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김진만의 기명절지화 유존 작품에 대한 조사와 실사 및 촬영, 작품 목록의 작성, 관련 문헌자료에 대한 조사와 수집, 김진만의 작품과 연관이 있는 미술계 인사들과의 면담과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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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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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진만의 기명절지화 유존 작품에 대한 조사와 실사 및 촬영, 작품 목록의 작성, 관련 문헌자료에 대한 조사와 수집, 김진만의 작품과 연관이 있는 미술계 인사들과의 면담과 구술 채록 등을 방법으로 하여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를 조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구성하는 내용은 크게 네 부분이 될 것이다.
① 김진만의 작가적 생애
먼저 김진만의 작가적 생애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 김진만은 일제에 의해 10여 년 이상을 복역하였고, 동생 김진우, 아들 김영우 등이 모두 일본 경찰에 의해 옥고를 겪은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의 중요한 애국지사임에도 그의 생애나 이들 일가의 행적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진 바가 없다. 김진만의 작가적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자료가 많지 않다. 본 연구는 김진만에 관한 최초의 논문으로서 일제시기의 관변 기록을 찾아보며, 서병오를 비롯하여 그와 합작을 했거나 연관이 있는 서화가들과 교유하였던 인물들을 추적하여 자료를 발굴하고, 대구지역 서화계 인사들의 구술 등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김진만의 작가적 생애를 재구성하여 보다 심도 있게 김진만의 작품 분석에 임하고자 한다.
② 기명절지화의 탄생과 서울의 기명절지화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고도, 병화도, 청공도, 세조도, 소과도, 박고화훼도, 책가도와 문방도 등 중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상을 연원으로 하는 기명절지화의 탄생 배경과 서울지역 기명절지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근현대기 기명절지화에 대한 연구와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이도영 등 기명절지화를 남겼던 대표적인 작가들에 대한 연구, 기명절지화가 수록된 관련 도록 등 선행 연구를 충실히 조사하고 섭렵하여 기명절지화 전반에 대한 체계적 이해의 바탕위에서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를 이와 비교 분석하여 그만의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③ 김진만 기명절지화의 화풍, 도상, 화제 분석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를 가능한 한 많이 발굴하고 목록화하여 화풍에 따라 시기별로 편년하며, 도상의 근거를 밝히고 화면에 씌어진 한시의 분석을 통해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자 한다.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는 화풍, 도상의 종류와 성격, 제사의 방식 등 동 시기 서울지역 기명절지화와 다른 차이점이 상당히 나타난다. 서울지역 서화가들이 공필채색 기법을 위주로 하면서 수묵사의 화풍을 이원적으로 구사했던 것과 달리 사의화풍을 고수하는 점, 청동기류가 감상용이라기 보다 사군자 등 화훼의 용기로 그려지는 점, 서울과는 달리 화훼나 과일, 장식품류가 다양하지 않은 점, 사군자가 거의 항상 그려지는 점, 간략한 제목만을 주로 예서로 적어 넣었던 서울의 기명절지화와는 달리 항상 긴 한시로 제사하여 사군자화와 유사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점 등이 우선 두드러진다. 이러한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여 김진만 기명절지화의 고유한 특징을 규명하고자 한다.
④ 김진만과 대구의 문인화
근현대기 대구 문인화단의 작가들은 사군자화를 위주로 하면서 대부분 기명절지화를 겸하고 있는데, 김진만은 이러한 현상에 가장 큰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대구화단에서 기명절지화가 유행하고 지속된 것은 김진만이 문인화풍으로 소화한 수준 높은 기명절지화의 도상이 전파되고 공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김진만이 선구적으로 개척한 기명절지화의 세계는 竹儂 徐東均(1902~1978)에 의해 산뜻한 담채와 세부 묘사가 자세해진 장식적인 문인화풍의 기명절지화로 계승되었고, 이후 羲齋 黃基式(1905~1972), 肯農 任璣淳(1912~1994), 海亭 洪淳鹿(1916~1983) 등은 나름의 개성적인 문인화풍으로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기명절지화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분석함으로서 김진만의 기명절지화가 이후의 대구지역 문인화계에 끼친 영향과 대구지역 기명절지화의 사승과 양식의 계보를 밝혀 보고자 한다. 기명절지화는 대구문인화의 독특한 한 특징으로서 그 의미가 충분히 탐색되어야 할 것이다.