을 王에게 있어 太子를 책봉하여 대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것을 위한 官府가 바로 東宮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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