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고려 시기이래 서경의 「무일편」과 「홍범편」이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이것이 조선 초에 성리학에 기반한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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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Korean
무일편 ; 홍범편 ; 西京 ; 書經 ; 태조유훈 ; 성리학 ; Mu’il-pyeon ; Hongbeom-pyeon ; Seo-gyeong ; Seo’gyeong ; Taejo’s past instructions(“Taejo Yuhun”) ; Neo Confucianism
KCI등재
학술저널
113-155(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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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고려 시기이래 서경의 「무일편」과 「홍범편」이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이것이 조선 초에 성리학에 기반한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태조의 훈요십조에서 언급됨으로써 태조 자신을 상징하는 편으로 인식되었던 「무일편」은 12세기 예종대에 太祖遺訓과 옛 聖賢의 道(유학)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예종 11년의 制書이후 활발하게 進講되었다. 기존에 「무일편」 등이 진강된 것을 신유학적 이념의 심화로 보았다. 그러나 「무일편」은 西京의 순주나 大化宮창건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도참적 행위가 활발하였을 때 함께 진강된 경우가 많았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행위는 “태조유훈의 실천”(서경 순주)과 “옛 성현의 도”(유가 경전 「무일편」 진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예종 11년 제서를 충실히 실천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가 경전 중에서도 태조를 상징하는 「무일편」을 진강한 것은 총체적으로는 다시 태조 유훈으로서 통합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홍범편」은 漢代이래 재변의 이해나 해소와 관련하여 이해되어 왔는데, 이 시기 고려에서도 가뭄 등의 재이가 있을 때 활발히 진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전 이해는 고려 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유신들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무일편」과 고려 태조 사이의 상징적 연관성을 해체하면서, 주희의 해석을 바탕으로 이 편이 관료들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권력을 위임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편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홍범편」은 天理에 따라 정치를 펼치는 군주의 心法을 중심으로 해석하면서 성리학적 군주관과 자연관을 주장하기 위한 주요한 편으로 인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조선에서 「무일편」과 「홍범편」은 더 이상 西京 순주를 정당화하거나 재변을 해소하기 위한 경전이 아니라 성리학이라는 철학체계 속에서 새로이 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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