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요청은 종교의 벽을 넘어서서 인류의 시대적 요청이다. 특히 종교 간의 대화는 서로 상이한 종교․문화의 대립을 극복해야하고, 또 서로 한 치도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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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8
학위논문(석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 신학과 조직신학 전공 , 2008. 2
2008
한국어
인천
118 p. ; 26cm
지도교수:송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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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요청은 종교의 벽을 넘어서서 인류의 시대적 요청이다. 특히 종교 간의 대화는 서로 상이한 종교․문화의 대립을 극복해야하고, 또 서로 한 치도 양보...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요청은 종교의 벽을 넘어서서 인류의 시대적 요청이다. 특히 종교 간의 대화는 서로 상이한 종교․문화의 대립을 극복해야하고, 또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교리․교의가 대립하는 긴장을 넘어서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서 종교는 진리를 함께 추구하게 되고, 화해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며, 또 그 저변에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질 수 있는 사랑의 정신과 공평함과 편견 없음의 영성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그 역사적 징표를 통찰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종교의 자유에 관한 선언」3항에서 타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통해서 화쟁사상에서 다루어지게 될 ‘타자’와 ‘나’의 관계를 엮고 있는 ‘일심’(一心)의 원리와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원리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원효의 화쟁론은 모든 원리를 오직 一心으로 삼는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론」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이 두 논서는 또 여래장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대승기신론」의 일심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지양하고 화합시켜 진(절대)과 속(상대)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라는 점에서 원효에게 대승적 일심은 그가 지향하던 화쟁의 가능성을 더욱 확고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원효는 일심을 대승불교의 무량무변한 ‘진리’로 파악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 ‘진리’는 스스로 그 본성의 ‘펼침과 닫음’, ‘세움과 깨뜨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원효에게 일심의 존재론적 속성은 고요하고도 동시에 창조와 구속이 자유롭다. 그 이유는 대승의 일심이 체(體)․상(相)․용(用) 삼대의 삼위일체 존재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효에게 일심, 즉 대중심(大衆心)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생멸화합(生滅和合)하며, 비일비이(非一非異)한 존재양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일법계인 일심은 다시 이문(二門)을 가지는데, 진여문(聖)과 생멸문(俗)이 그것이다. 이 두 문은 융화되어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하며,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한 문(門)이다. 쉽게 말해서 진여의 체(體)가 무명(無明)으로 인해 일으킨 현상과 절대, 차별과 분별을 융화(融和)하는 화쟁의 가능근거로서 일심은 ‘화합’(和合)의 원리이자 일심이문(一心二門)의 법을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중생심(佛性)과 여래심(眞心)이 통합되는 존재론적 일심(一心)은 합일해도 협소하지 않으며, 개방해도 번잡하지 않는 길(門)로 그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합해보면 원효의 일심사상은 모든 것의 근거로서 상대적 차별을 떠난 일심임을 알 수 있다. 상대적 차별과 치우침이 없는 평화(平和)이기에 집착함이 있을 수 없고, 자유로운 상태로서의 일심이다. 거꾸로 일심사상을 해석해보면 세상의 본래의 근원은 모든 다툼이 없는 평화(平和)로운 상태이다. 그러므로 현재 아무리 다투고 있다 하더라도 오직 헛된 생각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 만약 헛된 생각을 잊으면 모든 경계를 이루는 것이 없어져 궁극적으로 화해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화쟁은 일심에 근거하여 가능하고 동시에 화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도 일심으로 귀일이다.
특히 ‘일심이문’(一心二門)의 법(法)은 ‘보편적’이고 ‘평등’하여 차별과 대립이 없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법이다. 즉 만법이 넓고 평온한 ‘하나의 마음’ 안에서 편벽(偏僻)됨이 없이 서로 융화(融和)되고 또 자유롭다.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하게 융합(融合)되고 ‘안’과 ‘밖’이 ‘비일비이적 화합’(非一非異的 和合)이되어 서로 ‘상호(相互)-내재(內在)-삼투(滲透)’되어 ‘훈습(薰習)-일치(一致)’를 이루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원효가 전망하는 화쟁의 장은 이미 결론을 앞두고 형식적인 말로 같은 내용들만 오고가는 무의미한 화합이 아니다. 서로 다른 말을 건네기만 하다가 혼잣말로 끝날 수 있는 대립적 회합도 아니다. 누구를 위한 대화인가? 또 무엇을 위한 만남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 앞에서 ‘같이-듣고’ ‘같이-느끼’는 가운데 쟁(諍)이 화(和)할 수 있는 만남이다. 원효에게 화쟁은 쟁(諍)을 통해서 화(和)를 만남이다. 서로 다른 ‘나의 너’를 만남으로서 확인하고 ‘나’를 확인하고 이미 ‘서로-다른-존재의-사이’에서 ‘공감되는 실존’을 체득(體得)할 수 있는 만남이다. ‘서로-다른-존재의-사이’에서 오고가는(轉移) 공명(共命)을 통해서 현존의 현실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또 다른 그리스도의 육화사건이자 하느님의 계시가 종교 간의 대화 속에서 자유롭고도 풍요롭게 전달되고, 또 이해됨으로서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상호내재’(相互內在)하는 ‘절대 실재’의 존재론적 현재화인 것이다.
논자는 위와 같은 화쟁사상을 오늘날의 종교 간의
목차 (Table of Contents)
신학입문
장로회신학대학교 배정훈, 오방식, 이상억, 최진봉, 신형섭, 고원석, 장신근, 이병옥, 남성현, 박보경, 이한나, 김신웅, 이상일, 이창호, 고재길, 김은혜, 신옥수, 송용원, 김도훈, 박경수, 최영근, 서원모, 김태섭, 김철홍, 김문경, 이은우, 하경택신학입문
장로회신학대학교 박경수, 고원석, 신형섭, 이상억, 오방식, 최진봉, 배정훈, 이은우, 김철홍, 서원모, 이창호, 고재길, 김은혜, 신옥수, 백충현, 김도훈, 안교성, 장신근, 이병옥, 변창욱, 박보경, 조성환, 이상일, 김문경, 하경택조직신학
삼육대학교 제해종실천신학입문
서울신학대학교 김형락신학개론
우송대학교 Randlee Re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