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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視覺文化로서의 映畵  :  베라·바라즈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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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20년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포토제니론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몽따쥐론이 영화이론을 대표한 두개의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영화를 보다 객관적으로 추구하려는 새로운 이론적인 연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포토제니론이라 몽따쥐론은 영화의 일면의 특질을 추출하고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가능성을 옹호하고 나섰으나 그것을 내세운 사람들이 순수한 학자나 이론가라기 보다 영화를 직접 만드는 영화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며 기술주의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며 이론이라기 보다 다분히 주장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여기에 대하여 30년대에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의 입장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주체상을 파악하고 현상에서 본질에 파고들려는 학문적인 추구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헝가리 출신의 베라·바라즈는 비엔나를 거쳐 독일에 이주 1922년 「시각적 인간」이라는 영화에 관한 글을 썼다. 그 후 계속 영화에 관심을 가짖 그는 1930년 「영화의 정신」을 집필하고 1945년에는 「시각적 인간」과 「영화의 정신」을 종합하고 정리해서 「영화의 예술」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1952년 「영화의 이론」(Theory of une film)으로 영역되고 그 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영화이론의 중요한 고정으로서 오늘날가지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라·바라즈의 이론적 전개에 있어서의 특기할 만한 새로움은 영화를 단순한 하나의 예술로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파악하고 거기에 20세기문화의 중요한 특성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영화예술에 의해서 개발된 인간의 감각능력의 발전은 인류의 교양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마치 음악의 영향에 의해서 음악적인 귀가 발달하고 거기에서 음악문화가 태어나는 것처럼 영화예술이 객관적으로 풍부해짐에 따라 영화적인 (시각) 즉 영화문화가 평행해서 발달했다. 무성영화의 표현형식은 비상한 속도로 점점 발전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식언어를 이해하는 대중의 능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들의 눈앞에 태어난 것은 새로운 예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각능력과 새로운 자질과 새로운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든 인간이었다.」
    사실 영화의 표현형식과 기교는 80년 사이에 놀라운 변화를 해왔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러한 놀라운 변화에 놀랍게 잘 적응해 온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영화도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충격이요 혼란 일뿐일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영화를 보는 방법을 배웠으며 이 점을 바라즈는 벌써 50년 전에 지적한 것이다. 그는 챠프린의 영화 「파리의 여성」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사내가 애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 역으로 달려온다. 우리는 프라트, 홈에 서 있는 그 사내를 본다. 기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찾는 듯한 그 사내의 시선에 의해서 그 여자는 벌써 객차의 어떤 좌석에 앉아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사내 얼굴의 크로즈 업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입언저리가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빛과 그림자, 그리고 빛이 점점 빨라지는 템포로 그의 얼굴 위를 스쳐간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것뿐이다.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추측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벌써 그것을 알고 있다.」
    오늘의 관객이라면 <기차가 떠나고 차창의 불빛이 스쳐가며 사내의 얼굴에 반사하며 점점 빨리 달려서 떠나간다>는 내용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즈 자신 이 영화를 베르린에서 처음 봤을 때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의 주관적 감수성, 즉 이해하고 또한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문화의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영화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시각적 인간」에서 영화의 발명을 구덴벨그에 의한 인쇄기의 발명에 비교하고 인쇄기가 서적을 보급하고 문자커뮤니케이션의 엄청난 발달을 가져온 것처럼 영화로부터 새로운 영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 커뮤니케이션이 <읽는 문화>를 출현시킨 것처럼 영화 커뮤니케이션은 <보는 문화>를 발달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문화>의 개념성에 대해서 시각성을 영화는 주장하게 될 것이고 시각문화의 시대를 이룩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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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포토제니론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몽따쥐론이 영화이론을 대표한 두개의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영화를 보다 객관적...

    1920년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포토제니론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몽따쥐론이 영화이론을 대표한 두개의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영화를 보다 객관적으로 추구하려는 새로운 이론적인 연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포토제니론이라 몽따쥐론은 영화의 일면의 특질을 추출하고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가능성을 옹호하고 나섰으나 그것을 내세운 사람들이 순수한 학자나 이론가라기 보다 영화를 직접 만드는 영화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며 기술주의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며 이론이라기 보다 다분히 주장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여기에 대하여 30년대에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의 입장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주체상을 파악하고 현상에서 본질에 파고들려는 학문적인 추구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헝가리 출신의 베라·바라즈는 비엔나를 거쳐 독일에 이주 1922년 「시각적 인간」이라는 영화에 관한 글을 썼다. 그 후 계속 영화에 관심을 가짖 그는 1930년 「영화의 정신」을 집필하고 1945년에는 「시각적 인간」과 「영화의 정신」을 종합하고 정리해서 「영화의 예술」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1952년 「영화의 이론」(Theory of une film)으로 영역되고 그 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영화이론의 중요한 고정으로서 오늘날가지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라·바라즈의 이론적 전개에 있어서의 특기할 만한 새로움은 영화를 단순한 하나의 예술로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파악하고 거기에 20세기문화의 중요한 특성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영화예술에 의해서 개발된 인간의 감각능력의 발전은 인류의 교양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마치 음악의 영향에 의해서 음악적인 귀가 발달하고 거기에서 음악문화가 태어나는 것처럼 영화예술이 객관적으로 풍부해짐에 따라 영화적인 (시각) 즉 영화문화가 평행해서 발달했다. 무성영화의 표현형식은 비상한 속도로 점점 발전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식언어를 이해하는 대중의 능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들의 눈앞에 태어난 것은 새로운 예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각능력과 새로운 자질과 새로운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든 인간이었다.」
    사실 영화의 표현형식과 기교는 80년 사이에 놀라운 변화를 해왔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러한 놀라운 변화에 놀랍게 잘 적응해 온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영화도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충격이요 혼란 일뿐일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영화를 보는 방법을 배웠으며 이 점을 바라즈는 벌써 50년 전에 지적한 것이다. 그는 챠프린의 영화 「파리의 여성」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사내가 애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 역으로 달려온다. 우리는 프라트, 홈에 서 있는 그 사내를 본다. 기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찾는 듯한 그 사내의 시선에 의해서 그 여자는 벌써 객차의 어떤 좌석에 앉아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사내 얼굴의 크로즈 업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입언저리가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빛과 그림자, 그리고 빛이 점점 빨라지는 템포로 그의 얼굴 위를 스쳐간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것뿐이다.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추측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벌써 그것을 알고 있다.」
    오늘의 관객이라면 <기차가 떠나고 차창의 불빛이 스쳐가며 사내의 얼굴에 반사하며 점점 빨리 달려서 떠나간다>는 내용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즈 자신 이 영화를 베르린에서 처음 봤을 때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의 주관적 감수성, 즉 이해하고 또한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문화의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영화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시각적 인간」에서 영화의 발명을 구덴벨그에 의한 인쇄기의 발명에 비교하고 인쇄기가 서적을 보급하고 문자커뮤니케이션의 엄청난 발달을 가져온 것처럼 영화로부터 새로운 영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 커뮤니케이션이 <읽는 문화>를 출현시킨 것처럼 영화 커뮤니케이션은 <보는 문화>를 발달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문화>의 개념성에 대해서 시각성을 영화는 주장하게 될 것이고 시각문화의 시대를 이룩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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