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가톨릭교회에 개신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근본주의의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근본주의는 시대와 장소가 제한적으로 뚜렷한 놀라운 현상 중의 하나이다. 19세기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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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한국가톨릭교회에 개신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근본주의의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근본주의는 시대와 장소가 제한적으로 뚜렷한 놀라운 현상 중의 하나이다. 19세기말 20...
이 글은 한국가톨릭교회에 개신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근본주의의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근본주의는 시대와 장소가 제한적으로 뚜렷한 놀라운 현상 중의 하나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적 근대주의를 겪지 않은 미국의 개신교 신앙이 자연과학과 합리주의의 조류를 만나면서 나타난다. 근본주의가 유럽 그리스도교-개신교나 가톨릭교회 둘 다-에서 분명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은 까닭은 간략히 말해서 자연과학과 근대주의에 맞서 무수한 논쟁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앙이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이 한국가톨릭신앙의 형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시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유럽선교사들의 신앙형태가 모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조선조에 전래된 유럽의 가톨릭신앙은 조선의 성리학을 만나 더 강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18-19세기 프랑스에서 익히 만나게 되는 신앙형태가 이 땅의 가톨릭신자들에게 전수된 것이다.
처음 한국의 가톨릭신앙은 통치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성리학과 맞닥뜨려 순교의 열정까지 불살랐던 사회변혁의 원리로 받아들여졌던 신앙이었다. 박해가 시작되자 대부분의 양반들이 탈락하고 중인 하층민 중심으로 신앙의 열정을 이어갔으나, 프랑스의 얀세니즘과 은둔주의적인 탈세계관적 영향은 엄률주의와 함께 불행히도 한국가톨릭신앙을 조성하고 말았다. 짧지 않은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가톨릭신앙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적 근본주의의 물결과 달리 경건주의의 색채를 띠고 초세간적 신앙의 모습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선교사 텍스트와 종교성의 역사(histoire religie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